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슬픔의 내륙─하지만 내륙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굳이 슬퍼한다
게시물ID : readers_270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세된양말
추천 : 1
조회수 : 1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30 23:39:04
옵션
  • 창작글
안녕하세요.
비가 오다 말다 하네요.
오랜만에 아버지랑 소주 한 잔 했어요.
아버지 주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신 걸 보고
처량해서 혼자 더 마셨어요.
그런데 아무리 처량해서 소주 세병을 네병을 다섯병을
마셔도 눈물샘은 말라 쩍쩍 갈라진 북아프리카의 황야 같고
마음엔 북풍이 불어 어느새 처량해하는 방법도 잊어버렸어요.
이상한 인생입니다.

-

슬픔의 내륙


나는 슬픔을 마신다.
아침-아침임에도 어두운 방 한구석
에서 눈을 뜰 때 나는 방안에 연기처럼 퍼져있는
슬픔을 마신다.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는 슬픔에 너무 바빠
다른 일에는 눈길도 주지 못한다.

점심 때, 사람들이 실컷 일을 하고 식사를 하러 갈 때에
나는 여전히 내 방 안, 그곳에서
이불에 둘러싸여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마른 슬픔에 뒤척거린다
아, 난 게으르지 않아. 이건 그저
내가 게으르지 않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게으름의 방편일 뿐이야. 나는 내 살을 물어뜯고

저녁이 되어 네온사인들에 불이 들어오고
술집들이 문을 열 때, 나는 가벼운 지갑을 움켜쥐고
해가 진 거리의 처량한 냄새를 맡으러 나간다.
「여봐, 삶을 직시하고 살아. 제발…….」 이런 젠장……
난 이미 삶을 직시하고 있어, 그 꼴이 이렇다고.
「그렇다면 남들처럼이라도 살아봐, 네 손을 펴고.」
오래 전에 손도끼와 실톱으로 잘라낸 내 손 말이야?

자본주의가 책정한 술값을 꼬나쥐고, 그 지폐들을
꼬깃꼬깃 오른손에 쥐고, 그 종이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꽉 쥐고…… 나는 계단을 올라
저기 길가에는 이미 술에 취한 노인네들이―그러나 충분히 젊은 노인네들이
담배연기를 뿜으며 뭔가를 숙덕거리고 있다. 그들의
마스크에서 번질거리는 미광은 내게
도시적 비극의 비밀을 넌지시 전한다. 그러나, 엿 먹어, 난 술을 마시러
갈 거야…….

분수에 맞지 않는 눈물을 마시고 내 피를 마시고
이미 알코올의 냄새로 독하게 삭아버린 내 피를, 피를,
한 발자국만 더, 한 모금만 더 마시면 이 슬픔도 전부 지워지겠지
그러나 망할, 나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실 돈이 없어
어설프게 취한 내 슬픔에는 중력가속도가 붙어
그러나 여전히 눈물은 나올 기색도 없고, 염병, 나는 신음을
사망의 기괴한 골짜기에서 기어 나온 것 같은 신음을
신성모독적으로 으르렁거리며…… 그래, 이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지
머리를 흔들고 눈동자를 흔들고 그러나 충분치는 않고
오늘은 달이 안 떴어. 요 며칠간 달을 못 봤어.

도시의 거리를 가로질러 흙탕물을 튀기며 걷는다.
빈 방에 도착하면 나는 바싹 마른 내 얼굴을 부여잡고
우는 사람의 흉내를 내며―그러나 울지는 못하며
적당하지 못한 알코올 때문에 한숨을 쉬며 나는 생각을 하겠지
생각, 생각, 그 빌어먹을……인간의 권능.
거리에는 시베리아에서 온 북풍의 냄새 속에
슬픔으로 빚은 보드카 냄새가 나.

오늘도 슬픔을 마시느라 너무도 바빴다.
이불로 도망쳐
수마(睡魔)와 껴안고 눈에서 흰 연기를 뿜을 시간이다.
안녕, 안녕, 굳바이, 나의
나의 어떠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열정의 시대여.

-

영업 좀 하고 가겠습니다.

텀블벅에서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의 출간을 위한 후원모집을 진행중입니다

https://www.tumblbug.com/madnessandlove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