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장편소설이 될지도 모를? 단편 소설- 틈 1,2챕터 완성되었어요! 봐주셈
게시물ID : readers_270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꽃비의상서
추천 : 2
조회수 : 4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04 00:41:03
옵션
  • 외부펌금지

1. 파스타와 구두소리

 

6, 석현은 퇴근을 한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양복 사이로 얇은 바람이 석현의 속살을 간지럽힌다. ‘겨울 코트를 벌써 꺼내야 하나?’ 양복 상의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석현은 생각한다.

 

석현은 2년 전에 선희와 헤어지고 나서 공무원을 준비했다. 아주 보잘 것 없고 찬란했던 20대 초반. 선희와 석현은 3년을 만났다. 석현이 대학교 2학년 때, 선희는 작은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서로 만났다. 가볍게 시작됐던 사랑은 어느새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고,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갔다. 3년간 그 둘의 사랑을 적어보자면 사실 누구나 하는 그런 사랑일 것이다. 싸우고, 웃고, 첫 키스, 첫 섹스. 그리고 익숙함.

 

먹을 것 좀 사갈까?’ 석현은 생각했다. 저녁을 먹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따라 편의점에 삼각 김밥이 무척이나 먹고 싶어졌다. “.... 3,800원입니다.” 전자레인지에 20초를 돌린 후 삼각 김밥과 맥주를 가방에 넣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간다.

 

그 날 석현과 선희는 서로 만나기로 했었다. 대학 졸업을 하고 일을 찾고 있던 석현과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던 선희였다. 석현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사업도 하고 싶었고 공방도 가지고 싶어 했으며, 그러면서도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20대 중반을 들어선 그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공무원 합격 후 가장 행복해 했던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여보세요? 어 엄마! 아휴 일 힘들게 뭐 있어. 그냥 어? 반찬? 그럼, 내가 좀 잘 해먹어? 걱정 마시고요. 다리는 어떠세요? 일 좀 쉬엄쉬엄해. 아부지는? 아들 보고 싶다고? 다음 주 주말에 내려갈게요. 걱정 마세요. 결혼? 아직 좋은 여자 생기면 바로 집으로 데려갈게. 걱정 말고. 사랑해요.”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를 한 석현은 어제 다운받아놓은 무한도전을 틀어 놓고 삼각 김밥과 맥주를 꺼내 놓는다.

 

그녀가 그의 방에 왔다. 그는 자취중이였고, 무기력했고, 힘들어했고, 꿈이 많았고 또한 꿈이 없었다. 석현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석현과 선희가 만나기로 한 그 날, 석현은 선희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띵동.

나 왔어. 오빠 뭐 만들어?”

응 너 좋아하는 파스타. 오일 조금 넣고 너 좋아하는 마늘 많이 넣고!”

아 맛있겠다. 근데 나 오빠랑 먹으려고 족발 사왔는데...”

둘 다 먹으면 되지. 요 앞에 그 족발 집 말하는 거지? 상 피자. 다 됐어.”

50cm는 될까? 족발만 올려도 가득 차는 작은 상이였다. 석현이 만든 오일 파스타를 올릴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구석에 비집고 올려놓은 그 파스타는 위태롭게 보였다.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족발은 사오지 말걸..”

그날 선희는 구석에 놓인 파스타보다 족발을 더 맛있게 먹었다.

 

930. 삼각 김밥 2개와 무한도전을 안주 삼아 맥주 1캔을 기분 좋게 먹은 석현은 샤워를 하고 나왔다.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한판 한다. 오늘은 게임이 잘 풀린다. 약한 놈들만 만나서 그런지 모르지만. 2시간이 지나고 1130. 석현은 알람을 확인하고 누워 잠을 청한다. 배는 적당히 부르고, 등은 따뜻하고, 얼굴에는 얕은 미소, 그리고 짧은 한숨,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한다.

 

파스타가 많이 남았네?”

오늘은 족발이 맛있더라고, 오빠가 만든 건데 미안해.”

아냐. 간이 좀 짜게 된 것 같아.”

남겨진 파스타를 바라보며 석현은 자기 같다고 생각했다. 족발이 없었다면 파스타를 남김없이 먹었을 것이다. 아니면 파스타의 양이 너무 많았을지도 모른다. 작은 상을 탓해보지만 석현이 만든 이 파스타는 족발, 아니 그 어떤 음식이 상에 올라와 있었어도 남겨졌을 것이다. “디저트 먹자!”

