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그냥 산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럴거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지나가는 사람의 옷깃이나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거나,
내 앞차 뒷유리에 붙은 리본을 보거나 할때 뿐 평소에는 그 기억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나 뿐만 아니라 세월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럴거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그래야만 살아 지니까.
그날 티비에서 봤던 그 파랗고 동그란 배의 밑바닥이, 그 유가족들의 절규가,
나 혼자 골방에서 울던 울음이 망각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얼마나 지옥일 것인가.
다행히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차츰차츰 나아졌고, 지금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지난 토요일 처음으로 정부합동분향소를 다녀왔다.
시위다 뭐다 세월호 관련된 일엔 참 많이 다녔는데도 분향소는 가지 않았다.
무서웠다. 사진으로 본 분향소는, 304개의 영정이 모셔진 분향소에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1000일이 다 되어서야 이제야 괜찮겠지 싶어서 처음으로 분향소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매우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사진들, 영정사진들이 순식간에
2014년 4월 16일을 데려왔다. 망각의 늪으로 빠져있던 그 날을 눈앞에서 다시 보았다.
저게, 저 사진들이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났다니.
1000일이 지났는데도 저 사진들 앞에서 책임은 커녕 너희들이 왜 죽었는지, 누가 너희를 죽게 했는지조차 말할 수 없었다.
생생한 그날의 슬픔과 절망감으로, 그보다 더 큰 분노로 한켠에서 끅끅 울고 있었다.
1000일. 나는 어찌되었든 내 삶을 산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겠지. 그러나 망각을 멈춘 사람들이 있다.
1000일동안 망각되지 않는 기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1000일을 그 지옥에서, 1000일이 지나도록 세상을 떠난 자식에게 너희가 왜 죽었으며 누가 죽였는지조차
말해 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1000일이 어떠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어떤 기분일까. 어떻게 살았을까. 다만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도 망각이 시작 될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들의 자식은 왜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고, 누가 아이들의 생을 마감하게 만들었는지,
왜 그 아이들이어야 했으며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 아이들의 영정 앞에 꿇어앉아 피 토하듯 이야기 하고, 그 책임을 그 무엇보다도 엄중히 묻고 죄값 넉넉히 물려
조금의 여한도 없을때, 그때. 유가족들의 망각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씩이나마 시작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