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정리 중, 세월호 사고 후 구조 이후 인양방법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 관련 노트가 있었네요.
공문은 어느 부처에서 발신되었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해경측에서 발송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으로는 어떠한 회의문건도 사전 공유되지 않았었고 참석자 역시 모르는 상황이었으므로 현장에서 회의실 내 명패를 보고 노트에 받아적었던 것 같습니다.
해경 : 중앙구조본부장 치안총감 김석균(해경청장), 경비안전국장 치안감 이춘재, 수색구조과장 박종철 총경, 해경청 정보수사국장 이용욱
해군: 3함대 사령관 (이XX 소장), 해본 군수부장 (손XX 소장), 해본 인사참모부장 (김XX 소장)
구난업체: 언딘 (김윤상 대표이사, 장병수 이사), 살코 (김XX)
KR(한국선급): 기술지원본부 김XX 본부장
조선업체: 현대/삼성/대우 사장급
회의 문두에 분명히 현 시점에는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으나 이후 인양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얘기했었던 것 같습니다.
언딘측의 PT가 약 35분정도 이어졌다고 기록했었네요.
세가지 안이 제시되었었는데 A안은 8,000톤/3,600톤 급 해상 크레인으로 선수,선미를 들어올리는 방안이었고,
B안은 선체 좌우현에 각 16개 파공을 하여 체인으로 양쪽에서 끌어 당겨 올리는 (?) 방법이었습니다.
C안은 방법을 노트에 자세히는 기재 못하고 한달 중 14일 만 가능하며 140일이 걸린다고 기록한 흔적이 있습니다.
언딘 측 발표 이후, 해본 인참부장이 크레인 Capa. 계산/ 선체 턴오버 관련 준비사항 등에 관련하여 한 10여 분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조선업체/KR 등에서 짧은 의견들이 있었고 16:07 경 해경 청장이 '주말 전에는 안을 도출하고 차주부터는 인양 착수가 가능토록 관계기관에 최대한 협조를 부탁한다"고 마무리 발언을 하고 인참부장과 함께 16:10 경 먼저 이석합니다.
당시 접하던 소식은 언론에 의한 보도가 전부였으므로, 저 역시도 해군/해경이 총력을 다했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봤다는거지라는 의문이 컸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회의 당일 언딘 측의 PT는 제가 느끼기로는 상당히 진정성이 있고 구체적이었습니다.
반면 해경청장은 무언가 본인이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인가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좌불안석인 표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특이점으로 기록해둔 사항은 미 해군 장교 관련 사항이었습니다.
당시 회의에 낯선 푸른 전투복의 장교 한명이 참석 했었습니다.
NWU라고 불리는 미해군 전용 전투복이었기때문에 단연 회의실 내에서 튀는 복장이라 기억합니다.
계급장과 명찰을 보고 LTCDR S******이라고 적어뒀습니다.
한 시간 넘는 회의동안 통역장교를 통해 회의를 경청하고 있었고 15:50 경 짧게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자세한 기술용어가 나와서 제대로 적어두질 못했는데 'power buckling 54,000t need' 라고 적어놓은걸 봐서 인양과 관련한 Salvage 관련 실무자로써 본인의 견해를 밝혔던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 느꼈던 점은 장교의 표정이었습니다.
주관적인 느낌이었지만 당시 참석자들의 표정은 크게 몇가지로 나뉘었던 것 같습니다.
답답/지친 표정 (해경), 심각/신중한 표정 (해군, 언딘), 사태의 심각성은 알지만 왜 여기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 (선급, 조선업체)..
그리고 뾰루퉁한 표정의 미해군 소령.
아무리 천조국 해군이라한들 우방국 장성들 사이에 앉아있으면 경직되고 긴장한 모습일 줄 알았는데 회의 내내 뭔가 불만스러웠던 표정이었던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에 세월X를 보고 이 다이어리의 메모가 생각나서 훑어보다가 여기에 조심스레 남겨봅니다.
회의의 분위기, 참석자의 표정이라는게 다분히 제 주관적인 느낌이다보니 괜한 부스러기를 남겨놓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제 스스로가 세월호 관련 특조자료 등 다른 모든 자료를 열람해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이 또다른 의혹을 증폭시키게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앞서지만
관련된 모든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글을 남깁니다.
항상 기억하고 잊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