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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고전 번역가의 길로 초대합니다.
게시물ID : history_128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대밝기
추천 : 7
조회수 : 791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2/07 07:08:58
 
 
안녕하세요. 오유에서 눈팅을 맡고있는 작성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유인 분들께 제가 공부하고 있는 유관분야의 괜찮은 직업을 하나 소개해볼까 해서요. 어느 게시판에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지나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신 역게 분들께 먼저 알려드리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제가 가끔이나마 오유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 역게이기도 해서(이건 별로 상관없습니다만) 여기에 우선 올려봅니다. 과거의 문헌에 관한 글이라 전혀 쌩뚱맞은 내용은 아니라서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혹 문제가 된다면 얼른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에서도 밝혔다시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조선시대의 문헌(여기서 조선만을 언급하는 것은, 현존하는 기록물 중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긴 국가가 조선이고, 조선 이전의 문헌은 사실 남아있는 것이 적어서 이미 번역이 되었거나, 도저히 번역할 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에 대해서입니다. 이미 대학에서 국문학이나 한문학, 한문교육, 역사, 동양철학, 불교, 유학, 고미술사, 한의학 등을 전공하신 분이라면 이 직업에 대해서 잘 알고계시거나 한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문 고전 번역가는 말 그대로 한문으로 되어있는 조선시대의 옛 문헌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고전번역가가 학계의 블루오션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기존에 한문 고전을 번역하는 사업을 주도해온 민족문화추진회가 2000년대 후반들어 한국고전번역원으로 국가기관이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문 고전을 번역해 온 기관은 크게 (구)민족문화추진회=(현)한국고전번역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사편찬위원회, 전통문화연구회등의 공공기관들과,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등등 여러 대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연구기관들, 그리고 몇몇 민간 출판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일별해보면 얼핏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실제로 연구인력을 제외하고 번역에 종사하는 인원만 헤아려보면 겨우 수백명에 불과하고, 이 인력으로는 아마 앞으로 삼사백년이 지나야 우리나라에 보유하고 있는 한문 저작들을 완역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제기되었습니다.
 
일전에 제가 역게에 한번 제 푸념을 늘어놓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대략 말씀드렸던 것 처럼 한 나라가 가진 역사가 아무리 유구하고,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후대에 지속적으로 읽히고 재해석되고 재생산되지 않으면 그 역사와 전통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나(누구였죠?), 중국이 얼마전부터 신중화주의를 표방하며 문화대혁명 때 그토록 탄압했던 공자와 유학을 다시 되돌아보고 있는 사실들을 보자면 과연 우리는 그만한 가치를 지닌 위인이나 작품, 우리의 문화의 표준이자 근원으로 삼을만한 사람을 현재 가지고 있는지, 있다면 과연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만 붙들고 있을 수 만은 없으니까요.(그 분들이 훌륭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논의를 하기에 우리는 너무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집은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국문집총간>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고 있고, 새로운 문집이 발굴되는 즉시 추가해서 계속 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만(이 자료는 <한국문집총간>을 구매하지 않아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구축한 한국고전종합데이터베이스(db.itkc.or.kr)에서 텍스트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 현대어로 번역 된 것은 그 중에서 겨우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우리는 과거 문인들의 사유, 삶, 지식, 추구했던 가치와 이상에 대해서 1%이상은 알 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조상들 중에 셰익스피어, 괴테, 세르반테스 같은 인물이 없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으며, 파우스트나 돈키호테같은 작품이 없다고 슬퍼할 수 있겠습니까?
 
기존에 어려운 환경에서 고전 번역에 종사하시던 선생님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주장한 결실로, 한국고전번역원이 공공기관으로 출범하면서 그동안의 어려운 여건들이 점차 개선이 되기 시작했고, 번역가 양성과정이나 번역실무에 있어서도 점차 체계를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여러 여건들이 갖추어지고 있으며, 아직 진입장벽이 치열하지 않은 현재의 시점이야말로 해볼만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푸념은 여기서 각설하고, 골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한문번역가는 한문 고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직업으로, 과거 역사나 역사문헌, 옛 글, 전통학문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매우 적합합니다. 번역가이기 이전에 학자이기 때문에 늘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안정된 수입을 거두면서 공부만 가지고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학계에서 이런 경우는 이공계가 아닌 바에는 거의 상상할 수 없고, 대개의 경우 교수 임용은 마흔이 넘어야 합니다. 평생 못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임용 전까지 학자가 겪는 참담함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정에 비하면 역자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안정적으로 생활하면서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 연봉은 대략 초임 2600-3200정도로 낮습니다만, 아무래도 학문인 특성상 돈을 벌 생각으로 한다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제한이 없습니다. 기본급여에 추가번역료, 강의, 탈초(초서체를 해서체로 바꾸는 일입니다), 자문, 학회발표 등 한 가지를 공부해서 활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무척 넓습니다. 번역료만 봐도 모든 언어의 번역 중에서 한문번역이 번역료가 가장 높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급여가 폭발적으로 오르기 때문에 번역 실무 10년차 이상이면 모든 수입을 합해 억대연봉까지도 가능하고, 전문직으로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이 없기 때문에 실직과 노년재취업 같은 문제도 없습니다. 젊어서 공부좀 해두면 갈수록 남은 평생이 윤택해집니다.
 
3. 양성기관으로는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한국고전번역교육원(edu.itkc.or.kr), 전국 5개 대학(고려대, 성균관대 외)의 고전번역협동과정의 석,박사과정이 대표적이고,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에 있는 지곡서당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도회, 전통문화연구회 등이 교육과정이 유사합니다. 대체로 3년 과정으로 사서오경, 소학, 통감절요, 사기, 장자, 주서백선(주자의 편지글 백선)등의 경전 및 중요 저작들을 배웁니다. 하지만 인턴개념으로 번역 실무를 익히는 과정을 2-4년 둔다고 보면 교육과정이 짧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나이가 어릴 때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에는 대체로 20대 초반에 시작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4. 평생해도 다 못할 만큼의 일감이 있고, 중국이나 일본의 고전 문헌도 사실상 번역 대상에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할 수 있는 것, 할 만한 것들이 넘쳐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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