선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 의미를 아는 석현의 입 꼬리도 올라갔다. 그날 밤 석현의 작은 자취방에서 둘은 익숙한 사랑을 나눴다. 약간의 떨림. 가냘프고, 굵고, 잔잔한 신음. 그 둘은 그렇게 마지막 사랑을 나눴다. 마지막 사랑이었다는 걸 둘 다 느꼈을까? 짧고도 긴 사랑이 끝나고 선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좋았어?”

.”

우리 그만 만나자

.”

 

7, 핸드폰. 아주 고요한 세상 속에서 작은 떨림, 검은색 셀로판지를 붙여놓은 듯, 이런 세상. 새벽이 오고, 석현은 잠에서 깼다.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은 잠시, 그는 밤새 그의 몸을 어루만졌던 따스한 이불을 벗어 던졌다. 어제 먹었던 맥주 때문인지 약간 부은 것 같은 얼굴이 물 자국으로 얼룩진 화장실 거울에 비췄다.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날씨가 많이 추워진 것 같으니, 코트를 입어야겠다.’ 그의 자취방, 그 작은 세상, 그의 공간에서 문을 열고 밖을 나가보니, 어제 밤 퇴근길에 나를 괴롭히던 간지러운 바람은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두꺼워진 옷 코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감흥 없는 대답 후에 우리의 이별은 너무나 쉽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뤄졌다. 여느 때와 같이 선희는 옷을 챙겨 입었고, 석현은 속옷만 걸친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갈 거야?”

벌써 가려고?”

.. 더 있어 봤자 뭐하겠어?”

그래... 데려다 줄까?”

아니야. 버스 정류장이 코앞인데 뭘 그래

그럼 집 앞까지만 마중 나갈게

석현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말과 다르게 그녀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줬다. 안녕. 잘지내. 조심히 가고. . 안녕.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선희의 머릿속에 생각난 말이 있었다. 서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석현이 선희에게 했던 말이다. 그 날 선희는 무슨 이유였는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고, 홧김에 석현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던 것 같다. 그때 석현은 선희를 앉혀 놓고 차분하게 말했다. ‘입 밖으로 내 뱉는 말에는 언제나 책임을 져야해. 나는 언제나 선희, 네가 하는 말을 신중하게 생각해. 지금 헤어지자는 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면, 정말 헤어질 생각이 없다면 앞으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의 그 한 마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고 정말로 헤어져야하나? 생각도 많이 한다. 진심이 아니라면, 그것이 좋은 말이 아니라면 더욱더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 후로, 거의 3년 만에, 2번째로 헤어지자고 말을 꺼낸 것이 그 날이었고 그 둘은 헤어졌다. 선희도 많은 고민을 했고,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자는 말을 계속 대뇌였지만, 선희에게 석현은 익숙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단지, 사랑하지 않았을 뿐일까. 선희의 짧은 한숨. “...”

그래,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석현은 딱히 슬프지도 않았고 따로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열열히 사랑했던 감정, 둘의 추억, 대학교, 캠퍼스, 자주 가던 술집 몇 가지가 머릿속에 생각날 뿐이었다. 석현은 그 날 눈물이 나지 않아 슬픈 영화를 보며 울었다. 석현의 머릿속에서 그녀는 내 첫사랑이었다. ‘었다.’ 라는 과거형에 너무나도 확실한 어떤 확신이 생겼다. ‘내 첫사랑은 선희었다.’ 라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을 짓는 사람은 자신일거라고 생각했다.

 

꿈이 없어서, 미래가 없어서 그녀가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석현은 지쳐있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그녀의 영향이 아예 없진 않겠다. 20대 초반, 그 초라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약 1천일, 24천 시간, 144만분 동안이나 같이 지냈던 사람의 영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역시나 거짓말이겠다. 그녀와 헤어지고 1년 반 동안 공무원 준비를 했고, 2번의 시험을 거쳐 9급 공무원에 합격했다. 전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자취방을 구했고, 주말을 비롯한 공휴일마다 쉴 수 있었고, 안정적이었고, 일이 간단했다. ‘내가 공무원을 미리 준비했다면, 공무원이 되었다면 그녀는 날 떠나지 않았을까?’ 석현은 잠시 생각했다. 이내 실소를 지었다. 석현은 그녀에게 돌아가고 싶지도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3년간의 추억. 슬프지만 그것이 다였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하철 안은 약간 더웠다. 그는 코트를 벗고 가방을 든 손에 걸친 후 자리에 앉았다.

