ㆍ‘고병원성 확진’ 발표 뒤인 18일 조기 퇴근 ‘만취’
ㆍ기자 질문에 ‘횡설수설’…장관 대책회의도 불참
ㆍ국정 공백 장기화에 공직사회 기강 해이 도 넘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으로 정부와 농가에 비상이 걸렸던 지난 18일 방역당국 고위 관계자가 ‘술판’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경향신문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민연태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국장급)은 당일 개인 사정을 이유로 조기 퇴근한 뒤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전남 해남과 충북 음성에서 신고된 AI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고병원성 H5N6형으로 확진돼 당국에 비상이 걸린 시점이었다. 농가들은 애써 키워온 가금류를 살처분해야 했고, ‘AI 청정국’ 지위 상실로 인해 정상 농가의 수출 여부도 막막해진 상황이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이 주재하는 방역대책회의가 열렸으나, 농식품부는 회의를 마친 뒤 대변인이 진행하는 정식 브리핑을 열지 않았다. 홍보담당관 등 다른 공보 책임자도 대변인과 술자리를 한 뒤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대변인실의 직원들만 AI 관련 대응상황을 전파했다.
농식품부는 이날 오후 4시 10개 시·도 지역에서 모든 가금류 종사자와 차량, 가축의 이동을 제한하는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발령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민 대변인은 만취한 채 오후 5시가 되도록 이 같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기자가 일시 이동중지 명령과 관련해 문의하자 그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AI 사태 속에서 술판을 벌여도 되느냐’고 묻자 “미안하다”고만 답했다.
민 대변인은 20일 “업무상 필요한 술자리가 생겨 어쩔 수 없이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브리핑 등에도 꼭 참석할 필요가 없어 일찍 외부에 나가 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 대변인은 중요 회의가 끝난 뒤 언론 브리핑을 갖고 위기상황에 대한 정보와 정부의 대응책을 알릴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공직 사회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무총리실에서는 공무원들의 태만에 대해 고삐를 강하게 죄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최순실 사태 이후에는 이를 감시할 동력도 떨어진 상태다.
더구나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의 경우 서울과 지방을 수시로 오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일부 직원들의 나태함이 문제가 돼 왔다. 지난해 기획재정부의 한 과장은 출장을 핑계로 수개월간 제대로 근무하지 않다 적발되기도 했으며 그 뒤 공직사회에서는 이런 이들을 가리켜 ‘사라진 김 과장’이라 일컫고 있다.
한편 주말에도 AI가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19일에는 전남 무안군의 한 오리 농장에서 도축장 출하 검사 중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됐으며 20일에는 경기 양주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경기 지역에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서해안 지역에 이어 수도권까지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