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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주를 본 적 있어?
최첨단 과학 시대를 달리고 있는 시대에 비과학적인 점성술을 이야기꺼낸다는 것이 이상할 거야. 나는 우습게도 사주팔자를 믿는 편이야. 잠깐, 비난은 사절하게. 이미 파란 지붕집에서도 무속인이 드나들고, 해외 뉴스에서도 대한민국을 샤머니즘 국가로 명명하고 있는 실정이잖아.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이 점성술을 믿는 것이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을 외부적인 요인, 운명을 탓하며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넌 모를거야.
내가 처음 사주를 본 건 2010년 경희대 근처에 유명한 사주집이었어.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서 기억나지는 않지만, ‘도화살’이 있다는 이야기는 기억나. ‘도화(桃花)살’이 그 당시에 뷰티프로그램에서 ‘도화살 화장법’하면서, 엄청 유행했어. 그래서 나는 ‘도화살’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좋은 기운이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나는 예쁜 외모의 소유자가 절대 아니야. 하지만 고등학교때부터 남학교 축제에 가면 번호를 물어보는 일이 일상다반사였고,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번호를 남긴 쪽지가 있었어. 대학생이 된 당시에도 미팅에서 정말 잘 나갔지. 가장 친한 친구가 말하길, 도대체 남자들이 제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심층탐구를 해야겠다고 혀를 애둘렀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주에서 ‘살’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얘기한다고 해. 영화 <곡성>에서도 ‘살’을 날려야 한다면서, 무당이 제의를 치르잖아. 지금이야 ‘도화살 메이크업’하고 좋은 이미지로 포장되고 있지만, 조선시대 당시만에도 ‘도화살’이 나오면 기생이 될 팔자라면서 슬퍼했다고해. 복숭아꽃에 식덥지않는 남자들이 달라붙을 팔자라고 해.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정말 사건사고가 많은 연애사를 지니고 있어. 그 중에서 정말 강렬했던 연애사를 이야기하고자해. 2015년과 2016년에 있었던, 믿지도 믿을 수도 없는 연애사를 말해보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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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전에 내 도화살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말해 볼게.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어. 수학 학원이 밤 10시쯤 끝나서, 학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어. 그런데 그날따라 차창밖에 서 있는 어떤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거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인상착의가 기억나. 보라색 반팔 카라티를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상가 앞에 서 있었어. 정말 이유없이 그 사람을 혼자서 빤히 쳐다봤어. 돌이켜보면 그렇게 쳐다본 이유는,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지녔던 동물적인 위험을 자각하는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어. 한참을 버스에서 그 남자를 쳐다보고,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갔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고 서 있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 거야. 고개를 돌려서 확인해보니, 바로 그 남자였어. 내가 버스에서 몰래 훔쳐본 남자 말이야. 그 남자도 내 옆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지. 힐끔 쳐다보니, 마스크로 가려도 잘생긴 얼굴이었어. 훤칠한 키 그리고 보라색 티셔츠와 보색을 보이는 하얀색 피부가 도드라져 보였지. ‘와, 잘생겼다. 이런 사람이 우리 아파트에 살았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 그리고 사춘기 여고생의 감수성이 멍청하게도 그 순간 막 샘솟는거야. 그래서 치마를 단정하게 하려고,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어. 그 때, 남자가 핸드폰을 보더니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 넣었어. 진짜 멍청한 기집애지. 그렇게 나는 외부적인 위협에 무방비한 상태가 된 채로 엘리베이터를 탔어. 내가 15층을 누르고 나서야, 그 남자는 7층을 누르는 거야. ‘잘생긴 남정네가 7층인가 보네’라고 철부지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였어. 갑자기 남자가 주머니에서 식칼을 꺼내서 내 얼굴 쪽으로 들이미는 거야. 갑작스런 칼의 등장으로 나는 비명을 질렀지. ‘소리지르지마. 소리 지르면 칼로 찌른다.’며 위협을 가했지.
이 당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참 무서웠겠다라고 말해.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카테고리는 웃긴 이야기야. 10년을 되새김해도 그 당시 내 행동이 정말 웃겼어. 내가 나를 돌이켜보아도, 이상한 사람의 범주에 속할 것 같아.
그렇게 위협을 가하면, 보통 사람들은 ‘살려주세요.’를 말하잖아? 그 당시 나는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살려주세요. 저는 가진 것이 없어요. 예쁘지도 않고, 돈도 없고, 몸매도 좋지 않아요.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가세요. 저를 위협해봤자 힘만 들지 이득보는 것 없어요.”
정말 논리정연하게 살려달라고 부탁했어. 남자도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이런 미친X을 보았나.’ 하면서 별 욕을 다하는 거야. 나는 그 상황 속에서도 강도와 협상을 했어. 그리고 웃기게도 협상이 타결됐어. 내가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신체에 가해를 가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소리 안 지르고 조용히 따라갈게요.’하면서 약속을 했어. 다시 말하지만, 지금 상황은 강도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야.
