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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요원 후기(약간의 스압, 현장 사진 없음)
게시물ID : fashion_1296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25
조회수 : 815회
댓글수 : 33개
등록시간 : 2014/10/27 00:08:09
오늘 안전요원으로 참여한 후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근데 사진이 없어요.

그냥 최대한 비슷한 사진으로 꾸며볼게요.

중간 부분에 살짝 제 인상착의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을 건데, 이게 '친목질'의 요건에 해당하는지 조금 걱정이 되네요.

어쨌든 시작합니다.



1. 그는 집합시간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가.

저는 생체 싸이클이 좀 남다릅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죠.
자유로운 직업이다보니 일이 없을 때는 생체 시계가 망가지기 딱 십상입니다.

어쨌든 자원봉사에 참가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걸림돌은 '집합시간'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경기북부.
개최장소인 구로에 7시 30분에 도착하려면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와야 합니다.

망가진 생체시계 때문에 잠이 올리 없건만, 일단 먹을 걸 뱃속에 꾸역꾸역 쳐넣고 보일러를 지글지글 떼서 수면을 취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잠드는 것에 성공합니다.
다시 눈을 떠보니 12시 21분.

Cap 2014-10-26 22-45-47-667.jpg
망했습니다.

어거지로 잠을 자보려고 하지만 잠이 올리가 있나요.
결국 뜬눈으로 보내고 곧장 출격하기로 합니다.



2. 난 그게 그렇게 빡셀 줄은 몰랐지.

대중교통망이 잘 짜여진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 각각 한 번씩만 타면 됩니다.

7시 15분 쯤에 도착, 가볍게 주변을 둘러본 뒤, 뻘쭘한 공기를 가르고 자원봉사자분들 틈에 섭니다.
5nJqUSu.jpg
<첫 참가라 아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일단 붙임성 좋아보이는 사람을 찾는 눈빛>

구청에서 의자와 책상을 실은 차가 도착하니 바로 호출하시더군요.

간단히 짐을 옮긴 뒤 안전요원들만 따로 모여 설명을 들었습니다.
세부적인 지침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미 유경험자인 분들도 계셨고 무술 유단자이신 분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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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랑 완벽히 비슷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내가 느낀 첫인상...>

물론 저는 힘만 쓸 줄 아는 무식쟁이입니다.
불의의 사태가 일어나면 그냥 집어던져버리면 되지 뭐♡

그리고 판매대 정리를 도운 후 명찰과 손수건을 착용.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의 심정으로 준비된 따순 도시락을 비웠습니다.

에이, 설마 별 일 있겠어?

만약 실제상황이 어떤 줄 짐작이라도 했다면, 저는 밥을 그렇게 맛있게 먹지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공복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토해도 나올 게 없거든요...



3. 추석 연휴의 서울역도 그렇게 붐비진 않을 거야.
판매 개시는 11시.
그런데 10시 반부터 많은 분들께서 모이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았어요.


아, 이렇게 소박한 행사구나.
이 정도면 화기애애하게 진행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한 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13[20090320095920]elejtm_edit.jpg
<내가 생각한 건 대강 이 정도의 소박함과 화기애애함>

11시를 기점으로 방문객 분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맡은 경계구역은 A존.
운영본부와 '달다구리', '레몬청', '고체향수' 등등이 위치한 곳입니다.
(고체향수는 B존 끝이라 A존과 닿아 있었습니다.)

배치되기 전에 안전요원 조장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거기 좀 붐빌 거에요."

붐비더군요.
그냥 제 기준을 훨씬 초과할 정도로 붐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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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시각. 사진은 중국의 명절인 춘절>

어쨌든 이 시점부터 거수자 탐색보다 구매자분들 줄서기를 돕는 것에 중점을 두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진짜 끝이 안 납니다.
말씀드렸죠. '달다구리', '레몬청', '고체향수'줄이라구요.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통로를 막으니 이쪽으로 좀 붙어주시고...

파트너였던 분과 여기저기 다니면서 줄을 수습하고 안내드리고...

