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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과거의 핸드폰
게시물ID : panic_917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니기붕
추천 : 37
조회수 : 3140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6/12/07 17: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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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삐-   삐-   삐-  "
 
오른손엔 소주병을 들고 왼손엔 한 뭉치의 알약을 들고 입안에 털어 넣을려다 주저하고 있던 석수는 어디선가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깜짝놀라 들고있던 알약 몇개를 떨어뜨렸다.
 
"무슨 소리지?"
 
경고음 같은 이상한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방안을 울렸다. 왼손에 들고있던 알약들을 쟁반에 내려놓고 이상한 소리에 겁먹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오른손에 소주를 홀짝이며 귀를 귀울이고 소리를 천천히 따라갔다. 방 한구석에 잡동사니를 쌓아놓은 곳에서 소리는 멈추지 않고 나고있었다. 하나 둘 쌓인 물건을 치우고 소리가 나는 박스를 찾았고 박스의 뚜껑을 열어보던 석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이게 어떻게? 전원도 없을텐데..."
 
 그 박스 안에는 옛날 어렸을적 쓰던 구식 폴더폰들이 들어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벨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벨소리가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든 석수는 그제서야 지금 울리는 정체불명의 벨소리가 생각났다. 어렸을적 특별한걸 좋아했던 석수가 남들보다 튀기 위해 설정하고 다녔던 벨소리였다.
 
"뭐지? 내가 쓰던 핸드폰은 맞는데... 이게 지금 왜 울리는거지?"
 
핸드폰 액정에는 발신번호 표시제한 이라고 표시돼있었다. 석수는 덜컥 겁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김석수는 지금 자살을 시도하려는 중이었다. 중학생때 부모님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변변한 친척도 없어 혼자가 되었다.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으로 어찌어찌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을 했지만 학창시절은 계속 왕따를 당하느라 친구하나 없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겁이 많아지고 밝았던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해 다른사람과 대화도 잘 하지 못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김석수에게 행복은 절대 찾아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평생을 일했던 공장은 3개월의 월급도 밀린채 3일전에 문을 닫아버렸고 짝사랑하던 용기를 내서 고백했건만 보기좋게 차였다.
석수는 자기의 인생을 저주하며 자살을 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겁이나 망설이던 중이었다.
 
'이 전화를 받아봐야 하나?'
 
한껏 겁먹고있던 석수는 벨소리가 울리는 핸드폰이 문득 궁금해졌다. 마치 자살하려던 자기를 말리려는 신의 손길 같았다.
 
'이 전화가 신이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전화면 좋으련만, 그래, 어차피 죽을려고 했던거 확인이나 한번 해보자.'
 
고민끝에 결심한 석수는 경고음을 벨소리로 울리는 핸드폰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어,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김석수 맞나요?"
 
석수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화기 반대편에서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제가 김석수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와, 연결했다. 진짜로 했어! 히히. 진짜로 김석수 맞죠? 19xx년 xx월 xx생 김석우?"
 
"네, 맞아요. 그런데 누구시냐고요?"
 
"아싸!"
 
전화기 반대편에선 뜬금없이 석수의 신상정보를 물어봤다. 그에 석수가 대답해주자 앳된 목소리는 혼자서 기뻐했다.
 
"나야 나, 김석수. 중학생 김석수."
 
"네? 김석수요? 중학생 김석수?"
 
"그래, 과거의 너."
 
"뭐..뭔?"
석수는 벙찐채 되물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지 머리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전원도 없는 옛날 핸드폰에서 벨이 울리는것도 이해가 가지않는데 상대방은 자기가 과거의 자신이라니. 처음에 겁먹었던 만큼, 기대했던 만큼 분노가 석수를 집어 삼켰다.
 
"이런, 씨발. 방송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그래도 죽겠는사람한테 장난치지말고 꺼져!"
 
발악하듯 소리치고 핸드폰을 던져버리려던 석수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한마디에 행동을 멈추었다.
 
