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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라라랜드 리뷰; 삶을 매력적으로 보이게하는 건 현실의 무게일지도
게시물ID : movie_636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근진
추천 : 4
조회수 : 6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18 00: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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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쓰느라 반말체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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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를 잔뜩 먹고 트름을 시키는 품안에서 이내 잠들던 아이가 오늘따라 분유도 남기고 엄마에게 안아달라 성화였다. 아빠에게 안겨서는 분유도 싫다, 잠들기도 싫다, 온몸으로 거부하다가 나에게 와서는 화사하게 웃으며 발을 굴렀다. 그렇게 무릎을 구부리면 엄마는 번쩍 들어올려준다고 믿고 있다.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온 어깨위에 지구에서 아이의 무게를 뺀 만큼 엄마의 무게가 얹혀온다. 엄마라는 직업에 쉬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없다. 아이가 커가는 만큼 그 무게는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경험칙 하나로, 아이의 믿음에 번쩍 응답하는 힘을 낸다. 발을 서너번 구르고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웃음을 지을 때쯤 아이를 맡기기로 한 시누이가 문을 두드렸다. 아이가 시누이는 낯가리지 않았으니까, 다시 번쩍 들어 아이를 넘겨준다. 아이는 어리둥절해서 옷을 갈아입는 엄마를 보고, 자기가 안긴 사람 얼굴을 보고, 다시 내얼굴을 보고, 그럼 내가 안긴 이 사람은 엄마가 아니구나, 확인하며 시누이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트린다. 차마 나갔다오겠다고 아이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서둘러 문밖으로 사라진다. 남편이 오늘은 꼭 라라랜드를 봐야겠다고 했다. 

그리니치 천문대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위플래시 감독이 영화가 어렵다는 평가에 뒷통수를 맞고 영화를 걍 놔버렸나보다 했다. 모놀로그 연극이라니, 이건 여자버젼 시네마천국인가요?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팡팡 아름답게 떠다니는 그림 뒤로, 문닫으며 들려왔던 아이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치며 영화가 너무 텅텅 비어 그렇다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남자가 도서관 앞에서 클락션을 울렸을 때, 영화가 옛날 무성영화의 분위기만 따온 게 아니라, 그냥 올드하구나 했다. 저 남자가 나오면 어떤 영화도 노트북이 되나봐요. 저 여자는 성공하겠죠, 그리고 둘은 다리들고 키스하며 끝나나요, 훗? 

5년 후에 클럽을 들어간 여자 앞으로 흘러가는 장면이 그래서 내 뒷통수를 쳤다. 감독은 누가봐도 작위적인 로망 위에 사람들을 띄워놓고 오래지 않아 그 구름을 걷어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너 지금 떠있어, 내가 띄워주고 있어, 어.화.둥.둥. 즐겁지? 즐거워야지? 동의하지 않아? 그 이유는 뭐지? 이게 비현실적이어서? 그래, 내가 그 현실을 보여주지! 하고, 내 현실의 무게에 중력가속도를 곱해 나를 땅위로 메쳤다. 내가 느꼈던 거리는 지구에서 아이의 무게를 뺀 만큼인데, 감독은 거기에 중력가속도를 곱해주었다. 

땅에 쳐박힌 채로, 영화의 힘이 아파왔다. 아 시발. 그래. 이거 위플래시 감독이지. 위플래시는 사람을 있는대로 궁지에 몰아넣었다가 마지막에 그 중력을 풀어주며 깃털처럼 날려보내더니, 이건 정반대의 영화였다. 공주안기로 둥둥 띄워주더니 그 띄워준 만큼 땅에 매다꽂기. 그나마 다행(?)인 걸까, 깃털처럼 띄워줬으나 욕나오던 위플래시와는 또 정반대로, 뒷통수를 쳐갈겼으나 라라랜드는 기분이 나아지게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땅에 쳐박힌 힘보다는 내가 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낫다고, 이 영화는 말해주는 것 같다. 로맨스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 로맨스의 끝에서 마주한 육아의 헬 속에서 허덕이는 나와 그 예쁜 그림 사이의 거리가 느껴지곤 한다. 모유수유로 피폐해진 한 친구와 모교에 갔다가,  학점과 시험 얘기로 분주한 아이들을 보며 친구가 말했다. 그래봤자 니네 십년후엔 젖소... 우리는 경제학 전공 젖소, 경영학 전공 젖소라며. 나도 그런 로맨스 속에서 설레였는데, 그 끝은 happy ever after 인줄 알았는데. 지금 나는 로맨스 영화를 이해할 줄 아는 젖소가 되는 마법에 걸리며 또다른 거지같은 스토리를 시작하고 있는 거다. 무엇을 해도 아이의 울음소리 환청을 매달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영화를 보러온 엄마의 이야기는 누구도 읽고 싶지 않은 잼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살 수 밖에 없는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내 삶, 그 자체인 것이다. 

라라랜드가 포착하고 있는 이야기는 일견 미아의 드림컴트루인 것 같다. 하지만 그랬다면 미아의 성같은 집과 아이가 나오고, 세바스찬은 시네마천국처럼 예쁜 과거로 회상되고 끝나면 그만인 것을, 영화는 집요하게 세바스찬의 표정과 손길을 따라가다가 결국 그들이 꿈꾸었을 이야기까지 묘사한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키스하고, 세바스찬은 미아의 연극 초연을 놓치지 않으며, 그들은 함께 파리로 가서 성공을 하고 돌아와 지금 피아노연주를 듣고 있는 미아의 곁에 앉아 이윽고 키스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고, 세바스찬은 여전히 피아노 앞에 앉아있고, 미아의 곁에는 현재의 남편이 있다. 그 삶은 로망을 잃은 삶인가? 그럼 사랑을 잃고 새로운 사랑을 찾지 못한 세바스찬의 삶은, 희망이 없는 삶인가? 


미아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가고, 세바스찬은 새 곡을 연주한다. 그들 둘의 사랑은 끝났지만 그들 둘의 삶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들 사랑은 -end- 마크가 뜨며 끝났지만 그들 각자의 삶은 happy 일지 모르나 ever after 하고 있다.  그건 꼭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삶의 로맨스영화는 끝났지만 내 삶은 끝나지 않았다. 내 삶에서 새로 시작하는 연주가 매일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 같지만, 내일은 또 피아노가, 그 다음날에는 섹소폰이 자기주장을 하면서 매일 brand new 인 곡을 연주하는 거라고. 나는 아직도 내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주될지 몰라 두근거리며 오늘의 (지루한) 삶을 열심히 살아볼 필요가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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