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의 감옥'은 정말 머릿말부터 마지막 장까지 쾌속열차를 타듯, 읽는 나조차도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읽어넘기는 책이었습니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아, 그래, 나는 이 대목에 그 자리에 있었지'라며 돌아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역사의 한가운데에, 동지와 함께하는 반독재,반파쇼,반민족행위,반인권 투쟁의 한가운데에 함께 있었구나 라는 자긍심까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분단조국의 현실, 미국의 이익에 의해 좌우되는 약소국의 아픔까지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책을 읽을때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 '할 일'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12장 생각을 처벌하다, 그리고 13장 억울하다 미안하다 괜찮다 를 주목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5월 12일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의 이석기의원 초청 강연회 자리를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담담하지만 자세히 묘사하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인터뷰, 특히 이상호 구속자의 심경까지 읽고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책에서도 내란조작 피해자 가족들은 특히 내란조작사건 이후로 무언가를 기록남기길 싫어하고, 정기적으로 집에 있는 ,당장 생활에 불필요한건 강박관념적으로 다 버려 집에 추억이 쌓일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대목을 읽고 저는 역발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내가 그 강연회를 한다는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면,그래서 내가 가서 5월 12일의 그 강연회를 촬영하고, 전반적인 풍경들을 스케치촬영 할 수 있었다면 내란음모 조작사건 초기에 당이 좀 더 효율적이고 공세적인 대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라는 건 '워딩'으로만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눈빛, 표정, 제스쳐, 당시 현장의 분위기, 듣는 사람의 의식수준 등등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 민감한 시국에 그렇게 민감해질 수 있는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 국정원은 비록 저품질이나마 녹음 파일(영상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국정원이 직접 했었죠) 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쪽에서는 그 강연을 기록한 그 어떤 멀티미디어 자료도 없다는 것, 그 순간 이미 우리에게는 재판정에서의 어떤 유리한 고지도, 여론전에서의 그 어떤 승리적 계기도 만들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강연을 촬영한 영상 파일 하나만 있었으면 국정원의 녹취로 조작을 더욱 쉽게 극복해 낼 수 있었음은 물론, 그 자리가 자당의 국회의원을 초청해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비전을 듣는 '정상적'인 강연이었음을, 그리고 통합진보당 간부 하나하나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질적이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역으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꽉 채우고 나서 1년 이상 보관해 두었던 저의 하드디스크를 꺼내어 컴퓨터에 연결했습니다.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아니 정말 활을 떠난 활시위가 탄력받아 날아가듯 해치운 작업이었습니다.
2012년 8월 28일 이석기의원실 압수수색부터 9월 4일 이석기의원 강제구인에 이르기까지 통합진보당 대표가 기회 있을때마다 했던 대국민 발언 중 핵심 내용들만 추려 봤습니다.
통합진보당 홈페이지가 없어지고, 발언 전문 내용을 검색으로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언론기사에 부분 발췌한 내용으로 끼워맞추기도 하고, 그나마 없는 건 녹취작업으로 직접 타이핑해서 자막을 넣었습니다. 화려한 화면전환도, 세련된 자막편집도, 강조해야할 부분을 강조한 화면효과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의 긴장감과 분노, 그리고 동지와 함께 싸운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보다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을 수 있는 9분의 시간일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두개의 연설은 이석기의원이 체포동의안 처리 전후에 발언한 내용으로 꾸려 보았습니다. 작업을 다 마치고 난 후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2013년 8월, 그리고 9월에 국정원의 말을 듣고 통합진보당을 거리두고 배제하고 왕따시키는 대신 이정희 대표의 말을 듣고 국정원해체를 향해 8월 27일과 다름없이 나섰다면 그때 박근혜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