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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G44
게시물ID : military_129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롤랑
추천 : 2
조회수 : 81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1/13 18:01:46

당연한 이치겠지만 무기는 평화 시보다 실전을 치르는 과정을 통해 더욱 빨리 진화가 촉진되는 물건인데, 군대의 최소 단위인 병사의 기본 화기인 소총도 이러한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현재 어느 군대를 막론하고 돌격소총(Assault Rifle) 혹은 자동소총(Automatic Rifle)이라 불리는 고성능 소총을 기본 화기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돌격소총인 AK-47은 세상에 등장한지 이미 60년이 넘었을 정도지만 상당 수 국가의 정규군은 물론, 무장 투쟁을 벌이는 반 정부 게릴라나 심지어 폭력 조직들도 장비하고 있을 정도다. 그것은 돌격소총이 현재 시점으로 볼 때 가장 발달된 소총이라는 의미다.

StG44(Sturmgewehr44).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개발한 소총.
돌격소총이라는 말은 이 총의 이름에서 나왔다.

돌격소총의 아버지, StG44

그런데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돌격소총은 탄생 이후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탄생한 전차나 전투기들이 현재 퇴물이 된 점을 생각한다면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물론 돌격소총의 기계적 원리와 사용 목적이 지금이나 그때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편으로 탄생시점 기준으로도 시대를 앞설 만큼 성능이 좋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돌격소총이라 정의가 내려진 총들도 따지고 보면 갑자기 짠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 있던 여러 종류 소총들의 단점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돌격소총의 아버지로 자타가 공인하는 명품이 있는데, 바로 제2차 대전 말기에 독일군이 사용한 StG44(Sturmgewehr44)다.

Kar98k를 사용하고 있는 독일군 병사(1942년). Kar98k는 정확도와 파괴력은 좋았으나 연사력이 부족했다.

MP40 기관단총을 든 독일 병사. MP40은 연사력은 좋았으나 사거리와 파괴력이 부족했다.

독일군의 전술

제2차 대전 내내 독일 보병의 기본 소총은 Kar98k이었는데, 1898년 개발된 Gew98가 그 원형일 만큼 오래 전에 개발된 무기였다. 저격용으로도 사용될 만큼 정확도, 파괴력 등이 좋았지만 쏠 때마다 노리쇠를 일일이 작동시켜야 하는 볼트액션 방식이어서 연사능력이 결여되었다. 결국 전쟁 초기에 독일군은 MG34, MG42같은 고성능 기관총이 분대의 화력을 담당하고 각개 병사들의 소총은 보조 화기의 형태로 운용하였다.

그런데 이런 소부대 전술은 진지에 틀어박혀 방어에 나설 때는 문제점이 크게 보이지 않았지만 적진을 향하여 돌격할 때 곤란한 점이 많았다. 연사력이 좋은 기관총은 너무 무거워서 기동력이 떨어지고 Kar98k은 한 번 발사하면 다음 발사 준비를 위해서 잠시 돌격을 멈추어야 했다. 한마디로 독일군의 트레이드마크인 전격전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려고 일부 병력을 연사가 가능한 MP40같은 기관단총으로 무장시켰으나 사용탄약이 권총탄이라 사거리와 파괴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피아간에 얼굴이 보일 정도의 근접전에서는 기관단총이 위력을 발휘했지만 대다수의 교전 상황에서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또한 보병의 기본 장비가 이리저리 나뉘는 것도 유지보수에 결코 좋은 것이라 할 수는 없었다.

Kar98k. 독일의 볼트액션 소총. 한발 쏠 때 마다 노리쇠를 당겨주어야 한다.

SVT-38. 구 소련의 가스 작동식 반자동 소총. 방아쇠만 당기면 다음 발이 발사된다.

드러난 문제점 – 소련 소총에 충격 받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1941년 가을까지 독일군은 가히 천하무적이었다. 특히 1940년에 있었던 프랑스 침공전은 전격전의 백미였다. 지난 제1차 대전 당시에 4년 동안 400여만의 사상자를 내며 돌파에 실패했던 서부전선을 무려 7주 만에 완벽히 평정하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신속하게 전쟁을 마무리 짓다 보니 내재된 문제점을 미리미리 개선할 기회를 놓쳤다.

흔히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사용한 무기는 품질이 좋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나가던 1941년 이전에는 독일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한수 아래로 얕보던 소련군이 보유한 T-34 전차에 경악하였던 것처럼 결코 독일군의 무기가 최고는 아니었다. 이런 뼈아픈 사실은 소련을 침공한 이후 전쟁이 길어지자 서서히 드러났고 소총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소련군이 사용하던 SVT-38, SVT-40 같은 반자동소총에 일선의 병사들은 충격을 받았고 공공연히 노획된 소련군 무기를 즐겨 사용할 정도였다.