 

출근을 하고 평소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부서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웃고, 어제 뉴스얘기, 저번 주 예능얘기 등등 실속 없는 대화를 나눴다. 6시가 되였고 석현은 퇴근을 한다. 오늘은 별 생각이 없어 저녁은 건너뛰기로 한다. 지하철에서 내린 후 그는 세상의 소리를 작은 P자 모양 2개에 맡긴다. 가느다란 줄 사이로, 세상의 소리,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고요하고, 살짝 무뎌진 칼끝 같은 바람 소리, 모든 것을 잊은 채 P자 이어폰에 소리를 맡긴다. 듣는 노래라고는 20곡 남짓한 노래다. 슬픈 사랑 노래, 신나는 락, 어깨를 살짝 움직일 수 있는 느낌 있는 랩. 석현은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향한다. 집까지 거리는 생각 없이 걸으면 15, 어떤 생각을 하며 걸어도 15. 딱 그 정도 거리였다.

 

잔잔한 노래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클라이맥스 부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도입부분도 아니었다. 시선은 약간 아래, 쓸데없는 잡생각에 빠진 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왼쪽, 경사진 언덕이 나오고..’생각을 하며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역시나, 혹시 내리막길이면 어쩌지 생각이 났지만 오르막길이었다. 앞에는 한 여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항상 이 시간, 석현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앞쪽으로 오는 건지, 왼쪽으로 꺾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편의점에 들른 날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여자였다. 또각. 또각. 그녀의 구두 소리가 석현의 잔잔한 노래의 틈을 깨고 들어온다. 잠깐. 3분이면 (정확히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일거라 석현은 생각했다.) 없어지는 소리. 그녀가 잠깐 멈춰 섰고 예상보다 빠르게 멈춘 그 구두소리를 의아해 한 채 석현은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열 발자국 정도 갔을 때, 그녀가 나를 불렀다.

저기... 저기요! 혹시 이거 떨어뜨리신 거 아닌가요?”

석현은 자신이 맡겨 놓았던 2개의 소리중 하나,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종이를 살펴보았다. 석현의 것이 아니었다. 작은 포스트잇에는 양파, 대파, 마늘, 돼지고기(국거리), 어묵...’ 등이 적혀 있었다. 돼지고기를 이용한 찌개를 끓이고 어묵을 볶아 놓는 상상을 한다.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갔지만 이내 표정을 숨기고 대답했다.

, 제 것이 아닌데요. 아주머니가 장 보러가려고 적어 놓으신 것 같네요. 재료가 얼마 안 되니, 잊어버리시지는 않았을 거예요.”

생각보다 길게 대답을 한 후, 석현은 다시 귀에 이어폰을 낄까 생각하다가 양쪽 귀에 이어폰을 모두 뺏다. 지하철역 보다는 고요한 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걸어가는 석현 뒤로 그녀의 구두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날 밤 석현은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뒤편으로 꽤 규모가 있는 마트에 들어갔다. 대파와 국거리용 돼지고기를 골랐다. 어묵도 살까 고민했지만, 이내 대파와 돼지고기만 집어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가 될 것이다. 6개월 동안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그의 일상은 아주 단순했다. 주중에는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 가끔 맥주 한 잔, 몰아보는 예능, 드라마, 영화, 친구들과의 술자리. 최근 6개월, 그러니까 석현이 공무원이 된 후, 이 자취방으로 이사를 온 후에 집에서 밥을 해 먹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냉장고에는 어머니 멸치볶음, 김치, 낙지젓갈 등이 있었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낙지젓갈에서는 쉰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김치통의 뚜껑도 열어 보았다. 살짝 많이 익은 듯한 쉰 김치, 김치찌개를 끓이기에는 딱 인 것 같았다. 석현은 생각했다. ‘김치는 쉬어버려도 찌개로 끓이면 맛있으니까. 아니 오히려 쉬어버린 김치가 더 맛있어. 의외로 신기하다.’ 석현은 그날 저녁에 성공적으로 김치찌개를 먹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은 밤, 삼각 김밥이 김치찌개로 변했을 뿐, 그날 게임을 이기지 못했을 뿐, 석현은 1130분 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알람을 확인하고. 잠들기 전 쓸모없는 생각 중에 선명한 구두소리. 또깍. 또깍. 이내 석현은 몸을 뒤척이며 잠에 들었다.

