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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詐欺 列傳]26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게시물ID : history_129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9
조회수 : 71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2/13 16:11:23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팟캐스트로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 하세요~^^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필자가 글을 쓰고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 글의 순서로는 26회가 되었고 팟캐스트 방송으로는 30회가 되었다.
30회 라는 숫자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것도 아니고 1년이나 3년의 시간이 흐른것도 아니기에
지금 벌써 몇회를 따지는것이 참으로 하잘것 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반년 가까이 나름 쉬지 않고 이 글을 써온것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글의 내용이야 그저 잡스럽고 보잘것없는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쓰고 있다는것 하나로도
약간의 뿌듯함이 생기는것을 보면 이 연재를 끝낼때쯤의 성취감은 어떨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벌써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졸필과 근본없는 무식함을 무릅쓰고 뻔뻔하게 역사서를 논하는데 대해 무거운 죄책감이 있지만
그래도 웃고 읽어주시는 분들이 다만 몇분이라도 있다는것에 대해서는
무한한 감사와 함께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저 부끄럽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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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사기열전을 시작하면서 제일처음에 형가의 이야기를 하였고
그 두번째로 <문경지교> 라는 제목으로 인상여와 염파의 이야기를 하였다.
순서를 벗어나면서 까지 그 두편의 이야기를 가장 앞으로 끌어 올린것은 당시에도 설명 했듯이
이 사기열전 70편중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또는 설명을 잘했든 못했든간에 이미 인상여와 염파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한바가 있다.
그런데 이 염파 인상여 열전에는 그 두사람 외에도 여러명의 장수들이 출연한다.
그래서 이미 설명한 인상여와 염파의 이야기보다는 전에 문경지교 편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장수 조사.이목 등을 위주로 하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이 염파.인상여 열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조나라의 충신들이며 인상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무장들이다.
조나라는 항상 진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이렇게 훌륭한 장수들이 많아서
그 나라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조나라는 자기나라의 명장들을 믿지 않고 간신배들의 참언때문에 매번 위기를 자초하다가
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자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국가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장수들이 있어
조나라는 그 이름을 열국에 떨칠수 있었다.
염파와 인상여의 열전이지만
지금부터 조사와 이목 등의 이야기를 위주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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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장재(汝非將才)
 
조사(趙奢)는 전부리(조세담당관)였다.
조세를 거둘때 평원군 조승의 집에서 납세를 거부했다.
조사는 평원군의 도조 9명의 목을 베어버렸다.
평원군이 화가나서 조사를 잡아 죽이려 했다.
조사는 겁내지 않고 오히려 평원군에게 따졌다.
"국가가 믿는것은 법입니다.
공자께서는 이 나라의 왕족이신데 그런 공자께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이는 국법을 침해하는것입니다.
국법이 침해 당하면 국가가 위태로울것이고 그러면 다른나라가 쳐들어올것이며
그리되면 조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그때에 공자께서는 재산을 아끼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 할것입니다.
제가 법을 공정히 지켜 시행하면 법이 확립될것이고 그리되면 국가는 자연히 강해집니다.
국가가 강해지면 타국 제후들이 어찌 공자를 가벼히 보겠습니까?"
평원군은 조사를 현명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혜문왕에게 그를 천거하였다.
조사는 국가의 부세를 맡아보게 되었고 국가의 세금이 크게 공평해지니
백성은 부유해졌고 국고는 충실해졌다.
 
