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주의/의식의 흐름 주의/증명 같은 거 없음 그냥 생각나는대로 씀 주의※
한번은 캠퍼스에서 전도중인 기독교인과 만난 적이 있었다.
원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마음일까 궁금해서
한가할 때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 이야기를 들어보는 편이었고
그 날도 잠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봤었다.
꽤 지난 일이라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이런 비유를 들었던게 생각난다.
'이 종이를 보세요, 이렇게 쉽게 찢어지죠. 하지만 이 종이를 이렇게 단단한 테이블에 붙여 놓으면 절대 찢을 수 없어요.
이 종이가 인간이라면, 테이블은 하나님이에요. 우리 인간은 한없이 미미한 존재죠. 하나님 보시기에 먼지 같은 존재에요.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 고착함으로써 이렇게 찢기지 않을 수 있어요.'
실존적 위기는 이와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싶다.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을 절대적 기준에 의지하고 싶은 심리...
나도 그런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마음 속으로 존경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어른스럽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의 소유자라서 항상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따뜻하게 대했고,
그러면서도 자기 의견을 드러내고 자기 소신을 지키는 데 두려움이 없는 친구였다.
그런 그 친구도 스스로 털어놓길, 자신도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아도 속으로는 늘 고민하고 갈등한다고,
닻 하나에 의지해 바다 위에서 폭풍우를 견디는 배처럼, 떠내려 가지는 않지만 늘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깊이를 알수 없는 바다처럼 늘 흔들리는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할 때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그 긴 항해를 끝내고 단단한 땅위에 두발을 딛을때 느낄 안도감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삶은 끝없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과 같아서
언젠가 이 항해를 끝내고 단단한 대지 위에 두발을 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종교는 육지에 대한 환상과 신기루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어디에도 육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느끼는 혼돈이 실존적 위기라 할수 있지 않을까)
다시 아까 전의 기독교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잠시 그런 생각들을 한 후에 가방에서 전공서 한권을 꺼내 건내주고 그 사람에게 물었다.
'이 책도 그렇게 찢을 수 있으시겠어요? 종이를 꼭 테이블에 붙이지 않아도 찢어지지 않고 견딜 수 있어요.
우리는 단단한 땅위에 두발을 붙이고 있다고 느끼지만, 이 땅도 무수한 먼지들이 중력으로 뭉쳐있는 것일 뿐이에요.
지구는 그저 허공에 떠 있을 뿐이죠.
꼭 신에 기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면 보이지도 않고 응답도 없는 신에게 기대기 보단,
옆에서 따뜻한 말한마디라도 해줄수 있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기대는 게 낫죠.
사람들은 때로는 실수하고 나쁜 짓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협력하고 사회를 이루고 공존하며 살아가잖아요?
그래서 저는 신보다는 사람의 선의를 믿어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실존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 우리는 실존해 왔으며 실존하고 있다.
비록 모든 존재는 결국 공허로 돌아갈 것이지만, 그런 사실이 우리의 현존까지 공허로 만들지는 않는다.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의 실존이 아니라 너무 오랜 세월 인류가 신에게 의지하면서 잊혀진 자존이다.
너무 오랫동안 자존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머지,
삶의 목적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거대한 자유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