StG44의 개발 초기 모델인 Mkb42(H). 미국 스프링필드아머리국립사적지의 소장품.

새로운 소총의 탄생

결국 기관단총의 연사력과 소총의 파괴력을 함께 갖춘 보병용 화기가 요구 되었는데 생각만큼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 복수의 총기 회사가 새로운 개념의 소총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때 해넬(Haenel)社는 체코슬로바키아제 ZB vz.26 경기관총의 발사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Mkb42(H)로 개발 부호가 명명된 새로운 가스 작동식 소총을 1942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그해 11월 8,000정의 시험용 초도 물량이 동부전선에 공급되었는데, 병사들의 반응이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으면서도 정확도가 높은 경기관총, 바로 그것이었다. 더불어 일선의 요구에 따라 탄피배출구로의 오염물 흡입을 막기 위한 덮개와 조준경 부착을 위한 레일이 추가되었는데 오늘날 최신 돌격소총들도 이런 구조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소총이 탄생하였음에도 보급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히틀러의 명령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독일군은 마우저(Mauser)탄이라 불린 7.92x57mm 규격의 탄을 표준 소총탄으로 사용하였다. 마우저탄은 위력이 좋지만 발사 시에 충격이 커서 기관총이 아닌 소총에서 연사하면 반동으로 인하여 사격이 용이하지 않았다. 따라서 새로운 소총에서는 쿠르즈(Kurz)탄이라 불린 7.92x33mm 단소탄을 사용하였지만, 이는 개발자들의 편의에 따른 것이지 독일군 정책권자들이 사용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1943년 10월 저격용으로 사용 중인 StG44의 모습. <출처:(cc) Deutsches Bundesarchiv>

총통을 속이고 완성된 총

히틀러의 개발 금지 명령은 독일군 전체의 탄 보급을 우려해선 내린 결정이었지만, 일국의 국가 원수가 소총의 개발에도 일일이 관여하였을 만큼 나치 독일은 경직된 사회였다. 결국 총통의 엄명으로 Mkb42(H)의 양산은 중지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개발자나 일선에서 볼 때 너무 아쉬운 결정이었다. 그런데 Mkb42(H)을 한번 맛 본 일선에서 추가 공급을 계속 요구하자 관계자들은 대담하게도(?) 비밀리에 개발을 지속하였다.

기존 기관단총의 개량형인 MP43이라 속이면서 편법적으로 제작하였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히틀러가 격노하여 프로젝트 중지를 재차 명령하였다. 하지만 일선에서의 요구가 끓이지 않자 1943년 3월 무소불위의 총통도 결국 양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MP43을 일부 개량하여 1944년에 생산된 모델이 MP44이고 이를 돌격소총(Sturmgewehr)이라 명명하면서 이때부터 StG 44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본격 제식화된 StG44는 길이 940mm, 무게 5.22kg그리고 유효사거리가 300m였다. 이를 Kar98k과 비교한다면 금속을 많이 사용하여 무게가 많이 나갔고 유효사거리가 반에도 못 미칠 만큼 짧았다. 하지만 당시 보병간의 교전이 대부분 300m 내에서 벌어져,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분당 600발 가까이 되는 연사속도는 비교불가의 대상이었고 이것이 바로 StG44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1944년 아헨전투 당시 모습 StG44를 든 병사가 보인다. <출처:(cc) Deutsches Bundesarchiv>

StG44를 사용 중인 1955년의 동독 무장경찰. 전후 흩어진 StG44가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었다. <출처:(cc) Deutsches Bundesarchiv>

시대를 앞선 명품, StG44

StG44는 앞에서 알아본 것처럼 개발과정 중에 우여곡절 등으로 너무 늦게 제식화되고 물자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약 42만정만 생산되었다. Kar98k가 1,400만정 넘게 생산되었다는 고려한다면 극히 적은 수량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개 병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적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아니 StG44가 본격적으로 일선에 공급된 1944년 이후에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 한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나 빛을 발하는 것이 진정한 명품이듯이 짧은 활약기간 동안 StG44는 근접전, 장거리 저격, 점사, 연사 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만능소총으로 그 명성을 길이 남겼고 전후 총기 개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StG44는 총기사의 걸작으로 불리며 지금도 사용 중인 AK-47이나 M-16같은 대표적 돌격소총의 아버지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프레스 가공에 의한 제작 기술은 소련이 1950년대 후반(AKM)에 가서야 구현할 수 있었을 정도로 앞선 테크닉이었다. 한마디로 당대를 뛰어넘는 무기사의 걸작이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컬럼을 연재하고 있다. 성균관대 무역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xqon1.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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