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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십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14447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아제
추천 : 1
조회수 : 2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18 19:38:49

34년생이신 아버지는 5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결혼을 늦게 하셨고 3형제 중에 저는 늦둥이에 속합니다. 
- 원래는 3형제였지만, 작은 형은 97년에 사고로..... -
사연이 좀 있어서 아버지와 형, 저는 각각 따로 살고 있어요.
병에 걸리셨다는 건 대략 4년전쯤 알게 되었는데,
1년전쯤부터 증세가 조금 심해졌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혼자 살고 계신데다가,
초생활 수급자로 등록되어 있다보니,
구청에서 가사 도우미를 보내 주고 있는데,
매일은 아니지만, 전화로 안부를 드릴때마다 
자꾸 물건이 없어진다고 하소연을 하십니다.
당신께서 잠시 외출을 하시는 동안
가사 도우미가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약이나 소소한 물건들을 가져가신다는 거에요.

이 일로 주변 파출소나 경찰서까지 찾아가셔서
도둑을 잡아 달라고 요청을 하시는 바람에
경찰서에서 저와 통화를 한 적도 있는데,
아버지께서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를 알고 있고,
없어지는 물건들도 소소한 것인데다가
잠복근무를 요청하셔도 매우 어렵다고 하길래
저 역시 이해한다며, 그 이후 집으로 들어가는 문의
잠금장치를 육각형 모양의 열쇠로 여는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이제 한동안 마음 놓고 밖에서 산책도 할 수 있겠다며 좋아하셨는데,
한 달쯤 지났을까? "가사 도우미가 만능열쇠를 만들었는지,
물건이 또 없어졌다"며 전화를 하시는데, 많이 답답하더라고요.
열쇠를 들고 가서 복사를 하지 않는 이상 똑같은 열쇠를 만들 수가 없을텐데,
계속 그렇게 우기시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더군요.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도와 주셨던
예전의 가사 도우미님께서 다시 아버지를 돌봐 주시기 시작하셨는데,
- 어머니가 살아계셨을때부터 도와 주셨던 분이라
아버지께서는 이 분만큼은 철썩같이 믿고 계세요. -
이 분마저 아버지에게 '자신이 잠시 다른 곳에서 일하는동안
자신을 대신해서 할아버지를 맡아 준 도우미가 자꾸 물건을
가져간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병 때문에 그러는 거다'라고 하셔도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세요.

결국, 이래저래 알아보다가 무선 인터넷과 연결하는 
소형 CCTV를 아버지의 방에 설치하고
물건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제게 전화를 달라고 했어요.
영상이 실시간으로 계속 CCTV 회사의 서버에 저장되니까
그 때 같이 보고 누군가 침입했다면 그 영상을 증거로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할 수 있을거라고 말씀드렸죠.

처음에 CCTV를 설치할때만 해도 도둑이 침입할리가 없고
물건이 없어지는 건 아버지의 병 때문일테니까
그것만 증명되면 CCTV를 없애버리자고 생각했었는데,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으로도 아버지께서 살고 계신 모습을
하루에 몇 번씩 잠깐이나마 보고 있으면,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지 TV를 항상 켜 놓고 계시는 것 같은,
이런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CCTV를 계속 설치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일 안부 전화는 못 드리더라도 이렇게나마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까 덜 불안하다는 생각때문에요.


근무하는 곳에서 면접을 볼 때 자세한 얘기는 안 했지만,
저는 2010년 가을쯤부터 중추신경계통, 뇌 쪽에 병을 앓고 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 없을만큼 멀쩡해 보이고,
또 말 그대로 멀쩡할 때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간혹, 증상이 발생할 때가 있어요.
- 이를테면, 팔 한 쪽에 차가운 얼음을 갖다댄 것 같은 느낌이 난다거나,
기면증에 해당될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으면
가끔 잠이 확 쏟아질 때가 있고.....-
담당하시는 의사선생님께서 두 명이시고 지금도 먹고 있지만
죽을때까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데다가 제가 앓고 있는 병의 연구와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채혈을 할 수 있도록 동의해 주겠냐는
서류에 사인했을만큼 희귀한 불치병인데,
아버지께서는 제가 앓고 있는 이 병이 혹시 당신께서 앓고
있는 병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유전이 아닐까 이런 생각 때문에
무척 미안해 하고 계세요. 그럴때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 합니다만......
이미 두 번이나 쓰러졌던만큼, 두 번 다시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아버지께 걱정을 끼쳐 드릴 일이 없도록 해야겠죠.
설령, 쓰러지더라도 아버지께서 살아계신 동안에는 없도록.....
어머니께서 살아계셨을 때 왜 지금만큼 두 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는지 후회되네요.


저는 윤회라는 것을 믿는 편입니다.
생활 신조가 '세상만사가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돌아간다'죠.
부모와 자식, 형제와의 관계는 계속 이어진다고 하더군요.
내가 부모였을 수도 있고, 내가 형이었을 수도 있다고.....
지금 내가 불행한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은 전생에
내가 그들에게 좋지 않게 해서 그 업보를 받은 거라고.....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그들에게 복수한다는 생각으로 살지 말고,
덕을 베풀어야만 그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행복한 관계로 시작될 거라고.....

부모님이나 형에게 원망이 많이 쌓였었지만
지금은 바보처럼 속으로 삭여가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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