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는 밤에 술먹고 일찍 나 자빠지는 바람에 숙종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숙종 때부터 다시 복습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9대 숙종 - 숙련된 장자 빠와로 모든 사람들을 갈군 왕
본부인 인현황후
왕후 -> 폐서인 -> 왕후 복귀
희빈->왕후->폐서인 후 사약먹고 저승행 장씨(연산군 대 장녹수와는 다름)
세자 - 훗날 경종
숙빈 최씨
연잉군 - 훗날 영조
그외 연령군
숙종의 유명한 아들들이라면, 특히 성인까지 살아남은 아들들이라면 저렇게 세명이 있습니다. 첫째인 경종, 훗날 영조가 되는 엄마가 무수리 영조, 그리고 싸랑하는 막내아들 연령군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성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워낙 많으니 별로 큰 뉴스가 되지도 않지만, 가장 좋은 약과 케어를 받을 수 있었던 왕가마저 영아사망률이 낮았고, 특히 20세를 넘기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일단 숙종은 효종>현종 을 거쳐 장자 정통성만큼은 최고죠. 다만 효종이 둘째였던 바람에 상복을 몇년 입냐에 대한 배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포스팅은 다른 분이 베오베에 남겨준 글이 있으니 참조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저쨌든 숙종은 상당히 어린 나이(13세)에 즉위했고 제법 오래 살았으며(58세), 즉위기간(45년)이 남달랐던 왕이기도 합니다. 보통 조선의 왕이라면 30대에 줄줄이 죽어나가는 게 대부분이었으나 그 시대에는 평균연령이 30대였던 걸 감안하면 50대의 왕이란 상당히 특이한 왕이였다는 거죠.
숙종은 자식이 많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영조가 태어났으며, 또다른 싸랑하는 자식이었던 연령군이 태어났겠습니까.
부인들의 빠와 싸움(알고보면 외척과 신하들을 정리하기 위한 술책이었음...비정한 정치공작의 달인 숙종) 덕택에 아들들은 줄을 어따가 서느냐,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문제였습니다. 일단 둘째 부인이었던 정실부인 인현왕후를 폐서인시킵니다. 일단 아들을 낳지 못했다면 대비가 되지 못하므로 빠와가 없어요. 그리고 결국 쫓겨나고 5년을 보냅니다. 그리고 장희빈은 투기한다는 이유로 쫓아내고 인현황후를 다시 부릅니다. 아니 쫓아냈으면 쫓아냈을 거지 다시 부르는 건 뭡니까? 결국 잘못이 없었다는 게 되지요. (웃기는 건 인현왕후 폐서인 시킨 이유도 투기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장희빈 죽일 때는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죽였다는 이유로 죽이죠. 장희빈은 무녀였던 걸까요?
어린 나이에 자신을 잘 돌봐주었던 계모 인현왕후(서류상으로는 어머니)도 죽어, 친엄마도 죽어. 경종은 오걸데 없는 처지가 된 데다가 숙종은 경종을 갈굽니다. 거기에 숙종 말년에는 경종을 보고 딱 선조 연산군이 떠오른 모양입니다.
"이 자식 혹시 연산군의 전철을 밟는 건 아닐까?"
그래서 경종이 실수하길 원해 대리청정을 맡기죠. 어? 근데 몸 약해 마음약해, 말도 잘 못해 모든 게 맘에 안 들었던 세자가 대리청정 시키니 곧잘 하네? 숙종은 당황합니다. 이걸 어쩌네 저쩌네 하는데 숙종이 딱 몸져 눕고 곧바로 저 세상 구경을 가십니다....
그리고 숙종과 손잡고 경종을 내치고 영조를 올리려던 노론은 주옥됩니다. 훗날 경종 때 아주 주옥되는 거에요...
세자를 주네마네 했던 경종-연잉군은 갈궜지만 막내 연령군은 또 끔찍히 아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조가 아들 갈구는 걸 어디서 배웠을 것 같습니까?
20대 경종 - 응, 나 고자야, 고자가 화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경종은 자식이 없습니다. 경종이 세자 대신 동생 연잉군을 "세제"로 삼으니, 청나라에서 물어 봅니다.
"니네 왕은 아직 나이도 젊은데(35세) 아이 낳아서 세자 삼을 생각은 안 하고 왜 동생을 세제로 삼음? 왕 무슨 문제있니?"