진나라 양후 위염이 한나라를 공격하기위해 알여땅에 진주하였다.
한나라는 조나라에 급히 구원병을 청했다.
조혜문왕이 뭇 신하를 모아놓고 의견을 물었다.
인상여와 염파는
"알여땅은 길이 멀고 험하며 길목이 좁기때문에 구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며 구원하지 말것을 청했다.
조왕이 악승에게 물으니 악승또한 염파와 의견이 같았다.
평원군 조승은 한나라를 그대로 두면 그 다음에는 조나라가 침범을 당할것이라 하여
한나라를 구원할것을 강력히 주장 했다.
의견이 분분하자 조왕이 이번에는 다시 조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조사는 "알여는 지형이 좁고 길이 험하므로 두마리 쥐가 작은 구멍속에서 다투는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군대가 가면 이길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 하였다.
조왕은 조사의 말을 듣고 "그말이 매우 묘하다."라고 하며 조사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5만을 주어
한나라를 돕도록 하였다.
조사는 알여땅을 구하기 위해서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 도읍 한단성을 떠났다.
그러나 한단에서 불과 30리쯤 가서는 그곳에 영채를 세우고 주둔했다.
조사는 전군에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부터 누구를 막론하고 군사에관해 말하는자는 모두 참할것이다."
한편 한나라 알여땅에서는 진나라 군사의 함성으로 기왓장이 들썩거릴정도로 소란했다.
조나라 척후병이 그것을 살피고 조사에게 와서 말했다.
"지금 알여땅이 위급합니다. 속히 가서 구원하여야 할것 같습니다."
조사는 두말않고 그 척후병의 목을 베었다.
조나라 진영은 그저 고요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약 한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진나라의 간첩이 들어왔다가 잡혔다.
그러나 조사는 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잘 대접해서 돌려 보냈다.
진나라 간첩이 돌아가서 보고하였다.
"조나라는 도성애서 겨우 30리를 나와 누벽을 쌓고 꼼짝않고 있습니다."
진나라 장수 호상은 조나라가 두려워서 더 나아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조나라쪽의 방비를 거두고 한나라를 공격하는데 몰두 했다.
한편 조사는 간첩을 돌려보낸후 즉시 영채를 뽑고 전군에 갑옷을 벗게 하고 모두 경장을 하게 하여
재빨리 진군하여 알여땅 50리 밖에 진을 쳤다.
부장 허력이 조사를 찾아와서 군사를 간하겠다고 청했다.
"들어오라."
"진나라는 우리가 갑자기 여기까지 온것을 알고 놀라서 대군으로 우리를 칠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두텁게 방비를 해야 합니다."
조사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대의 말이 옳다."
"병법에 유리한 땅을 선점하는자가 이긴다고 했는데 이제 이곳에서 북산이 가장 높으니
우리군대가 저 북산을 먼저 점령하면 승리 할것입니다."
"그러면 그대가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 북산 정상을 점령하라."
허력이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 북산 정상에 오르니 주변의 정세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를 안 진장 호상이 크게 노하여 북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허력은 돌과 나무를 굴리고 던져 진나라군사를 막았다
이때 매복했던 조나라 궁수부대가 진나라 군사들에게 일제히 활을 쏘았고
당황한 진장 호상이 달아나려 하는것을 조사의 본군이 가로막아서 진나라 군사들은 대부분
죽거나 사로잡히고 조나라가 대승을 올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한나라 알여땅의 포위는 자연히 풀리게 되었다.
한나라 한리왕은 친히 성에서 나와 조나라 군사를 크게 위로하고 국서를 보내어 조혜문왕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조사가 개선하여 조나라로 돌아오자 조혜문왕은  조사에게 마복군의 칭호를 하사하고
허력을 국위 로 삼았다.
이리하여 조사는 조나라에서 염파.인상여와 같은 지위의 반열에 올랐다.
 
