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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년특집 JTBC 토론에 나온 패널들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
게시물ID : sisa_8286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두개의달이
추천 : 5
조회수 : 6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03 13:32:52
1. 유승민

토론을 보기 전, 개인적으로 저는 유승민 의원님을 새누리당 쪽에서 '그나마 건질 만 한 개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도 공공연하게 그렇게 말했고요. 반기문 대신 유승민이 대선후보가 되면 좋겠다, 뭐 그런 식으로도 많이 생각하곤 했는데, 이번 토론에 나온 모습을 보고는 실망을 좀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긴 정말 죄송하지만... 다른 세 분에 비해 사회 경제 전반에 대한 교양? 격? 같은 게 너무 떨어지는 느낌이었달까요... 솔직히 다른 패널들과 너무 비교되더군요.


현재 경제학에는 크게 두 개의 사조가 있습니다.(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끝도 없습니다만.) 하나는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공급위주 경제학입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죠. 이들은 물건을 일단 생산했을 때 이를 소비해 줄 구매력은 무한대에 가깝다고 보고, 어떻게 하면 공급을(=생산을)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논리도 폅니다. 이 경우 국가가 생산 수단을 가진 기업들을 후원하고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도록 지원해 주는 일이 가장 효율적인 경제 정책이 됩니다. 물론 법인세도 깎아 주고요.

반대편에는 케인즈로 대표되는 수요위주 경제학이 있습니다. 이들은 재화를 생산할 우리의 생산수단은 충분하며, 부족한 것이 공급이 아닌 수요(=구매력)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살 돈이 없으니 생산을 해도 팔리질 않고, 이 때문에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 현상이 극단적으로 진행된 것이 흔히 말하는 대공황이지요. 때문에 이 관점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 정확히 말하면 1달러를 주었을 때 그 1달러를 온전히 소비할 것이 확실한 사람들에게 - 억지로라도 돈을 쥐여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경제 정책이 됩니다. 

유승민이 공급위주 경제학을 지지한다고 하면 그건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점점 수요위주 경제학을 서포트하는 증거들이 쌓여 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수정을 거친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은 아직 많습니다. 하지만 수요위주 경제학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 그건 대선 후보로써 문제가 심각한 겁니다. 이런 사람이 당 대표나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한 듯이 공급 위주 경제학 정책만 주구장창 펴지 않을까요?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비교 분석을 하고 취사선택을 하죠.

이재명 시장님은 수요위주 경제학을 아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으시죠. 그래서 복지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 주면 경제는 자연스럽게 살아날 것이다 라는 논리를 여러 번 펼치셨습니다. 근데 그걸 보고 '아니 복지를 늘린다고 경제가 살아날 수 있어요? 그건 다른 문제 아니에요?' 라고 되묻는다는 것은 유승민 의원님이 얼마나 경제에 무지했는지, 혹은 무관심했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또 정치에 그렇게 오래 몸담으셨으면서 '보수, 아니면 진보'라는 일차원적인 흑백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우리의 가치 체계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도리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너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했을 때 '그럼 내가 좌파라는 말이냐' 라고 맞받아치니 대화가 진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원책 변호사님이 이걸 설명하려다가 시간 제대로 낭비하셨죠.

전원책 변호사님만 해도 진보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라고 하는 세 개의 큰 흐름을 말했죠. 사실 세상에 7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70억 개의 사상이 있습니다. '~~주의' 라고 하는 것들은 어떤 경향성을 가지고 이들을 묶은 것뿐이죠. 예를 들어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은 동성애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고, 법인세 인상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외국인을 배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공통된 '스토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느슨하게 묶어 통칭하는 것이며, 그 중에는 동성애에 찬성하는 사람, 법인세 인상에 찬성하는 사람, 외국인에 옹호적인 사람도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수직선 위에 놓인 한 점이 아니라 무한차원 위의 벡터입니다. 그런데 이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에 진보주의 아니면 보수주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써 정치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유시민

유시민 작가님의 다른 패널의 기나긴 발언에서 핵심을 집어내는 통찰력은 언제 봐도 놀랍습니다. 근데 오늘은 너무 존재감이 없으셨어요 ㅋㅋㅋ

아마 공격적인 발언은 전원책 변호사님으로 차고 넘치기에(...) 그냥 유들유들한 컨셉으로 가신 것이 아닌가 싶네요. 뭐 유시민 작가님의 생각은 썰전에서 충분히 들으니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만. 



3. 전원책

아조씨... 토론하면서 그만 좀 흥분하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발언 길이도 어떻게 좀... 손석희 사장님이 곤란해하시잖아요..ㅋㅋㅋ

이상적인 토론 태도를 가진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개인적으로 전원책 변호사님을 괜찮게 봅니다. '이상적인 사상가' 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이상적인 보수 측 패널'이랄까요? 문재인 대표님도 썰전 전화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하셨죠. 가짜 보수들이 판치고 있는 와중에 전원책 변호사님 같은 제대로된 보수가 자리잡길 바란다고요. "나는 네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네가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 라는 경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원책 변호사님은 항상 일관되게 보수의 가치를 옹호합니다. 보수로써 옹호해야 할 가치를 옹호하고, 여론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더라도 보수로써 거부해야 할 것을 거부합니다. 만약 세상에 우리가 정말로 지켜야만 할 보수적 가치가 존재하고, 또 그것을 위한 올바른 사상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 전원책 변호사님의 사상일 겁니다.