답변이 이렇습니다. "왕이 여러 해 동안 몸이 좋지 않고, 왕비를 들이고 갖은 약을 썼으나 결국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병증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이야기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발기불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발기불능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어 있진 않고, 병증에 대해서는 주본을 참조하라...라는 내용만 있는데 병증은 음위증-발기불능 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응, 우리 왕 고자야." 란 말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 말 한 사신은 세제책봉이 끝난 후 사약받고 죽습니다. 왕이 고자라 했으니 살아남는 게 용하죠...후손이 없다면 세자가 되기 어려운 데, 그냥 경종이 몸이 안좋아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양자도 들여볼까 했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개판이 될 것 같아 그냥 동생을 세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연잉군의 자식이었던 (효장세자) 아이는 겨우 16개월에 불과했던 터이죠. 만약에 효장세자를 양자로 삼았다면? 영조는 영조가 아니라 연잉 대원군이 되었겠죠. 그것도 생각보다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겠네?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사도세자는 죽지는 않았겠네효. (효장세자가 죽지 않았으면 태어나지도 않았을런지도) 그러나 일단 밀풍군도 있고, 연잉군은 어머니가 영 세력이 없어서 뒷배경도 약하고, 경종도 아버지가 갈아치우려고 했던 적이 있고 역시 자기 어머니 쪽 친척들이 죄다 세가 날아가버려서...이건 그냥 떡밥으로 남겨둡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효장세자를 양자로 삼았더라면 조선사에서 왕위계승 내전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덜덜덜...
*참고로 경종은 35세에 죽었는데, 몸이 약하다던 사람이 명종과 같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리고보니 경종 명종 비슷하네요. 명종과 경종의 차이는 선조와 영조의 차이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만약 영조 시절에 전쟁이 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21대 영조 - 죽어라, 미친녀석아
효장세자 - 10세 요절
사도세자 - 정조의 아버지
*특별히 쓰는 딸들...
화협옹주 - 미워함(사도세자 동복 누이)
화평옹주 - 조난 예뻐함
화완옹주 - 겁나 이뻐함. 사도세자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혼냄
자식이 많지 않았던 윗대와는 달리 영조는 딸만 많이 낳았습니다. 그리고보니 저기 효종대부터 주구장창 아들이 참 귀하네요. 효종 밑에서부터 조선왕조는 아주 위태위태하다가 헌종 때 아주 작살이 나 버리는 거죠. 영조와는 매우매우 사이가 안 좋았던 사도세자...
이유는 아버지인 숙종에게 배운 아들 갈구기 덕택입니다. 아버지가 한 고대로 따라 하는데 더 디테일하고 꼼꼼하게...그리고 이 아저씬 건강도 좋습니다. 튼튼해효!
갈굼을 당하다가 심해지면 정신이 이상해지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거나 자기 밑에 사람들에게 내리갈굼을 하거나 이상한 짓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갈구는 사람의 그림자만 보여도 숨이 막히고 갑갑해지고 가슴이 뛰고 그렇게 되지요. 사도세자도 그랬습니다.
하루이틀 갈굼 당해야죠...10살 넘어가면서 죽기 전까지 갈굼을 당했으니 사람이 아주 속이 시커멓게 썩었을 겁니다. 특이한 건, 같은 동복 누이였던 화협옹주 조차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같이 갈궈댔다고 하네요. (오죽하면 오누이가 모여 "우린 왕의 귀 씻은 물이다." 라고 자조했다고 합니다.)
갈군 이유는 그냥 세자니까 아버지한테 당한 대로 갈구고, 대리청정 시켰는데 그냥 맘에 안 들어서 갈구고, 심심해서 갈구고, 꼴보기 싫어 갈구고, 그리고 영특한 손자들도 많으니 갈구고, 자기가 건강하니까 갈구고, 자식의 성격이 달라서 갈군 겁니다.
그렇게 갈구다가 정신병 생겼으니 그냥 죽여버린 거죠. 예. 자식 죽인 세명의 아버지 중에 가장 직접적으로 죽인 아버지 되겠습니다. 영조가 정치는 그나마 잘 했을지 모르나, 영조의 선조였던 선조의 경우에도 전쟁 나기 전까진 제법 잘 했던 것을 보면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 걸까요?
그리고보면 명종-선조, 경종-영조 와의 관계도 디테일한 면에서는 다르나 약간 닮은 면도 있긴 합니다. 어쨌든 저쨌든 자세한 내용은 영화도 있고 다른 자료를 참고하세효. 영조는 아버지로서는 진짜 나쁜 사람입니다. 자식 죽이는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요새도 있네요...어휴...)
22대 정조 - 집요한 엄친아
문효세자 - 4세 사망
세자 - 순조
순선옹주
아이는 있었으나...
특이하게도 숙종 때부터 이어오는 본처에게서는 아이가 없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경종 - 장희빈 소생, 영조 - 숙빈 최씨 소생, 순조 - 수빈 박씨 소생)
1남 1녀만 살아남고 그 아들이 정조입니다. 정조는 색을 그다지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의빈 성씨만큼은 15년간이나 쫓아다녔다고 하네요. 19세 때 처음으로 궁녀와 왕자로 만났다가, 그 때는 이미 정조가 결혼을 한 상태였으나, 아이가 없던 터라 거절하기에 일단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5년간 후궁을 둘 더 뒀지만 역시나 아이가 없다가...15년 후 의빈에게 "너 나한테 와!" 했지만 또 안 따르네효...왕이 불러도 싫다는 쿨한 녀자 의빈 성씨...