"끊지마! 나 연주한테 고백해도 될까? 이것만 대답해줘1"
 
김연주.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석수는 빠르게 차분해지며 다시 핸드폰에 말을 했다.
 
"뭐? 연주? 김연주?"
 
"응. 내 짝꿍 김연주. 나 걔한테 고백하면 사귈 수 있을까?"
 
김연주는 석수가 중학생때 짝사랑했었던 짝꿍이다. 귀엽고 이쁘장한 연주는 같은 반 거의 모든 남자애들이 좋아했었고 석수는 연주 집앞에 찾아가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보기좋게 차였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 연주는 내가 고백했던걸 애들에게 말했고 그때부터 왕따가 시작됐었다. 아무래도 혼자살다보니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지저분해보이는 석수가 남자애들 모두 좋아하는 연주한테 고백한게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마!"
 
석수는 전화기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응? 하지마? 왜?"
 
"하지말라면 하지마. 어차피 차일꺼야."
 
"진짜...?"
 
반대편에서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석수는 아무래도 이 상황을 진짜라고 믿어야 할 것 같았다.
 
"그거 물어볼라고 전화했어? 전화는 어떻게 한거야?"
 
"응, 이거 물어볼라고 했어. 전화는 요즘에 유행하는 괴담인데 어쩌고 저쩌고..."
 
자살하려하기전에 어렸을적 자기 자신과 통화라니, 상상도 해본적이 없는일이 벌어져 석수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일인지, 진짜 자살하지말라고 신이 벌이는 일인가 하고 생각할 때 쯤 석수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 질문을 던졌다.
 
"잠깐, 그럼 너 오늘 연주한테 고백할려고 했어?"
 
"응, 이제 연주네 집앞에 찾아가서 고백할라고 했어. 근데 미래의 니 말 듣고 안할려구."
 
석수는 대답을 듣고 한번 더 물어봤다.
"부모님은? 외식하러 나갔어?"
 
"아니, 아직. 아 이제 나갈려고 하시네."
 
석수는 확신했다. 오늘이다. 석수가 연주한테 고백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외식하러 간다던 석수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연주에게 가느라 따라가지않은 석수만 빼고.
 
"막아야돼! 부모님 못나가게해봐! 어떻게든!"
 
석수는 그 날을 떠올리며 전화기에 소리쳤다.
 
"응? 왜?"
 
"물어볼 시간에 부모님 가서 막어!"
 
"아,알았어."
 
지금 나가면 죽는다는 걸 알고있는 석수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곧장 대답이 들려오고 어릴적 자신이 뛰어가는 소리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아빠 내가 미래랑 전화를 했는데 #@$#$%...."
 
하지만 어린아이가 말하는 황당한 얘기를 믿을 사람이 없었기에 부모님의 호통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이후로도 설득하려는 말소리가 들렸지만 부모님의 외출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은듯하다.
 
"여보세요? 약속한거라고 꼭 가야된다는데? 내 말은 믿어주지도 않어."
 
"...."
 
석수는 생각했다. 그 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부터 불행했던 자신의 인생을 떠올렸다. 얼마나 세상을 저주하고 사람을 저주하였는지.
심지어 지금은 자살까지 하려던중이었으니까, 그마저도 겁이나 주저하고 있었지만.
계속 생각해봐도 석수에겐 불우한 기억만이 생각났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런 인생따위 진작에 없어졌다면. 그렇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을 필요도 없었을텐데. 어차피 지금도 죽으려 했으니까.
 
"그럼, 너도 같이 간다그래."
 
"응? 좀 전까지는 말리라며?"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같이가는게 좋겠어. 따라가서 맛있는거 먹어."
 
"정말? 어차피 고백도 안할거니까.. 그럼 나도 따라갔다올께. 고마워! 미래의 나야."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겨 소주병 나발을 불던 석수의 몸은 서서히 그 형체가 희미해졌다.
출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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