조사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이름은 조괄 이었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병법에 관해 논쟁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집에 전해 내려오던 육도삼략 이란 병서를 한번 읽은후에 스스로 더욱 병법의 대가인체 뽐냈다.
조괄은 자기 아버지 조사와 병법을 논하면서도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듯 잘난체 했고
심지어 자기 아버지까지도 병법에 대해서는 자기에 못미친다고 생각했다.
조괄의 어머니가 남편 조사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 괄이 저렇듯 병법에 능통하니 얼마나 기쁩니까?
저 아이는 장차 이나라의 큰 장수가 될것입니다."
그러나 조사는 잔뜩 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군사란 사생의 마당이니 항상 여러사람과 상의 하고도 오히려 실수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는 것인데
괄은 스스로 자기가 천하 제일인줄 알고 교만하니
만일 저렇게 입으로만 군사를 논하는 사람이 병권을 잡으면 그는 항상 모든걸 제맘대로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을테니  나는 그러고도 패하지 않는 군대를 본적이 없소."
조사의 부인이 그 말을 아들 조괄에게 전하자 괄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아버지도 늙으셔서 겁이 많아지셨나 봅니다."
그후 조사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조사는 유언으로 조괄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야 싸움에 진 장수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죽게 되었다.
그러나 너는 결코 장수가 될 인물이 못된다.
그러니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장수가 되지 말아라.
너 하나의 잘못으로 네 몸과 가문을 망치고 나라를 망칠것이 두렵다."
조사는 또 자기의 부인에게도 유언을 하였다.
"훗날 조왕이 우리아들 괄을 장수로 삼으려 하면 그때 당신이 왕에게 지금 내가 한말을 전해주시오.
내 아들이 많은 군사를 죽이고 나라를 망치는것을 두고 볼수가 없소."
그렇게 말을 마친 조사는 자는듯이 눈을 감고 죽었다.
조혜문왕은 생전의 조사의 공로를 잊을수 없어서 조사의 아들 조괄에게  마복군의 작호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그뒤 몇년후에 조혜문왕이 죽고 아들 조효성왕이 즉위하였다.
그 몇년뒤에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여 장평땅에서 대치하였다.
이때는 이미 조사는 죽고 인상여도 늙어서 병중이었다.
그래서 조나라는 염파를 대장으로 삼아 진나라를 막게 하였다.
늙은 장수 염파는 매우 용의주도 하였다.
진나라가 수차 공격했지만 염파는 누벽만 높이 쌓고 방어만할뿐 맞서 싸우질 않았다.
진나라 장수 왕홀은 대응을 하지 않는 조나라 군사를 혼란시키려고 조나라 군사들의 식수원인
개천을 끊어 다른곳으로 물길을 돌려 버렸다.
그러나 노련한 백전노장 염파는 이미 그럴줄 알고 저수지를 파서 식수를 충분히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조나라 군사들은 전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영채를 튼튼히 지켰다.
그렇게 4개월이 흐르자 진나라에서는 염파를 무찌를 계략이 없음을 알고 이간계를 쓰기로 하였다.
"겁쟁이 염파는 진나라가 무서워서 누벽을 높이 쌓고 숨어있을 뿐이다.
염파따위는 아무것도 아닌데 다만 조나라에서 두려운것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 뿐이다."
이러한 소문이 조나라 조정에 퍼지게 되자 조효성왕은 염파를 의심하게 되었다.
"염파가 늙어서 겁이 많아진 모양이구나."
조효성왕은 염파에게 싸움을 독촉했지만 염파장군은 이미 계책이 서 있었으므로 출전하지 않았다.
이에 대로한 조효성왕이 염파를 소환하고 마복군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여 장평으로 보내려 하였다.
인상여가 나서서 반대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ㅡ조괄과 백기의 장평대전에 대해서는 이미 백기.왕전열전에서 거론한바가 있기때문에 이 후의 일은 생략하도록 하겠다.ㅡ
아무튼 조괄은 장평전투에서 패하고 백기에게 사로잡힌 조나라의 40여만 포로는 하루아침에 생매장 당하여 모두 죽고 말았다.
조괄또한 이 전투에서 비록 용감히 싸웠으나 적의 화살에 맞고 죽었다.
 
그후 일년뒤에 진나라의 재침으로 조나라의 한단성이 포위되고 멸망의 위기에 빠졌으나
위나라 신릉군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난이야기도 이미 설명한 바가 있다.
 
한단의 포위가 풀린지 약 5년후에 연나라 재상 율복이 연왕에게 계락을 아뢰었다.
"조나라는 장평땅에서 군사의 씨가 말랐고 그 고아들은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이때 조나라를 치면 쉽게 정벌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나라가 조나라를 쳤다가 염파에게 격파 당하여 연나라는 조나라에게 많은 땅을 베어주고 강화할수 있었다.
몇년후에 조효성왕이 죽고 그 아들 조도양왕이 즉위 하였다.
조도양왕이 염파를 파직하고 악승을 기용하였기 때문에 화가난 염파가 악승을 공격하여 쫒아버리고
할수 없이 위나라로 망명한것 역시 전편에 이미 설명한 바이다.
위나라에서는 오랜세월 조나라의 명장으로 활약했던 염파를 중용하지 않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잠시 조나라 간신 곽개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조나라 대부 곽개는 암금에게 아첨을 잘 하고 비위 잘 맞추기로 유명한 간신배였다.
곽개는 어느날 궁중 잔치에서 도에 지나친 아첨으로 왕의 비위를 맞추다가
염파장군에게 크게 무안을 당한 일이 있었다.
염파는 원래부터 간신 곽개를 미워 하였는데 이때의 일로 더욱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대부 곽개는 속으로 염파에게 앙심을 품고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를 하리라고 마음 먹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조나라의 왕이 바뀌어 조도양왕이 즉위하였고 조도양왕은 바로 곽개의 참언을 듣고
염파를 파면하여 소환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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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계속된 진나라의 침공으로 지칠대로 지친 조나라는 다급해져서 위나라로 달아난 염파를 불러올 생각을 하게 됐다.
 조왕은 우선 사자를 시켜 위나라에 있는 염파가 어찌 지내는지 만나보고 오게 하였다.
 
