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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주의] 메이드 마왕님 - 생각보다 괜찮은 걸?(1)
게시물ID : readers_27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2
조회수 : 2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29 03:26:57
프롤로그 : http://todayhumor.com/?animation_405413

뮤딘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특히 설화나 신화 속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몇 가지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섭리를 생각해볼 때, 영혼이 뒤바뀌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인간들은 용족이 용의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조차도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용족은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뮤딘은 누군가가 허황된 이야기라고 믿는 것일지라도, 충분히 실재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따라서 지금 벌어진 일 역시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문제는 끝이 정해져 있는 옛날 이야기와는 달리, 지금 그에게 벌어진 일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그는 돌바닥에 주저앉아 팔짱을 끼고, 자신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소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예리한 눈초리로.

몇 번의 잠꼬대 끝에 눈을 뜬 소녀는 마왕 뮤딘의 몸속에 들어와 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부터 시작해서 ‘시집은 다 갔다.’는 소리까지. 한 없이 절망과 한탄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뮤딘이 울기만 하면 일이 해결 되냐며 다그치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울방울 솟는 눈물을 완전히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뮤딘은 습관처럼 문이며 창문 등에 심어 놓은 마력회로에 접속해 밖에서 문을 열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으나 회로가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만 울어라. 짜증나니까.”
“으엥... 저, 저도... 그러고 싶은데... 훌쩍...”

디나는 소매를 붙잡고 콧물과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본 뮤딘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바누르디나의 요정여왕에게 부탁해 간신히 한 벌 얻을 수 있었던 고급 재킷의 소매가, 질척한 콧물로 뒤범벅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야... 너. 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훌쩍... 예...? ... 으앙...! 죄송해요...!”

뮤딘이 최대한 분노를 억누른 채 말했다. 디나는 뮤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잠깐 생각하다가 콧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재킷의 소매를 보더니 눈물을 터트렸다.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뮤딘은 한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디나의 눈물이 다시 멈추는 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진이 빠져 녹초가 될 때까지 울었다. 더 이상 짜낼 눈물이 없을 때쯤에야 그녀는 소매로 콧물 닦는 것을 그만 두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울음을 그친 그녀가 내뱉은 첫 마디에, 뮤딘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릴 뿐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뮤딘은 방을 한 바퀴 휘돈 뒤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투는 뮤딘의 것 그대로였지만, 목소리는 여성의 그것이었다. 그것도 제법 맑은 울림이 있는.

“저 거울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
“잘 몰라요... 헤세트 시녀장님이 전하의 방에 거울이 있으니 그걸 닦으라고만...”
“끄응... 헤세트에게 직접 물어봐야하는 건가. 도대체 어떤 미친X이 이딴 거울을 보낸 거야?”

뮤딘은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암만 생각해봐도 이 따위 저질스러운 장난을 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가 마계를 제패하면서 두들겨 팬 마족의 숫자만 해도 기백은 넘어가니까. 그러나 뮤딘과 생사를 넘나드는 대결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자격은 충분했다. 애초에 복잡한 수를 쓰지 못해 주먹다짐을 하는 부류들이라는 얘기다.

비교적 저항이 적었던 나라의 우두머리가 보냈을 가능성도 있었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 역시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면전에서는 협조적인 것처럼 굴면서 고개만 돌아가면 흉계를 꾸미는 작자들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러나 그런 작자들을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에도 문제는 있었다. 암살이나 독살처럼 좋은 수단을 두고 몸이 뒤바뀌는 성가신 저주를 걸 머저리가 몇이나 될까.

뮤딘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얼굴을 찰싹 때린 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야, 너. 이름이 뭐야?”
“저요? 디나 유벨서트요...”
“디나 유벨서트...?”

뮤딘은 유벨서트라는 성을 어디서 들어보았다고 생각했지만 기억해 내지 못했다. 

“좋아, 디나. 일단 거울을 다시 한 번 닦아보자. 그래도 안 되면 정말 큰일 터진 거야. 자, 빨리 닦아.”
“네에...”

디나는 마지막으로 코 밑을 훔치고 뮤딘이 집어던진 걸레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바짝 말라버린 걸레로 거울의 표면을 닦았다.

한참을 닦고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뮤딘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발의 앞부분을 까딱거렸다.

[끼이이... 쿵]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뮤딘과 디나는 황급히 입구를 쳐다봤다. 거기엔 무서울 정도로 창백한 얼굴을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아차...!’

뮤딘은 출입문의 마력회로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외에도 두 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새로운 등장인물은 무릎을 굽혀 정중하게 인사한 뒤, 무표정한 얼굴로 뮤딘의 방을 둘러보았다.

삐져나온 올 하나 없이 단정하게 틀어 올린 검은 머리와 흐트러지거나 더러워진 곳 하나 없는 시녀복은 그녀의 성격을 가늠케 했다. 가는 눈썹과 기름한 눈매는 다소 쌀쌀맞아 보이는 인상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평생 단 한 번도 웃어본 적 없을 것처럼 아래로 휘우듬한 입매가 살짝 들썩였다.

