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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후기] 림아헤님의 <DREAM TELLER>
게시물ID : readers_27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6
조회수 : 58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1/30 20: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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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왔다. 내가 오기 전날까지만 해도 날씨가 따뜻했단다. 그런데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느낀 날씨는 늦가을이 아닌 겨울이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얇은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있었기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발을 동동거렸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선 계속 잤다. 숙소에 도착해 몸을 씻었을 땐 온 다리가 멍투성이에 또 심하게 부어서 인상을 찌푸렸다. 밤에 잠이 들기 전까지 침대 위에서 계속 다리와 발을 주물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엔 필기시험에 면접을 봤다. 붓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는지 원래는 잘 맞는 구두가 꽉 끼어 발을 조여왔다. 면접관 중 한 분이 면접이 거의 끝나가는 중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께소님은 회사에 다니며 영업을 할 게 아니라 글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순간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웃기는 웃었는데. 어떤 웃음이었을까.

며칠 뒤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놀라진 않았다. 다 정리하지 않은 짐가방에서 여름옷을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잠시 생각했을 뿐. 물론 전부 끄집어내 옷장 안에 넣었지만 말이다. 어제저녁엔 아빠 친구분을 뵀다. 아저씨는 몇 달 전에 내 이름으로 받으셨다던 책을 건네주셨다. 여태 기다리고 있었던 선물에 기분이 좋았다. '회사 떨어져서 어떡하냐'라고 아저씨가 걱정스레 물으셨다. '괜찮아요. 인연이 아니었는가 보죠'라고 내가 대답했다. 괜찮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저씨가 사주신 저녁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읽는 책이었다.

읽는 내내 겨울이 떠올랐다. 11월 26일 토요일, 서울에선 첫눈이 내렸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꾹 참고 내리지 않아 준 고마운 첫눈이었다. 그날 오전에 나는 혼자 밖에 나갔다. 장을 보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서 밖에 나왔을 때 누군가가 옆에서 '눈 내린다'라고 감탄하듯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하얗게 내리는 눈이 보였다. 눈은 펑펑 쏟아졌다. 눈물이 날 만큼 예쁜 눈이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으면 해서 몇 번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 북적이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시린 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몇 번을 찍어도 내가 보고 있는 눈이 찍히지 않더라.

책을 감싸고 있던 포장지가 눈 같았다. 포장지를 벗기기 전에 여러 번 사진을 찍었다.

Dream Teller.png

01. "Kiss the river"

제목만 봤을 적에 내용이 참 궁금했었다. 그리고 글을 다 읽고 나니,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누군가와 입을 맞추는 동안, 입술을 맞댄 채로 킥킥 웃으면서 무슨 말을 한 적이 있었노라고 믿었다. 누군가는 나를 따라 웃었고. 그런데 그 누군가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02. "Shadow"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슬펐다. 열쇠로 집 문을 열고 잠그는 법을 외우기 전에 나는 부모님께서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시각을 외웠다. 그리고 정확히 그것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날 지점을 뚫어지라 쳐다만 봤다. 그 사람이 나를 발견하기 전에 내가 그를 발견하며 손을 흔들었다. 시간이 흘러 딴청을 부리는 법을 배우고서는 절대로 그 사람이 나를 발견하기 전엔 알은체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어오길 기다렸다. 발견되는 기분이란 (비록 내가 의도한 반쪽짜리 발견일지라도) 이토록 좋은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는 비밀인데. 뭐, 괜찮겠지.

03. "악몽"

몹시 울었다. 실은 첫 번째 글을 읽으면서부터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에 울컥했지만.

불행히도 나는 네가 나오는 꿈속에서 이것이 꿈이라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이거 꿈이지? 라고 묻지 않고 이거 거짓말이지? 라고 물었다. 그마저도 큰소리로 네게 묻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냈다. 네가 나오는 꿈속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나다웠다. 그게 싫었다.

04. "Psycho therapy"

다 읽고 나서 잠깐 베인 상처가 이곳저곳 난 내 양손을 살펴봤다. 없애는 일을 제일 못하는 내겐 너무나도 취향인 글이었다. (제목만 보고선 포근하고 따뜻한 이야기일 거로 짐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없애는 일을 잘한다고 고백하는 화자가 부러웠다. 잊고 싶은, 없애고 싶은 내 속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다시 나의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동안만큼은.

05. "너의 풍경"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울었다. 정말 아끼는 만화가 떠오른 글이었다. 몇 장 되지 않는 그 짧은 만화를 읽으면서도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겨울을 좋아하는 너와 눈으로 태어난 나의 이야기. 글 속의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짧은 그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다음에 맞이할 눈은 한 송이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셀 수 없는 눈송이 중 나를 위해 태어난 네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다음 생이라는 게 정말 존재한다면 둥그렇고 넓적하고 가벼운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바라왔다. 그건 조용한 산속의 나무 한 그루로 태어나고 싶다는 엄마와의 약속이었다. 돌멩이로 태어나서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주길, 아주 잠깐일지라도 따뜻한 손안에 쥐어 가장 간절한 소망을 내 안에 담아주길, 그리고 나무로 태어난 엄마 옆에 고이 탑으로 쌓아주길. 무너져도 멀리까지 굴러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고 무너진 나를 일으켜주겠지. 또 다른 소망을 담고 또 탑을 쌓아주겠지.



세상에서 제일 못 쓰는 게 독후감이라서 어떻게 써야 할지 즐거운 고민을 어제부터 계속하다가 결국 이런 식의 글을 썼어요. 너무 일기 같지만은 않았으면 합니다만, 어떨지 모르겠네요. 후기를 쓰는 동안 저 자신이 dream teller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겨울이라서, 개인적으론 첫눈을 보고 난 후라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 책이었고, 특히나 읽는 동안 공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라서 위로가 됐네요. 이런 멋진 책 (그리고 멋진 꿈을) 선물해주신 림아헤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또 쓰고 싶은 글이 생겼어요. :)

겨울인데 날씨가 그리 춥지 않네요. 빨리 또 눈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더 추워지기 전에 강원도에 가야 할 텐데 말이지요. 언제가 좋으려나.

모두 꿈이 가득한 겨울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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