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주의>
개인적으로 폐허를 좋아한다.
들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부서진 집 한 채, 오래 전에 폐교된 학교, 바다 속에 잠긴 선박, 창문이 다 뜯어져 없어진 정신병원, 살짝 인테리어가 남아있는 호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가진 빈 집들,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런 곳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좋아서 쿵쿵한다. 남들이 귀신 나온다고 꺼리는 그런 곳을 잘도 들어가서 혼자 두 팔 벌리고 빙그르르 춤을 춘다. 상상한다. 이 곳이 폐허가 아닐 때, 즉 사람이 머물렀던 때를 상상하는 게 너무 좋다. 그 순간 내 머릿 속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폐허도 눈이 부시다.
들판에 집에선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저기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거야!)
학교에선 아이들이 복도를 뛰어다니고 (이쯤에서 애들이 넘어졌겠지?)
선박에선 남녀가 파티장을 빠져나와 키스를 하고 (여자가 노렸네 노렸어..)
정신병원에선 간호사들이 환자를 욕하고 (짐승보듯이 쳐다보며)
호텔의 로비는 온통 화려하고 (이쯤에서 지배인이 오른팔을 깍듯하게 접어 가슴 밑에 붙이고 미소를 짓는 거다!)
시골집에서는 어머니가 곶감을 말리고 있다 (잘 못하셔서 곶감 색이 시꺼매ㅜㅜ)
이런 식으로 폐허의 전성기 때를 그려보는 것, 넘나 넘나 넘나 좋다.
그런 내가 한낮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폐모텔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좋았겠나. 워매 노다지! 덩실덩실 춤을 추웠다. 미역줄거리 같은 막을 걷고 살포시 안으로 들어가보니 오- 내가 좋아하는 스멜~ 냉하고 습한 기운이 쩔었다. 각종 철골 구조물들까지 머리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데 찍고 싶다 찍고 싶다 찍고 싶다. 나는 마침 얼마전에 카메라를 사지 않았나. 음하하하하. 그리하여 오늘 나는 가슴팍에 카메라를 걸고 그 곳으로 갔다. 카메라 배터리를 만빵으로 충전한 채. 마치 작품을 건져보겠다는 사진작가의 마음으로.
그런데... 그런데... 그새를 못 참고 모텔은 주상복합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런 다이내믹 코리아 같으니라고. 뎀잇! 뎀잇! 모텔의 주변은 비닐로 꽁꽁 싸매어 있어서 내부는 커녕 공사현장도 안 보였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그래도 기왕 카메라를 가져갔으니 사진이나 찍자, 하고 셔터를 누르는데
"이봐요! 누군데 사진은 찍고 그래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아주머니가 득달같이 내게 화를 낸다.
"저... 그냥..."
"사진 왜 찍었어요? 봐봐요 좀!"
"어... 그냥 취미인데요..."
"...취미요?" 라고 말하는 아줌마가 내 모습을 위 아래로 훑어보신다.
"구청같은 데서 나오신 거 아니시죠? 요즘 보상금 받아먹을라고 사진찍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아... 저는 그런 사람 아니고.. 그냥 취미로..."
"취미로 모텔을 왜 찍어요. 이상한 사람이네. 저리 가요"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분하다. 에이씨 아줌마!! 내가 비록 아침부터 술냄새 폴폴 풍기며 노숙자처럼 하고 다녀도 보상금 받아 먹고 다니고 그런 사람은 아니예요. 에이씨.. 폐모텔도 없어져서 짜증나 죽겠구만 사람을 뭘로 보고 진짜! 에이씨 에이씨! 새해 복이나 많이 받아라!! 돈이나 많이 버세요!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