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초년병 시절 응급실 당직을 서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겪게 된다. 가히 세상의 축소판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환자들과 보호자 그리고 각자의 사연들이 있었는데 내가 볼 때 그 중에서 제일 얄미운 부류는 멀쩡한 인간들이 119 타고 오는 것이었다.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119 타고 왔다는 할머니의 경우 약간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급하지 않은 환자가 119 타고 개선장군 행진하듯 응급실 문을 열고 저벅저벅 들어오면 의료진들의 맥이 탁 풀리기 마련이다. 더구나 술 취한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한민국의 의사치고 술취한 놈에게 한두 대 얻어맞아보지 않은 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8,9년전 중랑구의 某병원 응급실에서 알바를 할 때 일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마시고 마누라를 개패듯이 팬 남편이 119를 불러서 마누라를 싣고 왔다. 그런데 이놈이 병원에 왔으면 가만히나 있을 일이지 방구뀐 놈이 성낸다고 제 마누라를 빨리 봐주지 않는다고 의사, 간호사들에게 쌍욕을 해대더니 급기야는 기물을 부수려고 하지 않는가. 당시에 나는 UGI Bleeding 환자를 처치하고 있었기에 쫓아가 드잡이질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속만 부글부글 끓이고 있었다. 어쨌든 다른 선생님이 진찰해줘서 남편이라는 작자는 좀 진정되었으나 정신을 차린 마누라가 이제 난리 발광을 하는 게 아닌가. 어느정도 진정이 되니 집에 가겠다고 하는 부부, 이제는 돈 없다고 딱 오리발을 내밀더니 급기야 원무과 직원도 달려오고 세가 불리함을 느끼자 다시 119를 부르는 게 아닌가. 병원으로는 119가 오지 않으므로 병원 근처의 어느 지점으로 와달라고 하는데 전에 많이 해본 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치료비가 대충 해결되자 그들은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가 119를 타고 사라졌다. 나중에 119 대원들에게 들으니 그들은 '집으로' 갔다고 한다. 단지 그들이 얄미워서 이 글을 올리는 건 아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한바탕 난리치고 사라진지 몇 분뒤 3,4개월 정도의 젖먹이가 질식하여 엄마가 안고 달려왔는데 이미 숨이 멎어있었다는 것이다. 왜 구급차를 타고 오지 않았냐고 물으니 엄마가 119에 전화했을때 마침 더 이상 출동할 차가 없더라는 것이다. 엄마가 죽어가는 아기를 안고 애타는 마음으로 20여분을 달리는 동안 부부싸움으로 별로 아프지도 않은 사람들은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갔던 것이다. 내 평생 사람을 그렇게 증오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만약 다시 한번 그들을 만났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물을 엎질러졌고 아이는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도 없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비단 119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응급 의료체계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대학병원들은 응급실의 적자를 다른 데서 끌어다 메워서는 안된다. 응급실 자체로 적자가 나지 않게 수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해야 된다. 만약 그렇게 안되면 응급실을 더 이상 운영 하기 어렵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119에 대한 개선은 오늘 아침 뉴스를 통해 관청에서도 문제 제기가 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더 이상 그 아기처럼 살릴 수 있는 아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