새누리당이나 다른 어떤 보수주의 개인/단체가 개판을 치고 몰락한다고 해서 전원책 변호사님이 틀린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전원책 변호사님이 주장하는 사상이 몰락한다면 - 우리가 언젠가 반박할 수 없는 물적 증거를 가지고 전원책 변호사님을 완전히 논파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 때는 우리의 역사에서 '보수주의'라는 이름을 영원히 지울 때가 될 겁니다. 저는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원책 변호사님이 각종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모습을 비추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그걸 반박하든 찬성하든, 논파하든 말든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경제에 관련한 문제에서는, 예를 들어 법인세를 늘렸을 때 경제가 살아날 것인가 위축될 것인가 하는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판단의 문제죠. 우리 기업들의 실효세율이 얼마인 것인가도 사실판단의 문제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재명 성남시장님의 자료가 옳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또 옳았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러면 우리 경제의 미래가 도저히 보이질 않거든요. 



4. 이재명

이번에도 과연 '사이다'에 어울리는 토론 내용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재명 시장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100% 옳은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재명 시장님 같은 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 lol 같은 게임을 할 때, 지금 상황이 좋다면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괜히 이상한 짓을 했다가 역전의 기회를 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불리하다면, 조금 무리수를 둬서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새로운 전략을 시도해 봐야 합니다. 무난하게 갔다간 어차피 망하니까요. 저는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최순실 게이트에 묻혀서 신문 1면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지금 우리 경제의 미래는 아주 어둡습니다. 사실 전 세계가 그렇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도 해답을 내지 못했지만, 원인 자체는 간단합니다. 세상은 점점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500년 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그 비율은 10% 미만으로 줄었습니다. 공업이나 서비스업도 예외가 아니게 될 겁니다. 수백만 명의 의사들이 단 하나의 의학 프로그램에 대체되고, 수억 명의 운전기사들이 자동운전 프로그램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겁니다. 열 사람이 필요했던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머지 아홉 명은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하죠. 실업자가 넘쳐나니 취업자의 임금도 줄어들고, 결국 구매력(=수요)이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경제가 침체되고, 공황이 찾아옵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데 기계(혹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체스, 바둑, 운전, 단순 노동, 투자 결정, 번역, 회계, 사무처리, 상담, 작곡, 설계, 기타 등등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전부요. 이건 수학적으로 증명된 내용입니다. 아직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싸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 있지만, 이 비율은 점점 줄어들 겁니다.

물론 우리 일자리가 100% 기계로 대체되기는 힘들 겁니다. 하지만 별로 위안은 되지 않습니다. 그 끔찍했다고 하는 대공황 시절에, 실업률이 30% 수준이었습니다. 보통 미래학 연구자들은 수십 년 내에 우리 일자리의 8~90% 이상이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봅니다. 정말 보수적으로 잡아서 기계가 우리 일자리의 딱 절반만 대체한다고 해 봅시다. 실업률 50%? 그렇게 되기 한참 전에 전 세계 경제가 파탄날 겁니다. 이 현상은 심심한 경제학자들의 뇌내 망상이 아니라, 실제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실업자가 10억 명을 넘었습니다. 취직을 하지 못해 억지로 더 많은 교육을 받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파트타임이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이 숫자는 훨씬 많아질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거예요. 이건 제 개인의 의견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이에요.

원인 분석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이걸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쉬운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에 그 똑똑한 경제학자들 중 누군가가 해결책을 진작에 찾아냈겠죠. 이상적으로는, 일자리가 반으로 줄어든다면 우리 중 절반만 일하면 됩니다. 나머지 반은 평생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즐기면 되요.(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3시간만 일한다거나, 하는 구상도 가능하죠.) 하지만 자유 시장 체제에서 이런 유토피아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부는 생산 수단을 가진 몇몇 독점 기업에게 집중되고,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더 많은 월급을 받기를 원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두 사람을 하루 6시간씩 고용하기보다는 한 사람을 하루 12시간씩 굴리는 것이 이득입니다. 

이재명 시장님의 비전이 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50% 이하라고 봐요.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요? 최소한 이재명 시장님의 해법이 틀렸다는 것은 5년의 기회비용을 통해 증명한 것이잖아요? 만약 이것이 해법이 아니었다고 하면 깔끔하게 버리고 다른 정책을 시행해 보면 됩니다. 이명박 정부 때가 그랬잖아요? 잘못된 방향이긴 했지만 이명박은 최소한 일관된 재벌 위주 정책,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책을 폈어요. 그리고 5년의 실패 끝에 재벌 위주의 정책은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됐죠.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보다는 500배 정도 낫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이재명 시장님의 사상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지지율로는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꼭 대통령이 되어야 그 사상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경제부총리나 장관 같은 자리도 있고, 아니면 다음 대선을 노릴 수도 있는 것이고요. 어쨌거나 공론의 장에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가 비록 당선은 되지 못했어도 시민들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 주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재명 시장님을 계기로 여기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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