큰일이 난것은 곽개였다.
염파가 다시 귀국하여 중용된다면 자신의 음모가 모두 들통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곽개는 위나라로 염파를 만나러 가는 사자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염파를 중상모략하게 하였다.
 
조나라 사자는 위나라에 가서 염파를 만나보았다.
염파는 이 사자가 왜 온것인지 눈치를 챘다.
염파장군도 내심 조나라로 돌아가서 다시 조나라 군사를 지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염파는 사자가 보는 앞에서 갑옷을 입고 말을 달리며 긴 창을 들고 춤을 추듯 휘두르다가
말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염파는 식사때마다 한말의 밥을 먹고 열근의 고기를 먹었다.
마치늑대가 밥을 씹고 호랑이가 고기를 삼키는듯 하였다.
염파는 조나라 사자에게 조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자신의 뜻을 알렸다.
이러한 염파장군의 녹슬지 않은 용력을 보고 감탄한 사자는 조나라로 돌아와서 왕에게 이러한 사실을 고하였다.
그러나 순간 곽개에게 뇌물을 받아먹은 일이 생각나서 얼른 말을 바꾸었다.
"그런데 그것은 제 앞에서 용력을 과시하기위한것에 불과 합니다.
염파는 저와 잠시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세번씩이나 오줌을 누러 변소에 다녀오더이다."
조도양왕이 탄식 했다.
"그렇게 자주 오줌을 눠서야 어찌 싸울수 있겠는가?
이제 염파도 아주 늙었구나."
조도양왕은 염파를 소환하지 않았다.
 
초나라에서는 염파가 위나라에 있다는 소식으 듣고 사신을 보내어 그를 초빙 했다.
염파는 초나라에서 장군에 임명 되었지만 어찌 조나라 군사만 했겠는가?
염파는 풍속도 다르고  산천도 낯선 초나라에서 아무런 공로도 없이 세월만 보냈다.
염파는 끝내 수춘땅에서 우울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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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李牧)은 북쪽의 변방을 잘 지키던 명장이었다.
일찌기 대주땅 안문에 살면서 북쪽 흉노의 침공을 잘 막아냈다.
이목은 성벽을 높이 세우고 흉노가 침입해오면 나가 싸우지않고 방비하기만 했다.
흉노는 여러차례 습격하고도 아무 소득이 없었다.
조나라에서는 이목이 나가 싸우지 않는것을보고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여
이목에게 서찰을 보내어 흉노를 공격할것을 명했다.
그러나 이목은 이미 계책이 서있었기 때문에 나가 싸우지 않았다.
참다못한 조왕은 이목을 파면하고 다른 장수를 파견했다.
새 장군이 오자 조나라 군사는 날마다 나가서 흉노와 싸웠다.
결국 조나라 군사는 지치게 되고 싸울때마다 질때가 많았으며 가축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다.
백성들은 농사를 지을수 없고 목축도 할수 없어 원성이 자자했다.
변방의 백성들은 이목을 다시 보내달라고 성화였다.
조왕은 하는수 없이 이목을 기용하려 했으나 이목은 거절하여 나가지 않았다.
조왕이 여러차례 강권하자 이목이 분명히 못을 박았다.
"저의 복무방침은 전과 다름이 없을것입니다."
마침내 조왕은 이를 허락 하였고 이목은 다시 대주땅으로 부임하였다.
대주는 다시 평안했고 백성들은 부유해 졌으며 군대의 창고는 그득해졌다.
흉노는 다시 몇년동안 소득이 없었다.
이목은 군사들에게 날마다 활쏘기와 뜀박질등을 시켰고 소를잡아 배불리 먹였다.
그래서 군사들의 사기는 자연히 높아졌다.
 