 

그로부터 2주 쯤 되었을까? 석현의 머릿속에서 또깍또깍 구두소리가 잊혀질, 그 즈음이었다. 어김없이 퇴근 후,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가지 않은 그 어느 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맡긴 이어폰에서는 아이유의 Rain Drop이 나오고 있었다. 발랄하고 슬픈 반주 속에서, ‘또깍 또깍구두소리가 반주의 틈을 깨고 들어왔다. 약간 숙인 고개를 들으니, 그녀가 앞에 있었다. 그 동안 그녀의 구두를 자세히 본적 없는 석현은 그날따라 그녀의 구두를 보며, 그녀가 사라질 때 까지, 3분의 시간을, 그녀의 뒤에서 또깍또깍 구두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 이미 노랫소리보다 커진 또깍또깍 소리. 그날 밤 석현은 게임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안주 없이, 혼자 맥주를 마셨다. 구두소리를 생각했다. 그리고 1130분에 침대에 누웠고, 알람을 확인했고, 잠을 청했고, 잠이 들었다.

 

 

2. 손 위에 개구리

 

또깍 또깍. 주희가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한다. 오른쪽으로 돌아, 보이는 작은 언덕, 가파르지 않은 길이지만 왠지 한숨이 나온다. 핸드폰에서 때지 못하는 눈동자. 그래, 사랑했다. 잘못된 것 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사랑을 했다. 사랑이었는지 사실, 주희도 확신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주희에게 그렇게 말했다. 미친 거라고, 미친, 나쁜, 가정 파괴범, 쓰레기 이런 수식어들이 주희를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그렇다. 주희는 유부남과 만남을 가졌다. 불륜, 그것이 주희의 수식어였다. 언덕을 올라 마트를 지난 후, 집으로 들어가는 주희.

 

6년 전 여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으셨던 아버지다. 어느 날 갑자기, 45세 젊은 나이에 그렇게 주희와 그녀의 가족 곁을 떠나게 됐다. 고등학교 1학년, 너무나도 평범하던 주희와 가족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엉엉 울었다. 세상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주희는 어쩔 줄 몰랐다. 슬퍼서 너무 슬퍼서 울었다 보다는 무섭고, 또 무서웠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명제를 주희가 받아드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님 중에 어머니만 남겨졌다. 어머니는 슬퍼했고, 두려워했고, 당황했다. 그 이외의 감정들도 많았겠지만 주희가 느낀 감정은 그것이 다였다. 3일상을 치르던 그 3, 어머니는 딱 그 3일만 감정을 비췄다. 그 뒤로 어머니의 마음을 들은 건 혼잣말로 속삭이던 말을 들었을 때다. ‘다시 시작하면 돼. 다 잊고 시작하면 돼떨리던 목소리. 두 손을 꽉 잡고 흔들의자를 탄 듯 흔들던 몸체, 불안해 보이는 앉은 자세. 주희는 깊은 밤에, 동생들의 잠자는 소리, 그 속에 어머니의 목소리, 불안한 목소리, 괜찮다는 목소리, 그것을 듣고 너무 어린나이에 철이 들어버렸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 사이로 따가운 바람이 찌른다. 왼손은 코트 속에, 오른손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 경리 일을 시작한지 한 달, 작은 회사지만 주희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 편안한 곳이다.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지난 달, 6년 전부터 지금까지 주희의 어머니가 하던 말을 떠올렸다. ‘다시 시작하면 돼. 다 잊고 시작하면 돼. 나는 괜찮아주희도 생각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작은 회사로 온 것이 아닌가. ‘뜬금없이 아버지가 도움을 주시네.’ 주희는 생각했다. 퇴근길에 SNS를 보던 주희는 손끝에 달라붙은 따가운 바람을 이따금씩 느꼈다. 한번 씩 왼손으로 핸드폰을 바꿔가며 작은 사각형 화면에 집중을 한다.

