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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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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리카스미
추천 : 0
조회수 : 16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4/05 20:03:12

또 하나의 태권도
제14회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 

2005년 07월 09일

2005년 7월 9일부터 15일에 걸쳐, 호주에서 제14회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가 개최된다.
1974년에 캐나다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한 후, 이번이 14번째가 된다.
일본 대표는 영국에서 열린 제4회 대회부터 참가해왔고 지금까지 3개의 금메달을 얻었다.

일류의 선수가 모이는 대회이지만, 시드니 올림픽의 동메달리스트인 오카모토 요리코 선수는 출전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태권도 소동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분도 있을까 생각하지만, 
태권도의 단체는 복싱에서 WBC와 WBA가 있는 것처럼, 크게 2개의 단체로 나누어져 있다.

올림픽의 종목이 된 것은, 세계 태권도 연맹(WTF)이라고 하는 단체의 태권도이며, 
이번에 행해지는 세계 선수권 대회는 국제 태권도 연맹(ITF)이라고 하는 다른 단체가 개최한다.

룰에 있어서도 상당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올림픽 태권도와는 다르다. 
또 하나의 태권도라고 말해도 될 정도이다.

태권도가 2개의 단체로 나누어져 다른 한쪽이 올림픽의 정식 종목이 된 이유.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다소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태권도 분열의 역사

1955년 4월 11일, 한국 육군 소장이었던 최홍희는 ,
자신이 배운 송도관 가라테에다 조선의 고무술인 택견등을 믹스하여, 새로운 무도 「태권도」를 만든다.

1955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태권도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새로운 무술이다.

1966년 국제 태권도 연맹(ITF)은 9개국의 승인을 얻어 창립.보급 활동에 힘을 쏟아, 
태권도는 세계 각지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그 당시 한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은 박정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손에 넣었지만, 한국군에서는 최홍희의 후배였다.
이 두 명의 인물에 의해 그 후 태권도는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믿을 수 없겠지만, 1960년대 당시의 한국은, 
북한에게 경제에서도, 그리고 스포츠에서도 뒤쳐져 있었다.

냉전의 시대, 스포츠가 국가의 수준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었을 때, 
한국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적었지만, (보여줄 수 있는 그)몇 안되는 경기들중에 하나가 태권도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ITF의 총재는 자신의 선배인 최홍희.
게다가 선배임과 동시에 정적이기도 했다.
한국 육군 소장이란 것은, 당시의 한국에서는 정치가와 같은 것이었다.
최홍희는 (무슨)일이 있을 때 마다 박정희와 대립한다.
두 명은 만날 때마다, 이런 회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박정희 「 이제 ITF 총재를 그만두는게 어떻겠습니까?」
최홍희 「자네는 언제 대통령을 그만둘 생각인가?」

결국 최홍희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1972년 캐나다에 망명한다.
최홍희 총재의 이동과 동시에 ITF 본부도 캐나다로 옮겼지만, 
한국 국내에는 태권도를 애호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공산주의 조직, 반국가 조직으로 여겨진 ITF 활동은 금지되었다.
그래서 1973년에 발생한 것이, 세계 태권도 연맹(WTF)이라고 하는 조직이었다.


두 단체의 특징

ITF와 WTF.1973년 당시는 거의 같은 룰이었지만, 결국 단체마다 (저마다의) 특징이 나오기 시작한다.
캐나다로 본부를 옮긴 ITF는 창시할 무렵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면서 보급 활동을 시작했다.

반대로 국가의 후원을 받은 WTF는
올림픽 종목이 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하여 보급 활동을 진행시켜 나간다.

그 보급 활동중에는 배우기 쉬움이 요구되면서 적극적으로 룰도 변경하고
안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방어구도 붙이기 시작했다.

올림픽 태권도를 보고, 「생각한 것과 다르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내 주위에 여러명 있었지만, 
아마 그들이 생각하는 태권도는, 원형에 가까운 ITF 태권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럼, ITF 태권도는 무엇일까?

태권도 시합이라고 하면 두 명의 선수가 대련하는 쿠미테만을 상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태권도의 전부가 아니다.

ITF의 대회에서는 틀(형), 파워브레이킹(격파), 스페셜 테크닉(고난이도 기술), 맞서기(쿠미테) 4 종목을 한다.
그것은 일본에서 행해지는 현단위의 대회에서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변함이 없다.

■틀
태권도의 형을 의미함
시합에서는 형의 아름다움, 격렬함, 완성도등을 서로 경쟁한다.
1대 1으로 겨루는 개인전과 다섯 명 1 팀으로 하는 단체전이 있다.

■파워브레이킹 
격파.
격판을 차는 것으로, 몇매의 판을 갈라질까를 겨룬다.
한국어로는「위력」이라고 불리고 있다.

■스페셜 테크닉
격파의 한종류지만 「파워브레이킹」과는 달리, 
몇매를 부스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격판을 가르는가?」나,
「얼마나 멀리 있는 격판을 가르는가?」를 겨룬다.
한국어로는「특기」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맞서기
쿠미테지만 이 쿠미테도 WTF와 ITF는 룰이 다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KO가 있는가 없는가」.

올림픽 태권도에서는 KO나 다운이 존재하지만 ITF 「맞서기」에는 없다.
올림픽 태권도는 방어구를 사용하여 마음껏 차고 있지만, 
ITF에서는 방어구를 사용하지 않고, 라이트 컨택트라는 하는 룰로 시합을 하고 있다.


라이트 컨택트가 태어난 이유


본래 태권도의 「맞서기」는 급소 직전에서 멈추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였다.
태권도 정신으로 힘을 측정하는데 실제로 맞혀 볼 필요는 없다.
순수한 파워를 측정하고 싶다면,「파워브레이킹」이라고 하는 경기가 있다.

다만, 글로브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로부터는 글로브의 두께 3 cm까지는 접촉되어도 문제없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시대와 함께 라이트 컨택트라고 하는 룰이 나오기 시작한다.
역시 맞히지 않고는 보고 있는 측이 알 수 없는 것이다.

라이트 컨택트라고는 해도 실제의 시합은 격렬하다.
선혈이 흩날리고 라이트 컨택트 판정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즉, 공격을 하는 쪽이 차는 것이나 찌르기를 멈추어도 
수비측이 돌진해 들어와 버리면 그것은 수비측에 기술이 인정받지 못한다.
카운터 공격이 들어가 버리면 그것은 수비측이 나쁜 것이다.
그 경우 결과적으로 KO로 시합이 끝나 버리는 일도 있다.

물론, KO의 유무 만이 아니고, 포인트의 주는 방법도 다르다.
ITF에서는 어려운 기술이 들어가면 그 만큼 높은 포인트를 얻어,
실제의 시합에서도 뛰어 차는 것이 쓸모없게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redpride/2Tox/3688?q=%B6%C7%20%C7%CF%B3%AA%C0%C7%20%C5%C2%B1%C7%B5%B5%20%C0%CF%BA%BB%20%BD%BA%C6%F7%C3%F7%20%B3%AA%B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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