어느날 이목은 전차 1300대와 기마 1만3000필을 가려뽑고 정에병 5만을 엄선하고 궁수10만을 동원했다.
그런데 이목은 가끔 흉노와 싸웠지만 항상 조금 싸우다 후퇴하고 싸우다 후퇴하곤 하였다.
이에 이목을 겁쟁이라고 생각하여 긴장이 풀린 흉노선우가 대군을 이끌고 이목의 성으로 쳐들어왔다.
그러나 이목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이목은 스스로 창안한 기묘한 진법으로 흉노를 혼란시키고 결국 10만여 흉노군사의 목을 베었다.
이목의 조나라 군사는 이 여세를 몰아 담람.동호.임호 까지 격파해 항복시켰다.
흉노 선우는 멀찌 북쪽으로 달아났다.
그후 10여년간 흉노가 감히 조나라 변경에 접근하지 못했다.
몇해후에 진나라가 조나라로 쳐들어와서 조나라 군사 10만이 죽었다.
조나라는 이목을 불러 대장군으로 삼아 진군을 막도록 했다.
이목은 의안땅에서 진장 환의를 맞아 크게 깨뜨리고 승리하였다.
조왕 천 은 개선하여 돌아온 이목을 무안군에 봉하고 만호의 봉읍을 하사하였다.
 
진나라가 왕전장군을 시켜 조나라에 쳐들어 왔다.
조나라에서는 이목.사마상 등이 이를 잘 막아냈다.
 
진나라는 조나라 공략이 쉽지 않자 조나라의 간신인 곽개를 은밀히 매수해서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을 꾀한다고 참소하게 하였다.
조왕천은 조총을 대장으로 삼아 이목을 소환하도록 하였으나
이목은 이를 미리 알고 오히려 간신 곽개와 조총을 쳐서 무찌르려 하였다.
그러나 적국 진나라와 대치한 상황에서 군대를 빼돌려 본국을 치면
이때를 기회로 진나라가 쳐들어 올것이니 이목은 자신의 원한은 갚을수 있겠으나
나라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것이 매우 걱정이 되었다.
"나는 천하 명장인 악의와 염파가 우리 조나라에서 생을 마치지 못한것에대해 한이 맺힌 사람인데
오늘날 나마저 그런신세가 될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한탄하던 이목은 타국으로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이목은 새로 오는 조총장군이 장수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인수를 장막안에 걸어두고
백성의 옷으로 갈아입고 그길로 달아났다.
 
