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살까지 애인 못 만들면 결혼해 주기로 내기했다가, 진짜 결혼해버린 분 있나요? 있다면 자세히 말해 주세요.
알렉스 클리포드
이 글이 묻히지 않기에는 아마 늦었을 테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
우린 고등학교에서 만났고, 곧바로 절친이 되었어. 나는 스무살이었고, 그녀는 18살이었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반쯤 연인 같은 느낌이었지만, 아직 우린 한창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놀러다니고 싶은 마음 뿐이어서, 정작 정식으로 사귀진 않았었지.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선, 우리 관계는 완전한 것,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게 낫겠다는 합의를 봤어. 나와 그녀 모두 향락적이고, 난잡한, 그런 무책임한 삶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에, 결국 우리의 사이를 이 이상 진전시키지 않기로 말야. 그리고 그렇게 행복하게 지낸 지 몇 년 정도 지나서, 그녀의 여동생들이 죽었어.
자동차 사고였다고 하더라고. 16살, 그리고 18살짜리 애들이었는데, 모두 즉사했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지 오래였지.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 단지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야. 사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였지. 더 이상의 삶을 이어가는 대신 굶어 죽기를 선택했으니까. 그녀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떠날 수 밖에 없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나와도 연락을 끊어 버리는 바람에, 그 후로 2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고.
돌아온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어. 사고 전에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활기차고, 잘 웃으며, 긍정적인 아이였지만, 다시 돌아온 그녀는 조용하고, 우울하지만, 아마도 삶의 본질을 이해한 듯한 모습이 되었으니까.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녀를 간절히 원했어. 그녀를 도울 수도, 이 상황을 나아질 수 있게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고통스럽게 느껴졌어. 아마 그 순간, 내가 사랑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았다고 생각해.
나는 내 마음을 고백했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녀 말로는, 지금 당장은 어떠한 감정적인 관계라도 버틸 자신이 없다고 했어. 아마 몇 년 후에라면- 이라고, 그렇게 말하더라고.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아마 두 번 다시 마음을 열지 않을지도 모르지. 혼자 있을 공간, 특히 나에게서 떨어진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동생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뭔지, 그걸 찾고 싶었대. 그래서 내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그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겠노라고 했어. 그녀는 나와 함께 있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고 하더라. 물론 나도 그랬고. 그렇게 나는 그녀를 받아들였어. 바로 이 때가 그녀와 내가 '계약' 을 맺은 순간이야. 내가 25살, 그리고 그녀가 23살이 된 순간이었어. 계약은 이런 내용이야 : 내가 32살, 그리고 그녀가 30살이 되었을 때, 삶의 의미를 되찾고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그때까지도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럼 결혼하기로.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어. 그녀는 홀로 와이오밍으로 돌아갔고, 나는 최대한 그녀로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독일로 떠났어.
초반에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몇 년 시간이 흐르면서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했어. 우리는 편지 쓰는 걸 좋아했거든. 때로는 이메일을, 때로는 서로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보내오기도 했었지. 시간은 그렇게 흘러 갔고, 점점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졌어.
내가 30살이 된 순간, 농담 삼아 그 '결혼 계약' 얘기를 꺼냈어. 그리고 난 아직 다른 누구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고 했지. (언급할 수 없었지만, 난 사랑에 빠질 수 없었어. 왜나하면 만나는 모든 여자들을 기억 속의 그녀와 비교할 수 밖에 없었고,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완벽했으니까.) 그러자, 그녀는 그 계약은 유효하다는 편지를 보내 왔어. 그녀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은 것이었지. 상처에서 회복하는 법을 찾았냐고 묻자, 그런 종류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 배울 수 있는 만큼은 했노라고, 그녀는 말했어. 1년 뒤, 내게 만나자는 편지가 왔어. 아직 옛날의 그 약속이, 그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더라. 그녀는 당시에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었고, 나도 거기서 직업을 구했어. 어차피 항상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싶었으니까, 뭐, 상관없었지만.
6개월 뒤에 그녀에게 청혼했어. 그러자 불공평하다며, 아직 30살이 되기까지 몇 달 남아 있다며 그녀는 웃으며 거절했어. 난 이 계약이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 정도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으니까, 뭐 어때, 그렇게 생각했었어.
미안하지만 빨리 끝낼게.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그녀는 죽어버렸어. 그게 이야기의 끝이야. 음주운전자에게 치여서, 이틀 동안 ICU에서 있다가, 신체 기능이 정지했어. 장례식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말을 나눈 것 같지만, 무슨 말을 했는진 기억이 나질 않아. 그 후론 만난 적 없어.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이번 11월이면 벌써 4년 전 일이야. 나는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이 견딜 수 없고, 무기력한, 비참한 분노를 억누르고 다른 감정을 되찾으려 노력 중이야. 아마 이게 그녀가 겪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분명히 나아갔어. 그녀는 감정을 되찾았어. 그게 나를 노력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야. 그녀는 결국 해냈으니까. 아마 나 역시도 해 내기를, 그녀는 바라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