그러다보니 원래 교대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진행업무를 보게 됩니다.


4. 걔네들은 안 왔는데 다른 분들이 오셨네?
xIbODwQ.jpg
<안 옴>

어느 정도 대열이 유지되자 A존도 약간의 평화를 되찾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일이 끝날까요? 쉬워질까요?

아니죠.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안전요원들에게 몇 가지 임무가 추가됩니다.

- 돌진하는 자전거 막기 
통로가 너무 붐벼 자전거가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지나간다고 해도 페달이나 금속 부품에 장내에 계신 구매자분들이 피해를 입으실 수도 있었구요.
그래서 일단 자전거를 소지하신 분들을 뵙는 족족 '이러이러하니 우회로를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안내를 드렸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시는 분들은 지역 주민분들일테니 특별히 더 친절하게 부탁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평소에는 친절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 개 
사실 이건 저만 신경썼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제가 기르는 개 이외엔 안 믿거든요.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맨다리를 물리면 큰 상처가 남습니다.
시베리안 허스키부터 스피츠, 잉글리쉬 불독까지 무슨 도그쇼하는 것 마냥 산책나온 견공들이 행사장을 누볐습니다.
근데 이거 되게 위험하죠.
사람한테는 안 그러던 놈들이 서로 눈빛이 닿자마자 불똥을 튀깁니다.
이렇게 경계심이 잔뜩 부풀어 오른 개들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기도 해서, 저는 개가 보이면 일단 따라가곤 했습니다.
누가 물리면 큰일이니까 ;ㅅ;

되게 많은 것 같은데 없네요.
하여튼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수자들은 오지 않았지만, 그 외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다양한 분들과 생명체들이 오는 바람에 긴장을 좀 했었습니다.

다음에는 입구에 각각 말뚝 요원을 배치해서 자전거나 개는 사전에 차단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5.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저는 사실 조금 도가 지나칠 정도의 서바이벌리스트입니다.(물론 대부분의 생존은 방구석에서 함)
오늘도 장비 B 세트, 즉 풀 장비를 가지고 출동했습니다.

앞으로 메는 형태의 베일아웃백 하나와 힙쌕.
이렇게 말씀드리면 안전 요원 중에 유난히 안색이 창백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르실 겁니다.
PMC3.jpg
<이렇게 간지 터지진 않았지만...>

항상 저희 어머니는 말씀하셨죠.
너는 지진이나 전쟁나서 죽는 게 아니고 그 짐 챙기다가 죽을 거라고.

드디어 오늘에서야 어머니의 말씀을 실감했습니다.

베일아웃백의 내용물 : 
캠코더(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수자분들 채증용)
하이엔드 디지털 똑딱이(같은 용도. 사실 인증샷도 찍고 싶었는데...)
스마트폰
비상용 휴대전화
파이어 스타터(부싯돌)
덕 테이프
라이터
맥가이버 칼(허큘리스)
레더맨 웨이브 멀티툴
조난신호용 휘슬
낙하산 줄 30미터
반장갑
메카닉스웨어 오리지널 글러브

힙쌕의 내용물 :
비상담요*2
붕대*2
대형 반창고
포비돈(빨간약)
분말형 지혈제
탈지면 한 팩
압박붕대
미량의 후시딘
살색 종이 테이프
여행용 휴지
일회용 밴드*3팩
타이레놀 10정.

여기다 허리에 둘러멘 후드와 나머지 옷 무게까지 합치면 거진 10Kg 가량의 짐을 '행사 내내' 매달고 다닌 게 됩니다.

게다가 가장 무거운 베일아웃백이 앞가슴을 누르고 있으니 숨쉬는 것도 고역..

오전 중에는 버틸만 하더니 달다구리 줄을 정리할 때쯤 되니 허리가 긴급구난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너한테는 이미 내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 알아. 하지만 이러다가 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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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쓰는 일을 하다보니 어느 정도의 지속적인 하중에도 버티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지나친 자신감이었나봅니다.
제 나이도 벌써 앞자리가 3이거든요.

