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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게시물ID : freeboard_14394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thril
추천 : 2
조회수 : 16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12/13 09: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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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지하철엔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당장 어제 이 시간에는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평일 아침에 집회가 있거나 장이 열린 것도 아닐텐데. 졸려서 귀만 연 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문득 모란역에 가까워질 때쯤 게슴츠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안경을 쓴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핸드폰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짧은 순간 눈을 마주쳤지만 이내 난 다시 졸음에 굴했고 여성은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모란역에서 난 여전히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분당선 승강장으로 천천히 걸었고 늘상 타는 자리에 섰다. 눈 앞에는 아까 내 앞에 서있던 여성이 있었다. 지하철이 왔고 사람은 평소보다 더욱 많았다. 어찌어찌 함께 쓸려 들어갔고 난 최대한 메고 다니는 백팩이 타인에게 방해가 안 되길 바라면서 간신히 파라오가 관 속에서 취했을 법한 자세로 핸드폰을 들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여성은 들어갈 때 함께 쓸려간 탓인지 내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붙이고 여전히 핸드폰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다시 눈을 마주쳤지만 역시 찰나일 뿐이었다.
  다행히도 난 내려야 할 역이 멀지 않았고 간신히 회사에 도착한 뒤, 흔한 과장들의 수다 몇 마디에, 두 개는 타야 제맛이 나는 카누 한 잔에, 올라가기 추워서 피울까 말까 고민하다 옥상에 사는 고양이 얼굴이라도 먼 발치에서 보러 억지로 올라가서 피우는 담배에 졸음을 쫓다 문득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예전의 나라면 그래도 같은 역에서 타서 같은 역에서 환승하고 옆에 서는 사람이 있으면 찰나의 인연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여 두근대던 시절,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슨 들을 거리가 생길까 이어폰도 잘 꽂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그 어떤 기복과 두근댐도 없고 회사에 와서야 메말라진 감성에 커피가 더욱 쓰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단순히 일에 지친 30대 중반의 아재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근 10년이 넘도록 들락날락하다 이번 계정도 방문수 500을 채운 오징어이기 때문인가. 도통 모를 일이다.
출처 그래서 카누는 두개는 타야 좀 마실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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