 

20, 주희는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 아버지의 부재, 죽음은 17살 소녀에게는 슬퍼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 후에 강해진 어머니를 보고 주희는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안쓰러운 생각을 했다. 남겨진 동생들과 주희 자신, 어머니. 어머니가 책임져야 할 사람 중에 자신은 빠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 중에 고등학교 졸업생 중 우수 학생을 뽑는 전형이 있었는데, 꽤 공부를 잘했던 주희에게는 최고의 기회이자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입사한지 3달 만에 주희는 작은 자취방을 하나 구했다. 높은 연봉, 편하지 않은 일,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세상,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회사. 차분하게, 바쁘게, 힘들게 살다 보니 주희는 어느새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3년 전,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어머니가 사주신 구두. 회사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이 수면 밖으로 드러난 후, 3년간에 모든 것들을 정리했던 주희는 이 구두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받은 것이니, 버릴 이유는 없어.’ 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에서 구두를 제외시켰다. 검은색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구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구두였다. 그렇게 믿어야 버틸 수 있었다.

 

주혁을 처음 본 건 2년 전, 이제 회사에 적응을 마치고 나서였다. 열 살 남짓 많아 보이는 그는 좋은 명문대학을 나왔고 유학도 다녀왔으며 키는 별로 크지 않지만 외모는 괜찮은 편이였다. 과장이었다. 젊은 나이에 과장을 할 정도로 실력이 우수한 그였다. 인사 발령으로 주희가 있는 부서로 왔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때론 냉정했고, 때론 따뜻했으며 부서의 모든 사람이 좋아했다. 물론, 주희도 그의 친절에, 미소에, 따뜻함을 느꼈다. 그는 결혼을 했다. 그의 자리에 보면 아주 해맑게 웃고 있는 쌍둥이 남자아이 둘. 아내와 그. 그의 자리는 그의 가족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의 기도를 들었을 때, 20살이 되었을 때, 회사를 나왔을 때, 항상 했던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주희가 주희 자신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이었다.경리일을 하는 여기서는 6시면 퇴근을 한다. 바쁘게 살아와서 생각할 시간이 많이 없던 주희의 머릿속에 작게나마 여유와 생각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것은 불행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기도가 들려왔고, 사람들의 동정어린 과거의 시선들을 생각나게 했다. 밤새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쓰러져 잠만 자던 공간이 조금씩 그녀의 생각들로 갖춰진 공간이 되어버리고, 그녀의 공간에 행복이 자리 잡을 틈이 없었다. 허무했다. 3년간의 일들이, 대기업에서 바쁘게 살아왔던 일들이. 매일 아침 바쁘게 출근길에 올랐고 지하철로 30분 남짓. 꽉 들어찬 지하철 사이에서 그녀는 졸고 있었다. 그래 바쁘니까, 힘드니까.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그녀를 버티게 했다. 그녀는 좋은 척을 했었다. 주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편안한 경리일을 시작하면서, 출퇴근길 1시간, 하루를 24개로 쪼개면 그중에 하나인 작은 시간 속에서, 피곤함과 바쁨을 느끼지 못해 오는 현상이었다.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핸드폰의 SNS를 계속 들여다보는 이유였다.

 

2년 동안, 주혁을 보는 주희의 감정은 존경그 자체였다. 멋있었고, 따뜻했다. 일을 할 때는 냉정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 ‘이번 주 까지 마무리 지어야 해요. 잘 부탁합니다.’ 항상 말 뒤에 붙이는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이 그를 보여주는 듯 했다. ‘아버지’, 그래 아버지라는 단어가 뜬금없이 생각났다. 그 단어에 놀란 주희는 서둘러 서류를 작성했다. 주혁이 주희네 부서로 온 후, 많은 회식이 있었고, 그 날도 회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고급스러운 일식집도 아니었고, 소고기를 먹는 자리도 아니었다. 삼겹살. 아주 좋은 회식 메뉴. 그 날도 특별한 것 없이 삼겹살을 먹으러 갔고, 20명 남짓 사람들, 프로젝트가 끝난 것을 축하하며 그들은 웃으며 술을 마셨다. 한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처음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주희의 앞에 주혁이 앉아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적당히 취했고, 몇몇은 집으로 갔으며, 몇몇은 아직도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다. 정 중앙 자리에 둘이 앉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구석진 자리에 은밀하게 앉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연히 어느 자리에 둘이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과장님은 참 좋으신 분인 것 같아요. 아내 분과 애기들 사진도 보기 좋고요. 무엇보다 부서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항상 고맙습니다.”

주희씨는 젊은 나이에 이렇게 회사에 들어와서 일하는 것을 보니 보기가 좋아요. 버티고 있는 것도 대단하고요. 대학에 유학에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은데, 주희씨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참 별것 없는 대화.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툭 뱉은 말, 별것 아닌 삼겹살을 먹는 자리. ‘좋은 사람이니까라는 말이 주희의 머릿속에 아주 빠르게 스쳐갔다. 꽁꽁 감춰두었던, 차곡차곡 쌓여져있던, 감정은 이라는 문을 통해 나오는 순간, 터져버린 수도꼭지처럼 잠글 수도 없이 터져 나왔다.