결국 정조가 성씨의 하인들을 벌을 주자 못이긴 척 정조의 후처로 들어옵니다. 15년간 참았던 욕정(?)을 한방에 풀었는지 1782년에 첫 아들을 낳아주고 1784년 옹주를 낳고 그 해 또 아들을 임신합니다만...아이들은 모두 어려서 죽고 임신한 채 사망합니다.
정조가 직접 콕 찍은 유일한 여인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정조 28세, 성씨 29세, 14~15세면 결혼하여 16~18세면 첫아이를 보았으니 지금으로 치면 40대 가까운 남녀가 만난 셈)에 승은을 입었고 짧았지만 폭풍같은 사랑을 했습니다. 34세에 사망했으니 5년 정도 잘 지내고 헤어진 거죠. 15년 기다려서 5년만 행복했으니 정조가 꽤 슬펐던 모양입니다. 직접 왕후의 묘비에 글을 씁니다....상당히 로맨시스트죠?
그거 외에는 아들 순조밖에 없네요. 정조의 치세와 업적에 대해서는 그냥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의외로 대단한 보수주의자라 문체반정을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즉 소설을 싫어하셔서 소설 그런 거 읽지마! 하셨던 분이기도 합니다...이번 포스팅은 개인사 위주니 이해하세요
23대 순조 - 순종만큼 존재감 제로 왕
효명세자 - 헌종의 아버지, 훗날 고종의 양아버지(나도 모르는 자식...)
그외 3명의 공주
*순조는 모르는 순조의 양아들 철종
순조는 정조의 아들입니다. 사실 순조라는 임금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시는 분이 태반일 텐데, 생각보다 치세는 깁니다. 무려 34년을 즉위하신 분입니다. 원래 순종이었는데,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고 카톨릭(이단)을 핍박했다는 이유로 "순조"로 묘호가 변경되신 분입니다. 보통 "조"자 가 붙으면 다른 왕들보다 상당히 큰 치적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철종도 그렇고 고종도 그렇고 모두 이 순조의 후손에 양자로 들어갔으니 안 높일 수야 안 높일 수가 없었습니다.
후손들이 모조리 요절했습니다. 자식들이 모두모두 자기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효명세자(22세)
복온공주(15세)
덕온공주(23세)
영온옹주(13세)
거기에 손자였던 헌종(23세)도 단명했네요. 아들에겐 대리청정을 시켰고 상당히 일도 잘했습니다만 2년만에 콕 사망...ㅠㅠ 머지않아 순조의 두 딸도 사망해서 순조도 화가 나서 죽은 듯 합니다. 죽었을 때는 44세로, 다른 왕들보다는 오래 살았습니다. 조선시대 왕들조차 40대까지 간 왕이 많지 않음을 보면 이 존재감없는 분이 그렇게 오래 즉위한 것도 이해할만 합니다.
24대 헌종 - 효종에서 이어오던 직계의 단절
딸만 둘인 딸딸이 아빠였습니다. 8살에 즉위했기에 수렴청정이 있었고, 15년간 즉위했다가 사망했습니다만 비슷한 발음의 현종처럼 존재감은 영~ 없는 왕이기도 합니다. 삼국지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헌제였던 거 아시죠? 물론 헌자가 서로 다른 헌자이긴 합니다만, 존재감만큼은 삼국지 헌제만큼도 못했던 왕이 헌종이기도 합니다. 존재감이 워낙 없어서 사극에도 안 나왔다는군요.
25대 철종 - 인생 로또였으나 허수아비
5남6녀. 모조리 어렸을 때 사망
철종은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손자입니다. 은언군은 정조 때 홍국영이 몰락하면서 유배되는 신세에 몰렸으나 정조가 봐줘서 그나마 잘 살았습니다만, 순조가 즉위하면서 마누라와 며느리가 천주교 신자라는 게 발각되면서 사약을 받고 죽고 맙니다. 은언군의 서자 이광은 살아남아 헌종의 비호아래 아들 셋을 낳고 잘 살았는데 첫째가 역모에 휘말려 또 죽고 마네요. 할아버지와 손자가 사이좋게 역모로 유배 또는 사망...-_-;
그 이광의 막내 이원범이 바로 철종입니다.
뭐 아시다시피 철종은 왕이 될 생각조차 못했기에 어느날 갑자기 뙇! 하고 인생로또 맞아서 왕이 된 케이스라 허수아비 그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18세 때 즉위하여 32세에 사망했는데, 순조-헌종 때 역모에 걸렸어도 전부 다 죽이지 않은 이유가 자손이 워낙 없었기에...