남자는 5층을 누르고, 나보고 내리라고 했어. 참고로 우리 아파트는 계단식 아파트야. 그래서 층과 층 사이가 굉장히 한적하고 조용해. 남자는 나를 층과 층 사이로 데려가는거야.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협상이 들어갔어.
“죄송한데요. 제가 어둠공포증이 있어요. 그래서 손 잡아주시면 안될까요?”
남자는 이런 또라이가 어디있지?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손을 잡아줬어. 그런데 우습게도 정말 차갑고, 부드러웠어. 남자 손이 정말 네일아트 해주고 싶게 손가락이 길고 예뻤어. 생명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정말 신기하더라. 그리고 다시 한번 남자에게 말을 걸었어.
“제가요. 진짜 어둠공포증이 심해서 그런데요. 두 손을 잡고 올라가면 안될까요? 강강술래한 것처럼요. 저는 칼이 없으니깐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고, 그 쪽도 제가 조용히 따라가니깐 다른 사람이 올 리도 없잖아요. 그러니깐 두 손 잡아주시면 안돼요?”
남자는 나의 말에 화를 냈어. 그리고 칼을 다시 한 번 얼굴쪽으로 들이미는 거야. 그 때의 칼부림으로 인해서, 내 턱에는 상채기가 났어. 내가 비명을 지르니깐, 남자도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에 걱정이 된 거야.
“칼 주머니에 넣을 테니, 따라와.”
두 번째 협상도 성공적으로 타결됐지. 나도 칼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깐, 묵묵하게 그 남자를 따라서 층계와 층계 사이로 갔어. 한 참을 이야기없이 층계를 올라갔어. 그러더니 9층과 10층 사이에서 멈추는 거야. 그리고 나를 올라가는 층계 옆 벽으로 밀어붙였어.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거야. 나는 물어 봤어.
“저기요. 뭐하려고 하는 거에요?”
“가슴만 만질테니깐 가만히 있어.”
신체적인 접촉을 가한다고 하는 말에 무서웠어. 그래서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지. 내 생각엔 그 남자도 초범이었던 것 같아. 내가 비명을 지르자, 우왕좌왕하더니 다시 층계를 올라가는 거야.
“조용히하면 살려주겠다니깐.”
“그럼, 칼을 저한테 주시면 안돼요? 솔직히 가슴만 만지고 끝날지 제가 어떻게 믿어요?”
나는 정말 그 날 세상에 모든 욕을 다 먹었어.
“제가 칼을 가지고 있는게 부담스러으면, 칼을 창문 밖으로 던질게요. 그럼 진짜 소리 안 지르고 해달라는 거 다 할게요.”
남자는 한참 고민하더니, 그럼 칼을 계단 위에 올려두기로 타협했어. 3번째 협상이었어.
그리고 14층과 15층 층계 사이로 갔지. 내가 15층을 누른 걸 기억한 남자는 나를 14층 쪽 층계 옆으로 나를 밀어 붙였어. 그리고 15층 계단 쪽으로 올라가 3,4번째 계단 위에 칼을 놓았지.
“됐지?”
“좀 더 위요.”
남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단을 더 올라갔어. 계단이 1/2 지점 쯤에 칼을 올려둔거야.
“됐지?”
“네”
남자는 나에게 신체적인 접촉을 하러 다가왔어. 그리고 나는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서 도망가기 시작했어. 남자는 나의 탈주에 당황을 했지. 그리고 계단 위에 놓은 칼을 다시 짚으러 가야 하니깐, 시간 적인 격차가 생긴거야. 나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갔어. 그리고 어떤 집 현관을 두들겼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미친 사람이 쫓아와요.”
현관문을 두들기는 나를 뒤로하고, 남자도 도망가기 시작했어. 이미 남자의 계획은 무너진 상황이 됐으니깐 말이야. 그런데 정말 무서운 일이 뭔지 알아? 내가 수차례 비명을 지르고, 문을 두들겨도 아무도 문을 열지 않더라. 세상 정말 삭막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어. 남자는 이미 사라졌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나는 조용히 계단을 걸어서 집으로 갔지.
그리고 나의 사건이 터진 후,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어. 그리고 내 덕분에 동네 이곳저곳에 CCTV가 생겼다고 해. 나는 그 날 이후로, 남자들이 무리 진 곳은 절대 못 갔어. 그리고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낯선 사람하고는 절대 안타. 일종의 위험을 느낀 후에 학습이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팁을 주자면, 낯선 사람을 만나면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알아?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 절대 안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반드시 “불이야”라고 외쳐서 모든 사람이 뛰어나올 수 있도록 해야해.
이 에피소드가 바로 내가 도화살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편이야. 그 밖에도 경찰서 사건 등등 여러 사건들이 정말 많아. 내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반 학생들한테 이런 에피소드를 말하면, 다들 안 믿는 눈치야. ‘세상에 이런일이’에 제보를 해야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학생도 있더라. 내가 앞으로 꺼낼 연애이야기는 더 기이하고 이상해. 오죽하면 내가 사주팔자와 관련지어서 글을 쓰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