. 그래요? 어쩌시다가...”

1때였어요.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건강하셨는데. . 심장이 그냥 멈췄다고 해요.”

주변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고요해진 세상. 주혁와 주희만이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혁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주희의 과거 등등. 서로 너무도 빠르게, 천천히, 깊게, 아주 얕게, 빠져들어 갔다.

다들 많이 취하셨으니, 오늘은 여기서 끝냅시다. 내일 회사도 가야하잖아요.”

취한 부장이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다행이 취직한 중소기업은 지금 주희가 살고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따로 이사를 갈 필요도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전 회사와 달리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정도였다. 자취를 시작한지 3, 그 전에도 항상 바쁘신 어머니 덕분에 요리 실력은 꽤 봐줄 만 했다.사실, 요리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어린 동생들을 챙기기 위한 요리였다.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바쁜 직장 생활 때문이었는지, 자취방에서 밥을 해 먹는 날이 많지 않았다. 항상 도시락이나 편의점, 회식 등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곤 했다. 중소기업으로 취직한 후에, 6시면 항상 퇴근을 하는 바람에 집에서 음식을 많이 해먹기 시작했다. 3년간 자취방에서 해 먹은 밥 보다, 중소기업에 취직한 1달 사이에 훨씬 많은 집밥을 먹게 되었다. SNS를 보던 주희는 문뜩 생각이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 아니, 김치가.. 아 알았어요. 잘지내요. 아픈 곳 없고. 아니, 김치 좀 보내주세요. 할머니가 한 거 있잖아. 그거. 그거면 돼. 대학? 굳이 가고 싶다면 보내야겠는데. 요즘 학자금 대출도 잘 되어 있고, 자기들이 알아서 사는 거지 뭐. 엄마나 좀 쉬엄쉬엄 하세요.”

김치가 필요하다고 한 전화에서 어머니의 주희와 동생들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로 가득했다. 전화를 끊고, 눈썹을 한번 위로 치켜세웠다가, 긴 한숨을 내쉬고, 폰을 주머니에 넣고, 양 팔을 겨드랑이 속에 파묻은 다음에, 집으로 향한다. 구두소리 또각 또각.

 

주혁과 주희는 둘 다 많이 취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초여름의 더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바람 한 점도 몸을 괴롭히지 못하니, 머릿속에 생각들은 더욱 활기를 쳤고, 둘은 생각했다. 아니 주희 혼자 만에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주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과장님, 우리 한잔 더 해요.”

? 좋아. 그러자. 날도 좋은데 밖에서 간단하게 먹을까? 치킨에 맥주?”

배는 별로 안 고파요. 그냥 편의점에 앉아서 맥주 마셔요.”

하하. 주희씨는 대학생 같네? 그래, 오랜만에 그것도 좋을 것 같아. 가요.”

바람 한 점 없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초여름 저녁, 주혁과 주희는 그렇게 맥주를 마셨다.

주혁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말했다. 뜻하지 않은 아이와, 그 아이들이 쌍둥이라는 것,

아내와의 연애기간은 짧았지만, 애가 생겨서 서둘러 결혼했다고. 들어가는 돈은 많지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희는 주혁의 아내가 참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부러웠고, 질투가 났다.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은 빠르게 커졌다. 3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그 2년 반간의 관계보다 더 많은 진전이 있는 듯 보였다. 저기 한 200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는 부분에 빨간색,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모텔이 보였다. 주희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고개를 한번 저었고, 주혁의 말에 집중하려 했다. 고요해진 세상, 들리는 것은 없고, 보이는 것은 살짝 풀린 눈, 살짝 올라간 입 꼬리, 입술 보호제를 발라서 살짝 빛나는 색이 없는 입술, 온 생각이 그에게 집중 되었다. 어떻게 빨간색,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모텔로 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혁과 주희는 입을 맞추고 있었고, 그의 손은 이미 주희를 탐스러운 듯이, 부드럽게 탐하고 있었다.

