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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소개팅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77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19
조회수 : 3282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6/12/20 18: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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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직도 너무 충격적이어서 정확히 기억하는 2006년 12월 23일 토요일... 7시...
그날의 기억을 남기려 한다.
 
2006년 당시 나는 당연히 여자친구가 없었다. 여자친구가 없던 내게 사람들은 "주말에 혼자 쓸쓸하겠다.." 라고 했지만 내게는
주말마다 연개소문이라는 드라마의 사극지왕 유동근 아저씨를 만날 수 있어 그리 외롭지 않았다. 절대 외롭지 않았다.
비열한 신라놈들에게 등 돌린 상태에서 화살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하하하! 하하하! 웃는 유동근 아저씨의 대인배스러운 호연지기를
바라보며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겠노라며 다짐했다. 유동근 아저씨 아니 연개소문 아저씨는 정말 병신같지만 멋있었다.
 
2006년 연말이 다가올 때 23일부터 시작되는 연휴 때문인지 회사 분위기는 (물론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랬지만), 일부 솔로 남녀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함께 보낼 상대방을 애타게 찾고 있을 때, 유동근 아저씨에게 호연지기를 모니터로 배운 나는 설사 큐피드의 화살이
내 등에 명중하더라도 "하하하하!! 하하하하!! 비열한 큐피드 놈 내가 이까짓 화살을 맞고 여자를 찾는 발정난 하이에나가 될 것 같더냐!!" 라며
23일부터 시작되는 연휴동안만큼은 긴 겨울잠을 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평소 한 번도 내게 소개팅, 미팅, 심지어 화이팅이라는 단어 조차 한 번 건네지 않았던 팀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성대리.. 너 소개팅 할래?"
 
"안 합니다.. 저는 항상 운명적인 사랑을.."
 
"지랄하고 있네.. 너 이번 주 토요일에 특별히 할 일도 없잖아. 크리스마스 연휴인데 혼자 집에서 TV나 보지 말고 괜찮은 사람 있으니까
잘 만나보고 즐거운 시간보내."
 
"토요일에 제가 할 일이 없다니요. 연개소문 봐야 합니다. 지금 을지문덕 장군이.."
 
"뭔 개소리 하고 있어.. 나이는 너랑 동갑인데 정말 괜찮은 사람이니까 일단 만나 봐."
 
내 입에서는 연개소문을 이야기하며 소개팅을 거부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과연 23일에 어떤 괜찮은 여인을 만날까 하는 생각이었다.
뭐... 사람이 외로우면 가끔 연개소문도 잊고 고구려의 운명이 걸린 요동성 전투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23일이 되었다. 소개팅 시간은 저녁 7시....
절대 소개팅 때문은 아니지만, 전날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어떤 옷을 입고 갈까? 하는 마음에 옷장을 열고 그동안 내가 입었던 옷들을 봤을 때
이건 딱 저승사자의 옷장 수준이었다. 몇 년 만에 하는 소개팅에서 그녀를 잡으러 온 사랑의 저승사자라며 "어흥~" 할 수는 없기에 과감히
백화점에 가서 최대한 착하고 건실한 청년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니트를 샀다. 판매하시던 분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얼굴도 작아 보이고.."
라는 판매사원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칭찬을 나의 시선을 외면한 채 말했다.
 
그리고 약속의 7시가 되었을 때 나는 팀장님이 알려 준 약속 장소에서 핸드폰을 손에 꽉 쥐고 그녀의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팀장님은 내 전화번호를 그 사람에게 알려줬고 약속 장소에 가 있으면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카페에 여자 혼자 들어올 때마다 나는 간절하게 핸드폰을 바라봤다. 하지만 7시 10분이 넘어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혹시 이 여자... 혼자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한 뒤 살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어 팀장님께 전화했다.
 
"팀장님.. 아직 안 왔는데 제 전화번호 제대로 알려주신 거 맞아요?"
 
"응.. 제대로 알려줬는데.. 연락 안 왔어? 그럼 내가 전화번호 알려줄게. 니가 전화 한 번 해봐."
 
"아! 진작에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어서 빨리 불러 봐봐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녀의 목소리가 귀여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귀여운 목소리로 오늘 헤어질 때
"조심히 가세요~ 성성씨~우리 내일 또 만나요~♡"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여보세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번호를 잘못 눌렀네요.."
 
팀장님께 전화해 번호를 확인했는데, 번호는 이상이 없었다.
 
"팀장님 전화하니까 남자가 받던데요?"
 
"어.. 맞아."
 
"무슨 소리에요! 소개팅이라면서..."
 
"내가 언제 여자라고 했냐?"
 
"아니 무슨 소개팅을 남자끼리 해요!"
 
"너 영업부 김 대리 알지? 너랑 동갑인데 걔도 여자친구 없고 너도 없잖아. 외로운 청춘 둘이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하며 서로 위로하고 
친해지라는 의미였지.."
 
하필이면 동갑이지만 가장 어색한 그리고 서로 말도 많이 해보지 않은 영업부 김 대리가 내 소개팅 상대라니..
 
사건의 전말은 우리가 서로 친해지기 바라는 마음 3%와 우리 둘을 골탕 먹이려는 97%의 마음으로 양쪽 팀장들이 만든 두 총각에는 좌절과
절망을 안겨주는 자리 였다. 그리고 고마우신 두 팀장님 덕분에 우리는 더욱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뭐... 물론 지금은 가끔 예전 소개팅을 이야기하면서 술 마시는 친구가 되었지만..
하지만 난 녀석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물론 녀석도 마찬가지이지만..
출처 미팅 안 함
소개팅 안 함
화이팅도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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