하긴 그래서 왕이 된 케이스였으나 왕 자체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참고로 조선 왕은 왕 하고 싶은대로 다하는 그러는 거 없습니다. 겁나 피곤하고 할 일이 많아 대부분 과로사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술먹고 밤에 그거하고....하는 거 외에 별 낙이 없었던 듯 합니다.
26대 고종 - 오래 살아서 욕본 허수아비 냥반(2)
명성황후(황제 하면서 황후로 추존)
4남 1녀 중 세자 순종만 생존
그외 7남1녀 서자중 2남 1녀 생존
의친왕 강
영친왕 은
덕혜옹주 이덕혜(요새 영화로 나온...)
그나마 철종은 영조의 후손이라도 되어서 헌종이랑 가까운 직계 혈족이나마 되었습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고종은 이건 뭐...-_-;
예. 고종은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의 9대손입니다. 9대손쯤 되면, 어느 수준이냐면요.
임진왜란 왕족 출신 장수 중 유명한 분
이억기 - 정종의 10째 아들 덕천군의 후손
무의공 이순신 - 양녕대군의 7대손. 충무공 이순신 아님
이 정도 수준입니다. 무의공 이순신이 고종보다 더 왕가랑 가깝다고 해야겠네요...저 정도 수준이니 대체 고종은 정식 왕가의 직계 혈통이라 부르기에도 좀 뭣한 수준이죠. 고려에서 우왕 창왕? 걔네들보다도 더한 수준입니다. 뭐 우왕 창왕이야 공민왕의 아들이니 아니니 하기도 했지만 뭐...
고종은 오래 살았는데 그냥 허수아비라고 보시면 됩니다. 애초에 즉위 때부터 허수아비였고, 아버지 물러나니 아내가 전반에 나서구요. 곧 일본놈들에게 슥삭당하면서 이제 힘은 하나도 없어지구요. 독살 시도에 순종이 걸려들면서 순종은 바보로 소문나고요... 그러다 보니 한 것도 없고 후손들도 불행하게 살다 죽었습니다.
의친왕, 영친왕의 경우 "군"이 아닌 이유는 일본 황족으로 편입되면서 왕의 아들일 경우 "친왕", 딸일 경우 "내친왕"을 붙이기 때문입니다. 덕혜옹주는 특이하게도 옹주로 불리운 게 특이하군요.
27대 순종 - 마지막 왕이라 아이도 없음.
순종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럼 정리해 봅시다.
자식을 죽인 나쁜 아버지
중종 : 본인의 손으로 죽였다기 보다는 신하들의 모해로 인해 죽음. 나이가 좀 많았으며 살아있었다면 명종 대신 즉위했을 거임
인조 : 인조가 보낸 어의의 손에 세자가 사망. 세자 말고 세자빈 및 세손은 직접 처리함
영조 : 본인이 본인의 아들을 처리함. 특이하게도 사도세자의 장자는 정조, 서자의 후손은 철종이 되었다.
자식을 질투한 아버지
선조 : 광해군 뭐...위에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인조 : 안 좋은 것만 따라해요 꼭
자식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아버지
태종 : 세종에게 잠깐(몇 달)
세종 : 문종에게 8년. 문종은 재위기간보다 대리청정이 더 길음. 세종이 몸이 아파서 실권은 문종에게 있음. 세종 말년의 치적은 문종이 결재한 것.
선조 : 도망간 사이에 백성신하명나라 모두 광해군을 더 밀었다.
숙종 : 경종에게 잠깐(몇 달)
영조 : 사도세자 갈구느라 잠깐
정조 : 영조 오늘내일하는 몇 달
순조 : 효명세자 2년
자식이 개차반인 아버지
태조 : 태종...
태종 : 양녕대군...
세종 : 수양대군...
3대가 벌받았다!!!
성종 : 연산군
선조 : 최악. 일찍 죽은 애들 빼고 모조리 개차반...
자식끼리 서로 죽임
태조 : 왕자의 난
세종 : 계유정난. 세조가 안평대군을 죽임
성종 : 중종반정. 중종이 연산군 죽임
선조 : 광해군이 영창대군, 임해군 죽임
요 밑에는 서로 죽일 자식들이 음슴...-_-;
좋은 아버지
글쎄요, 적통을 위해서 형제를 죽이고 처남을 죽이고 세자 외의 아들들을 죽이거나 유배를 보내거나 감시하거나 하고 아내도 죽이고 하는 사람들이 좋은 아버지일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왕은 좋은 아버지가 절대 네버 될 수 없는 것이죠.
이상 왕은 절대 네버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한 긴긴 포스팅 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왕이 아버지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순화군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