새로 대장이 된 조총은 이목이 자기에게 직접 인수를 전달해주지 않은것에 매우 화가나서
수많은 역사를 풀어 이목을 잡도록 명하였다.
결국 이목은 국경을 넘기 직전 어느 여관에서 역사들에게 발견 되었다.
역사들은 힘으로 이목을 당적할 자신이 없어서 나그네로 가장하고 이목에게 접근하여
많은 술을 권하여 이목을 대취하게 하였다.
그날밤에 술에 만취한 이목이 자고 있을때 역사들이 몰래 방으로 숨어들어 이목의 머리를
한칼에 베어 버렸다.
슬프고 애닮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
결국 조나라의 명장 이목도 염파와 마찬가지로 간신 곽개의 모함에 걸려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이목이 죽자 조나라를 지킬 장수가 없게 되고 결국 조나라는 3개월 후에 진나라 장수 왕전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 염파.인상여열전을 알아보았다.
사마천은 이 열전의 말미에 이렇게 평하였다.
죽음을 각오하면 용기가 솟아오르는 법이다.
죽는것이 어려운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 죽어야 하는지 판단하는것이 어려운것이다.
인상여가 화씨의 벽을 손에들고 진왕을 쏘아보며 꾸짖을때 형세는 오직 죽는길밖에 없었다.
인상여가 한번 발분하자 그 위세는 적국을 뒤엎었다.
인상여는 귀국후에 염파에게 양보의 미덕을 베풀어 그 명성이 태산보다도 무거워 졌다.
인상여야 말로 지혜와 용기를 동시에 가진 인물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 인상여.염파열전을 알아 보았다.
서두에 말했듯이 이미 서술했던 인상여와 염파의 이야기보다 그외의 장수들에 더 촛점을 두어 이야기를 풀어 보았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전에 조나라를 망친 간신 곽개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수가 없을듯 하다.
곽개는 애초에 조나라의 안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여러나라에 간신배가 많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곽개만한 매국노는 없다고 단언할만큼 곽개의 매국행위는
참으로 대단했다.
곽개는 나라를 사랑하는 염파장군의 꾸짖음을 듣고 반성하기는 커녕 염파장군에게 원한을 품고
결국 그를 참소하여 전쟁터에서 소환하도록 하였으며 또한 염파의 재기용마저도 가로막고 말았다.
또한 망해가는 조나라의 마지막 기둥이라 할수 있었던 이목장군마저 진나라의 뇌물을 받아먹고
모반혐의로 참소해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도록 한 장본인역시 곽개였다.
곽개는 조왕 천 의 왕자시절에 적자이며 태자인 공자 가 를 모함하여 몰아내고 왕자 천을 태자의 자리에
올렸으며 왕자 천 의 태부가 되었다.
그는 태자가 공부를 싫어하고 잡기만 좋아하였기 때문에 학문은 가르치지 않고 오락만을 지도 하였다.
그러다가 왕자 천이 왕위에 오르자 조나라 정승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일국의 최고 벼슬인 재상의 자리에 까지 올랐으면서도 곽개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
적국인 진나라의 뇌물을 지속적으로 받아먹으며 진나라의 계략에 따라 조나라 명장들을 모함하고
결국 조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의 위기에 빠졌을때 곽개는 조왕 천을 협박하여
진나라에 항복하면 목숨만은 건질수 있다고 말하여 다른 장수들이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동안 조왕 천이 나라를 들어 진나라에 항복하도록 하였다.
진나라에 항복한 조왕 천 은 결국 옛 초나라 땅인 방릉 이란곳으로 압송되어 조그만 석실에 구금 되었다가
얼마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이로서 조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그후 곽개는 진왕을 따라 진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곽개는 그동안 모아둔 황금이 너무 많아서 그걸 한번에 다 가져갈수가 없었다.
그래서 곽개는 할수없이 한단성 자기집 뒷마당속에 그 많은 황금을 묻어 두고 진나라로 갔었다.
진나라로 간 곽개는 한시도 그 많은 황금을 잊을수가 없었다.
곽개는 진왕에게 집안 살림을 정리해서 가져오겠다고 휴가를 청하였다.
그는 한단성으로 돌아가서 자기집 마당의 황금을 모두 파내어 여러대의 수레에 나눠싣고 진나라로 떠났다.
곽개가 진나라로 가던 도중에 산속에서 여러명의 산적을 만났다.
산적들은 일제히 내달아서 한칼에 곽개를 목베어 죽이고 그 많은 황금을 실은 수레를 빼앗아서
부지거처로 사라져 버렸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것은 산적이 아니고 옛 대군땅에서 이목장군을 따라왔다가
이목이 억울한 모함을 당해 죽자 달아나서 산속에 숨어있던 이목의 부하들 이었다고도 했다.
곽개는 황금때문에 나라를 팔았는데 결국 그 많은 황금을 써보지도 못하고 그 황금때문에 죽고 말았으니 어찌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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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가는 여러 서적들과 사기열전.또 열국지등을 읽으며 "이 대목을 읽을때마다 책을 집어던지고
탄식하지 않은 때가 없다" 고 하였다.
필자의 심정또한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멀리 외국에서 찾을것도 없이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곽개와 같은 매국노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다.
국민 대표매국노 이완용 을 비롯하여 을사오적과 수 많은 친일파들이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친일파가 얼마나 많으면 친일 인명 사전을 발간할 정도 이겠는가?
 
또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여러 독립운동가들을 배반하고 결정적으로 모든 국민들의 통일의지를 단칼에 베어 쓰러뜨리고 정권을 차지한 이승만은 지금 이나라에서 국부 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전쟁중에도 국회를 해산하고 수많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였는데도
그러한 반역자를 건국의 아버지라 한다면 이나라 국민들은 과연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혹자는 말한다.
'이완용이 매국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조선은 일본에게 먹혔을 것이다.'
말인즉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따위 말을 하는 자는 분명 친일 매국노 일당이다.
그것은 100%.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 할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어찌 그런 말을 입밖에 낼수가 있겠는가.
저 버러지만도 못한 쓰레기 정권은
이완용의 매국행위도 개인의 일탈 행위라고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의 마음을 엄습한다.
수천년 전이나 일제시기나 지금이나 변한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는것은
나 스스로 어찌 해볼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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