만약 달다구리 줄에 서 계시던 아리따운 숙녀분이 사탕 하나를 주지 않으셨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아, 캐리커쳐랑 쿠키 판매하시는 분들이 주신 것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결론은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자는 겁니다.



6. 줄을 선다는 건 좋은 거야.
줄은 현대문명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자(아닌가?) 지성인의 소양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즉각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대부분의 구매자분들은 훌륭한 지성인이셨습니다.
물론 새치기가 있었겠지요. 그것은 응당 그것을 적발하고 올바르게 안내해드리지 못한 안전요원들의 불차를라ㅓㄴ차츠알응으어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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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내.... 미아납니다... 특별히 미안해서 사진 큰 걸로 가져옴>

하여튼 달다구리 파트의 줄도 줄이라는 목적 자체는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줄의 길이와 위치.

줄이 너무 긴데다 캐리커쳐와 수제잼 판매대를 가로막고 있어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잽싸게 운영본부에서 종이와 매직을 빌려다가 줄을 중간에서 잘라 통로를 만들고 통로와 인접한 줄의 시작과 끝에 한 명씩 섰습니다.

그리고 수신호로 한 팀, 혹은 두 팀씩 이동하셔서 캐리커쳐 부스와 수제잼 부스의 앞을 틔워 놓을 수 있었습니다.
Cap 2014-10-26 23-58-34-015.jpg
<제 생각엔 이 정도로 멋진 수신호였음>

그런데 그렇게 하고 인수인계가 가능한 수준까지 줄이 고착되는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1시간...
나중에 오신 자원봉사자 분께 줄을 인계하고 그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줄이 길었던 부스들도 거의 정리가 되어 A존은 평화를 되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7. 사실 그 뒤로는 별로 특별한 게 없어요.
그렇게 대부분의 판매가 마무리되고, 저와 파트너는 자유롭게 행사장 전체를 순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수자분들도 안 보이고, 이제는 자전거가 지나갈 정도로 한산해져서 밴드 공연을 들으며 박수를 유도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유도가 잘 안 된 게 함정)

아침의 역순으로 장비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어찌저찌 한 후에 저녁을 건너 뛰고 집으로 복귀했습니다.
잠을 쫓으려고 마신 레드불의 후폭풍(레드불 : 날개를 달아준 뒤, 응축된 피로감을 선사한다.)으로 인해 이미 온몸에는 적신호가 켜진 상태...
간신히 몸을 끌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탑승했습니다.


8. 어쨌거나 좋았어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일단 제게는 그저 그분들과 마주할 수 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즐거웠습니다.
가게가 외딴 곳에 있어 마주치는 사람이래야 택시기사님들, 마주치는 동물이래야 뒷집 진도개 정도였거든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신기해하시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도 흐뭇했고요, 무엇보다 안전요원이라는 표찰을 달고 있는 제게 의지해주셔서 기뻤습니다.
도움이 되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저같이 미흡한 인간에게 길을 물어봐 주시고, 무슨 줄인지 물어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쉴새없이 떠드는 걸 보며 다른 안전요원 분들이 걱정을 하셨는데, 사실 그거, 제가 진짜 좋아서 떠든 겁니다.
오늘은 정말 미친듯이 말을 많이 해서 날아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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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죽겠지만.

하여튼 오늘 경험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지루한 일상에 콕하고 점을 찍어준 것 같은 상큼한 경험이었어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장난삼아 '담엔 안 올거야.'라고 말했지만, 만약 서울에서 재차 벼룩시장이 열린다면 꼭 다시 참가할 생각입니다.

그때는 이런 가방을 메고 올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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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오늘 오신분들!
제가 많이 떠들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다음에도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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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매직 반납 안 함...?









오늘의 뼈아픈 교훈(힘이 없으니 여기만 음슴체)
- 살이 많이 빠졌는데 예전에 입던 바지를 입고 왔다. 원래 벨트 없이도 살이 삐져나오던 바지였는데, 오늘은 그거 추켜올리다가 시간 다 감.. 담에는 꼭 맞는 바지 입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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