방금 전 생각하던 주혁의 모습은 아니었다. 불과 몇 분전, 몇 시간 전 그 지난 2년 반간의 관계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기분. 주혁은 그냥 남자였고, 유부남이었고, 쌍둥이가 있었다. 머릿속에 주혁의 아내와 아이들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순간, 주희는 정신을 차렸고, 주혁을 밀쳐냈다.

, 미안합니다.” 주혁이 말했다.

주희는 자신이 역겨웠다. 주혁의 미안하다는 말에 더욱더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죄송해요. 과장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아닙니다. 주희씨, 제가 미안합니다.”

그만 가봐야겠어요.”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일이 될 수 있다. 사람 손바닥에 올려 놓은 개구리가 화상을 입을 수 있는 것처럼. 주희가 단순히 주혁과 입을 맞췄고, 실수였고, 중간에 정신을 차렸고, 완벽한 불륜을 아니었다고 말 할 수 있을지라도, 주희에게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고, 죄책감이었다. 실수도 맞았고, 죄책감도 가져야 할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다음날 주희는 회사를 갔다. 당당하지 못했다. 눈치를 봤다. 누군가 본 것이 아닌가,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도 전부 주희를 보며 하는 얘기 같았고,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 주혁의 책상에 올려져있는 2장의 사진을 볼 수 없었다. 주혁이 주희를 불렀다.

주희씨, 어제 일은..”

죄송해요. 과장님

아닙니다. 저도 많이 취했었고,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충분히 사과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죄송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차라리 주혁이 그냥 단순하게 주희의 몸을 원했고, 그런 관계를 원했던 사람이라면, 더 쉽게 떨쳐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의 감정에 너무 치우친, 술에 의한, 실수였다고. 역겨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와중에 주희가 자신을 더 역겹게 생각한 것은 이런 말을 하는 주혁이 전혀 싫지 않아서이다. 오히려 그런 주혁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주희 자신에게 와준다면 그의 쌍둥이 아이들마저도 키워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역겨웠다.

 

회사에서는 빠르게 소문이 났다. 둘이 따로 만난 지 6개월이 넘었다거나, 매번 회식자리 때마다 서로 나가는 걸 봤다는 사람과, 둘 사이에 애가 있다는 소문, 여러 가지 소문이 났다. 누군가 그 날 둘이 모텔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나머지는 다 거짓말이더라도 그것 하나, 둘이 같이 모텔에 들어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주희는 자기 앞에서 티내지 않는 사람들과 뒷말로 쓰레기, 가정 파괴자, 불륜녀,라는 수식어가 주희를 따라다녔다. 그런 상황에서도 점점 더 주혁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는 것이 너무 역겨웠고 싫었다. ’과장님은 좋은 사람이었다.’ 주희가 도망칠 방법은 하나였다. 회사를 떠나는 것.

 

주희집 뒤에 있는 규모가 제법 되는 마트에서 매일 할인하는 품목이 다른데, 항상 그 중에서 할인율이 높은 재료들을 사오곤 한다. 그 날도 회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른쪽으로 돌아 언덕을 올라가는 길, 장을 좀 보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SNS에 재밌는 것이 없나 찾아보고 있던 주희는 문자 하나를 받았다. 주혁이 보낸 문자였다. ‘잘 지내고 있나요?’ 주희는 잠깐 멈춰 섰다. 뭐라고 답장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고, 문자를 지웠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후, 한숨을 쉬었다. 답장을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들었으나, 답장을 하고 싶었다. 문자를 지운 것을 후회했다. 아니 후회하지 않았다. 눈앞에 작은 종이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앞에는 어떤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노래를 듣는 것처럼 보였다. 깔끔한 양복 차림에 이런 날씨에 다소 더울 것 같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남자를 불렀다.

저기... 저기요! 혹시 이거 떨어뜨리신 거 아닌가요?”

남자는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뜬금없이 아주머니가 잃어버리셨을 거라고 했고, 재료가 많지 않으니, 괜찮을 거라고도 했다. 말이 많았다. 말을 마친 남자는 한쪽 이어폰을 마저 빼고 주위를 둘러보며 올라갔다. 주희는 남자가 사라질 때 까지 남자를 보며 올라갔다. sns도 보지 않았고, 주혁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상태였다. 오랜만에 느껴본 기분에 의아해 하며 자기 집을 지나, 뒤쪽에 있는 마트에 들어갔다. 마침 어제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도 왔고, 어묵볶음도 먹고 싶었다. 그날 저녁 주희는 김치찌개와 어묵볶음을 먹었다. 주혁의 문자를 삭제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고,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