“전하,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어...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헤세트 메드벨. 그녀는 마왕 뮤딘의 유모이자 마왕성의 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시녀장이었다. 어머니보다도 살가운 그녀의 등장에 뮤딘은 순간적으로 변명거리를 찾았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극도의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시녀장의 대답뿐이었다.

“유벨서트 양... 당신에게 물은 게 아닙니다. 전하께 여쭈었지요. 전하,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제야 뮤딘은 거울을 닦고 있는 디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거울을 닦고 있는 자신의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마계 제일의 실력자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마른 걸레로 거울을 닦고 있었고, 가슴만 무식하게 큰 새내기 시녀는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집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감시하듯이!

뮤딘은 재빨리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디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헤세트의 질문을 받자마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지금 헤세트가 ‘전하’라고 부르는 것은 디나의 몸에 들어간 뮤딘이 아니다. 뮤딘의 몸에 들어간 디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마자 앞뒤 안 가리고 펑펑 울어제낀 소심한 시녀의 영혼이 그걸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전하의 처소를 청소하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와봤습니다. 헌데 이게 무슨 꼴이지요? 양동이는 박살이 나 있고, 전하께서는 평생 단 한 번도 보이신 적 없는 침통한 표정으로 거울이나 닦고 계시다니요. 이건 며칠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요. 유벨서트 양.”

뮤딘은 헤세트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뮤딘의 유모임과 동시에 가정교사였다. 그는 어릴 적 공부를 게을리 할 때마다 헤세트가 자신을 어떻게 훈육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훈육은 별 다를 게 없었다. 밀폐된 방 안에서 뮤딘이 자신의 잘못을 전부 털어놓을 때까지 저 차가운 시선으로 뮤딘을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허나 그건 뮤딘이 왕자였을 때의 얘기, 말단이나 다름없는 시녀에게 그녀가 어떤 훈육을 할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벌을 고스란히 받을 것은 디나 본인이 아니라 뮤딘이었다.

‘제발 뭐라고 대답 좀 해...!’

뮤딘은 디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수십 번 외쳤지만 그녀는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였다.

갑자기 디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뮤딘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망했다.

아마 마왕 뮤딘과 가장 연이 없는 단어를 꼽자면 눈물, 슬픔 따위의 단어일 것이다. 그런데 시녀장이 말을 붙인 것만으로도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헤세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알았다간 마왕성의 지배구조가 뒤집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알려지는 순간 마왕의 약점을 파고들기 위해 행동을 개시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까.

도무지 상황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뮤딘은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긴 치마가 보기 좋게 부풀도록 두 손으로 집었다.

“시녀장님, 전하께서는 극도의 정신적 압박을 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거울을 닦고 있는데 들어오셔서 양동이를 걷어찬 다음 저를 붙잡고 하소연을 시작하셨지요. 외람되지만 기분전환에는 청소가 제격이라, 거울이라도 닦아보시는 게 어떤지 여쭈었던 것입니다.”

헤세트의 날카로운 시선이 뮤딘의 가슴에 꽂혔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어쨌든...”

헤세트는 어깨를 늘어트린 채 눈물을 쏟고 있는 디나를 한 번 더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요즘 전하의 심신이 많이 지치신 것은 사실이지요. 시녀들을 시켜 안정에 효과가 있는 차를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하,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으니 편히 쉬십시오...”

헤세트는 다시 한 번 정중히 인사했다. 그러고는 뮤딘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뮤딘은 그것이 밖으로 나오라는 무언의 명령임을 깨닫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디나에게 무어라 말을 남기고 싶었지만 문간에 선 헤세트의 시선이 너무도 따가워 찍소리 못 하고 빠져나왔다.

출입문에서 헤세트의 옆을 스칠 때, 뮤딘은 마치 얼굴에 바늘이 백 개 정도 박힌 것처럼 따가운 것을 느꼈다. 그는 최대한 헤세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복도로 나왔다.

육중한 출입문이 스르르 닫혔다. 쿵, 하는 소리가 복도를 울린 뒤에 남은 건 완벽한 적막이었다.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가장 큰 소리였다. 뮤딘은 헤세트의 옷자락이 서로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숨죽였다.

헤세트는 아랫사람에게 손찌검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공과를 나누어 벌을 내릴 뿐이었다.

뮤딘은 헤세트가 깊게 숨을 들이쉬는 것을 듣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세요. 대신, 내일 아침에는 부엌으로 나오지 말고 방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침 식사 준비 후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헤세트의 얼굴에서 분노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숫제 뮤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살짝 고개 돌린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뮤딘은 그녀의 안색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빠르게 굴렸지만 결국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헤세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보아, 이 몸뚱이의 원래 주인이 다그치는 것조차 의미 없을 정도로 사고뭉치인 것은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그럼, 방으로 돌아가세요.”

헤세트는 짤막한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녀가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뮤딘은 무언가를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우씨, 망했네. 방이 어딘지를 알아야 찾아가지!”

그는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살폈다. 마왕성의 구조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녀들이 머물고 있는 기숙사가 어딘지는 알지 못했다.

아랫입술을 몇 번 잘근잘근 깨물던 뮤딘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자신의 치맛자락을 밟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출처 헉헉... 글써서 한푼이라도 벌려면 최대한 이것저것 찔러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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