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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김모군의 생존률
게시물ID : panic_920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쿵코앜우쾅
추천 : 24
조회수 : 3349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7/01/05 04:25:28

꿈을 꾸었다.

 

평소에 그다지 상상력이라고는 없는 그로서는 그렇게 생생한 꿈은 처음이었다.

 

영화처럼 스펙타클한 전개에 깨고도 심장이 두근두근할 지경이었다.

 

"이거 소설로 쓰면 대박 나는 거 아냐?"

 

김모군은 알람을 끄고 침대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꿈 속에서 그는 납치되었는데....

 

"아 뭐더라. 막 그 뭐지. 감금당하고 막 뒤통수 맞고 그랬는데 뭐더라."

 

벌써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지만 기억나는 거라곤 마지막에 자기가 목 졸려 죽었다는 것 뿐이었다.

 

, 김모군은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닫았다. 어차피 기억해봤자 그에게 소설 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뭐. 게다가 최근 들어 3줄 넘어가는 글은 대학교 과제 말고는 써본 기억도 없다.

 

수업이나 가야지,하고 일어났지만 꿈 속에서 졸린 목 근처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슬며시 소름이 돋았다.

 

---

[T기업을 분석해보면 대외적 이미지의 활용이.........]

 

지루하다. 적당히 공부해서 성적 맞춰 온 대학은 재미가 없었다


군대에 갔다 오면 하고 싶은 게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동기라곤 별로 없는 복학생이 되니 더 흥미가 떨어졌다


염불 같이 웅얼대는 교수의 강의를 듣다 보니 깜빡 졸았다.

 

", 고만 자."

 

옆자리의 공선배가 김모군의 팔뚝을 툭툭 쳤다. 김모군은 잠에 덜 깨 인상을 썼다. 이새끼 왜 갑자기 반말하지?

 

"교수님이 너 보잖아 임마."

 

교수라니 회사에서 무슨........하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 짧은 사이에 자다가 꿈까지 꾼 모양이다. 꿈속에서 그는 회사원이었고 공선배는 회사후배였다. 떨떠름하게 몸을 일으켜 수업을 듣는 척 했지만 수업 내용이 들어올 리 없었다.

 

 

---

"... 족같네 진짜."

 

김모군은 하루종일 공선배가 신경 쓰여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쁘다고 둘러대고 집에 왔다. 꿈 속에서 공선배가 자신을 무참하게 돌로 찍어 죽이던 모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꿈에서 으깨졌던 이마를 쓸어보았다.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감각이 선명했는데 아무 흔적도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느낌이었다.

 

김모군은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아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웹서핑하며 버텼지만 결국 새벽 즈음에 골아 떨어졌다.

 

또 꿈을 꿨다.

꿈 속에서 그는 또 죽었다.

 

자살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 임모씨가 죽고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아직도 귓가에 그 수근거림이 들리는 것 같아 울컥했지만 어쨌든 꿈은 꿈. 학교는 가야했다. 일단 샤워부터 하려고 샤워기를 틀자,

 

", 쿨럭 쿨럭...... 우웩"

 

자신이 강에 몸을 던졌을 때의 충격과 폐로 흘러 들어간 차가운 물이 떠올라 그만 토하고 말았다. 결국 샤워는 포기하고 학교로 향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강의실에 들어선 그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게 누군지 확인한 순간 김모군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여보......? 여보 맞아?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김모군이 그렇게 애틋하게 그리던 죽은 아내가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울컥하는 마음에 아내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짜증과 당황이 스쳤다.

 

"뭐야 왜이래. 미쳤어?? 아는 척 하지 말자니까."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기들이 수근거렸고, 그제서야 김모군은 정신이 들었다. 이 애는 내가 군대갈 때 나를 찬 전여친이었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좋게 헤어진 사이도 아닌데.

 

", ...미안....."

 

주변의 수근거림이 꿈에서 들었던 비난소리와 겹쳐지며 견딜 수 없었던 김모군은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 

수업도 다 빼먹고 집에 틀어박힌 김모군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정신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나? 정신병이라는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발병하는 거였나? 이건 꿈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라면 쌩쌩할 초저녁부터 잠이 몰아쳤다. 다시 잠들어서 꿈꾸는 게 무서웠던 그는 애써 잠을 깨보려 레*불을 들이키고 뺨도 때려보고 제자리 뛰기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끄으으..... 싫어.... 자기 싫은데......."

 

잠들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무색하게 결국 잠들고 말았다.

 

또 잠들었고

또 꿈을 꾸었고

또 죽었다.

 

이번엔 낯선 곳에 갇혀있었다.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그런데 죽어도 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머리가 터져 시체가 되었지만 그래도 꿈 속이었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체온이 식어가는 게 느껴졌지만 깨지 못했다.

 

같이 갇힌 사람들이 자신의 시체를 보고 놀라는 목소리, 서로 싸우는 소리, 또 다른 누군가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래도 깨지 못했다.

 

터진 머리통에서 흘러나온 뇌수가 말라 붙는 끔찍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간신히 현실의 김모군의 눈이 떠졌다.

 

현실 맞나?

 

김모군은 온 몸을 떨며 토하고 울고 비명을 질렀지만 죽음의 감각은 여전히 선명했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을 열자 몇 개의 카톡이 와 있었다.

 

- 뭐야 왜 수업 안들어옴?

- 아들~ 전화 안받네~ 밥은 챙겨먹고 다녀?

-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얘는 내 동기, 이건 엄마...인가. 얘는 군대 후임....아닌가.... 이자식은 회사 후ㅂ.... 아니 학교 선배."

 

누구한테라도 연락하고 싶었지만 이름을 보면 꿈속에서 나온 인물하고 자꾸 헷갈려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 중 몇몇은 꿈속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

 

처음엔 희미하게 기억하던 꿈이 이젠 현실보다 더 생생해져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결국 망설이던 김모군은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시발. 도와줘...... "

 

악마같은 잠이 또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시간을 잔걸까. 차고 넘치게 잔 거 같은데 마치 일주일 동안 한숨도 못 잔 것처럼 견딜 수 없이 졸렸다.

 

꿈 속에서 끝없이 죽고 다시 깨어나고 또 잠들고를 반복하던 그는 이변을 깨달았다.

 

꿈은 꿀수록 점점 길어졌다. 꿈에서 죽으면 깨어난다고 누가 그랬지?

 

꿈에서 죽어도 깨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체에 파리가 꼬이는 간지러움도 땅에 묻히는 갑갑함도 썩어 들어가는 찌릿함도 모두 생생하게 느꼈다.

 

"더 이상은 못 버텨......왜 하필 나한테......"

 

몇 번째인지 모를 꿈에서 깨어난 김모군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 징조도 없이 갑자기 생긴 일이었다. 왜 이런 꿈을 꾸는지 김모군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만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의 죽음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수도 없이 죽는 모습을 되풀이 할 리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모군은 수많은 시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은근한 기대와 호기심을 담은 시선.

 

"시발. 트루먼쇼도 아니고."

 

옷장에 노끈을 맨 김모군은 거기에 목을 걸며 혼잣말을 했다.

 

"니들이 바라는 대로 죽어줄게. 망할 놈들아."

 

아니,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들에게 말했다.

 

 

 

 

김남우는 몇 번째인지 모를 죽음을 처음으로 맞이했다.

출처 일종의 팬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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