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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외로워서 필사하는 글
게시물ID : phil_129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Δt
추천 : 1
조회수 : 50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2/13 23:04:31

산비탈의 나무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한 젊은이가 자신을 피해 가는 것을 목격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얼룩소’라는 도시를 둘러싼 산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보라, 이 젊은이가 어떤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아, 피곤한 눈으로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 젊은이가 앉아 있는 나무를 붙잡고 말했다. “두 손으로 이 나무를 흔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나무를 괴롭히고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지. 우리도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심하게 구부려지고 괴롭힘을 당하는 걸세.”
 
그러자 젊은이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가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던 중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대꾸했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인간은 나무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나무는 높고 밝은 곳으로 오르려고 할수록 뿌리를 더욱 힘차게 대지를 향해 아래로, 어둠 속으로, 깊은 곳으로-악(惡)의 내부로 뻗어가려고 하지.”
 
“그래요! 악의 내부로!” 젊은이가 소리쳤다. “당신은 어떻게 내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었나요?”
 
차라투스트라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먼저 영혼을 꾸며내지 않고는 결코 영혼을 들여다볼 수 없는 거라네.”
 
“그래요, 악의 내부로!” 젊은이가 또 한번 소리쳤다.
 
“차라투스트라, 당신은 진리를 말했어요. 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한 이후로 더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으며, 아무도 나를 믿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나는 너무 빨리 변해요. 나의 오늘은 나의 어제를 부정하거든요. 나는 올라갈 때 종종 계단을 건너뛰기도 하지만, 계단은 이런 행위를 용서하지 않지요.
 
위에 올라가면 나는 언제나 혼자입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고독이란 냉기는 언제나 나를 떨게 만들어요. 나는 높은 곳에서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나의 경멸과 동경이 함께 커집니다. 내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올라가는 그 자를 더욱 경멸해요. 그는 높은 곳에서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올라가며 비틀거리는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라요! 나는 거칠게 헐떡이는 내 숨소리를 얼마니 비웃는지 몰라요! 나는 날아다니는 자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몰라요! 높은 곳에서 얼마나 피곤한지 몰라요!”
 
이 말을 하고 젊은이는 입을 다물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옆에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나무는 여기 산속에 외롭게 서 있군. 인간과 짐승을 굽어보며 높이 자랐어.
 
말을 하고 싶어도 자기 말을 듣는 자가 없을 거야. 그만큼 높이 자란 거지.
 
이제 나무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 거야. 무얼 기다리는 걸까? 그것은 구름이 있는 곳과 아주 가까이 살며 최초의 번개를 기다리는 게 아닐까?”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하자 젊은이는 격렬한 몸짓을 하며 외쳤다. “그래요. 차라투스트라, 당신은 진리를 말하고 있어요. 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나의 멸망을 바랐어요. 그런데 내가 기다리던 번개는 바로 당신입니다! 보세요, 당신이 우리에게 나타난 이후로 나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요? 당신에 대한 시샘이 나를 파괴했어요!” 젊은이는 목 놓아 울며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팔로 그를 감싸 안고 함께 길을 떠났다.
 



한동안 나란히 걷다가 차라투스트라가 말문을 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구나. 그대가 하는 말보다 오히려 그대의 눈에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대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고, 여전히 자유를 갈망한다. 그대는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극도로 긴장해 있다.
 
그대는 툭 트인 산꼭대기로 올라가려고 하고, 그대의 영혼은 별들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대의 좋지 않은 충동도 자유를 갈망한다.
 
그대의 들개들은 자유를 그리워하고, 그대의 정신도 모든 감옥을 열어놓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 들개들은 지하실에서 쾌락을 달라고 짖어댄다.
 
내가 보기에 아직 그대는 자유를 꿈꾸는 포로다. 아, 그러한 포로의 영혼은 영리해지지만, 교활하고 사악해지기도 한다.
 
정신이 해방된 자도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그의 속에는 아직 감옥과 곰팡이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더 순수해져야 한다.
 
그렇다. 나는 그대가 처한 위험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절히 애원하건대, 그대의 사랑과 희망을 내버리지 마라!
 
그대는 아직도 자신을 고귀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대를 원망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다른 사람들도 그대를 고귀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고귀한 자가 모든 사람ㄹ에게 방해됨을 잊지 마라!
 
고귀한 자는 선한 자들에게도 방해된다. 그래서 그들이 그를 선한 자라고 부를지라도, 그러면서 그를 옆에 제쳐놓으려고 한다.
 
고귀한 자는 새로운 것과 새로운 덕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반면에 선한 자는 낡은 것을 원하고, 낡은 것을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고귀한 자가 선한 자가 되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 고귀한 자가 뻔뻔스러운 자, 조롱하는 자, 파괴하는 자가 되는 것이 위험하다.
 
아, 나는 최고의 희망을 잃어버린 고귀한 자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을 잃은 자들은 고상한 희망을 모조리 비방한다.
 
그들은 순간적인 쾌락에 빠져 뻔뻔스럽게 살았다. 삶의 목표가 없었던 것이다.
 
“정신도 쾌락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신의 날개를 잃고 말았다. 이제 그들의 정신은 이리저리 기어 다니고, 이것저것 갉아먹으며 몸을 더럽힌다.
 
한때 그들은 영웅이 될 생각이었지만, 이젠 탕아가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 영웅은 원망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절히 애원하건대, 그대의 영혼 속에 들어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 최고의 희망을 신성하게 간직하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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