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무식을 드러내는 주류사학계의 한계..
게시물ID : docu_13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玄朝..
추천 : 3/6
조회수 : 24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20 22:10:50

[[ 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長城起於此山。今驗長城東截遼水而入高麗,遺址猶存。按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則高麗中為左碣石。
갈석산은 한 낙랑군 수성현에 있으며 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된다. 지금 장성의 동쪽 끝은 요수를 넘어 고구려로 들어가는데, 그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상서에 전하는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우갈석은 황하 너머 바다 근처에 있는데 지금의 북평군 남쪽 이십여리 지점이므로 고려에 있는 것은 좌갈석이 된다.

재야사가들은 절대 쳐다보지도 않는 구절이죠. 이 부분은 고고학적 자료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야사가들은 평양에서 나오는 낙랑 유적을 무시하는 것과 같이 장성 유적도 무시하고 있죠. 유적과 문헌이 대립해도 유적이 이길 것인데, 유적과 문헌이 일치하는 것을 무시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 초록불이 재야사가들의 주장을 반박한 내용 중 일부..

▷ 초록불이 그럴싸한 반박을 늘어놓았으나, 불행하게도 현 한반도(韓半島) 북부에 위치할 수 없는 지형적 모순을 저지르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하고 있다..

▶ 이제 내가 역반론을 하자면.. " 재금북평군남이십여리, 경고려중위재갈석(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 則高麗中為左碣石).. " 핵심 문장을 살펴보면, " 지금의 북평군 남쪽 이십여리에 위치하고, 고구려 가운데에 있는 곳은 좌갈석이다.. "라고 번역되어 있다..

▷ 엄격한 기록 중심의 관점 하에서 북평군(北平郡)의 실제 위치를 추적해보면..
" 진한지진(秦漢至晉), 개위북평군지(皆為北平郡地).. 후위시개속어양군(後魏始改屬漁陽郡).. 수개황육년(隋開皇六年), 사치현주치무종徙置玄州治無終), 즉후위안주야(即後魏安州也).. 후주개위현주(後周改為玄州), 개치밀운군(皆治密雲郡).. " 기록을 근거로 들어서 간단히 요약하자면, " 북평군(北平郡)은 후위(魏始) 당시 어양군(漁陽郡)으로 고쳤다가, 후주(後周) 당시 밀운군(密雲郡)으로 고쳤다는 곳"이므로.. 현재 통념(주류사학계)의  위치대로 찾아본다면.. 그 곳은 현 하북성(河北省)의 북경(北京) 인근 북쪽에 실존하는 지명이다..

▶ 따라서, 초록불의 반박은 지리를 모르는 저능아가 반박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기록에 따른 지리학적으로서 엄격히 찾아야 하는 상식에 따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 현 하북성(河北省) 북부의 어양(漁陽)에서 남쪽으로 내리 위치하는 곳은 좌갈석산(左碣石山 : 동쪽의 갈석산)이기 때문에.. 실제로 현 하북성(河北省) 중부의 북경(北京 : 베이징)은 고려(高麗 : 고구려)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곳이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