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망의 해, 2017년.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한국 사회는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한겨레21>은 2017년 대통령선거를 맞아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낼 정책으로 ‘기본소득’에 주목했다.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리서치뷰)과 함께 일반인을 대상으로 주요 정치 현안과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공공의 창’에는 정치사회 여론조사와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해온 중소 기관 10여 곳이 참여하고 있다. 일반 국민 가운데 절반인 49.3%가 ‘기본소득제 도입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선 주자들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이미 ‘기본소득’ 논쟁에 뛰어들었다. <한겨레21>은 대선 주자 8명에게 설문조사를 벌여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조사 결과, 대선 주자 8명 중 7명이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제를 단계별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기본소득제는 이제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설문조사의 단답으로는 알 수 없는 대선 주자별 구체적인 방향은 정책 담당자에게 추가 취재했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구상하는 복지정책의 기본 얼개를 처음으로 밝힌다.
2017, ×망한다 상: 절망과 희망 사이, 청년
하: 희망의 최저선, 기본소득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문재인ㆍ이재명ㆍ안철수ㆍ안희정ㆍ심상정ㆍ유승민ㆍ손학규ㆍ박원순(호칭 생략). 한겨레 가까워오는 대선을 앞두고 복지정책 논의가 불붙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복지정책의 화두는 단연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의 기초적 정의는 이렇다. ‘심사 절차와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모든 이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 그렇다면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는 대선 주자가 당선될 경우, 모든 국민이 매월 일정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 정의에 담긴 내용을 꼭 지켜야만 ‘기본소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모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거의 모든 사회보장급여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완전기본소득, 둘째 사회보험에 기반한 보장급여를 제외한 대부분의 급여를 대체하는 부분기본소득, 셋째 일정 소득 이하 가구에 대해 기존 조세체계를 활용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부의 소득세 등이다.(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제1148호)
유럽 최초로 올해부터 ‘기본소득제’ 실험을 시작한 핀란드도 둘째 모델인 부분기본소득제 방식을 택했다. 복지수당을 받는 실업자 가운데 무작위로 2천 명을 뽑아 향후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1만원)를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한다.
한국의 대선 주자들이 내놓는 기본소득 방안은 둘째와 셋째 모델에 가깝다. 현재 복지정책의 큰 틀은 남겨둔 채 기본소득 개념에 맞게 조금씩 제도를 수정해 복지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는 방식으로 정책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겨레21>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유승민 개혁보수신당(가칭) 의원,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대선 주자 8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설문조사를 벌였다.
전원 ‘기본소득제 정치·경제 불평등 해결에 도움’
이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를 제외한 6명이 답을 보내왔다. 문 전 대표는 “아직 복지정책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찬반 형태로 설문조사에 응하기 곤란하다”며 답변 대신 기본소득에 대한 간략한 의견서를 보내왔다. 안 전 대표는 모든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는 것이 내부 방침이란 뜻을 전해왔다. 두 대선 주자의 복지정책은 각 정책 담당자를 취재해 내용을 보완했다.
조사 결과, 8명 전원이 ‘정치·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본소득제가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복지 환경을 고려했을 때 당장 기본소득제 도입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엇갈렸다. 8명 가운데 안희정 지사를 제외한 7명이 ‘기본소득의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7명 가운데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기본소득’이란 용어를 직접 쓰지는 않고, ‘기본소득의 취지를 살린 각종 수당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기본소득제 도입 자체에는 찬성했다. 그러나 “장기적 시각에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해야 하며 기존 복지제도를 전면 개편한다는 전제하에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이런 의견 차이는 한국의 사회복지제도가 부분기본소득제를 거쳐 결과적으로 현금지급형 완전기본소득제로 전면 대체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맞닿아 있다. 진보 진영 일부에선 기존 사회복지 체제를 완전히 없앨 경우 복지 자체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 도입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도 복지 후퇴 우려 때문이었다. 기본소득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 세력의 주장과도 맞닿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안희정 지사가 기본소득제 ‘당장 도입’에 반대하는 것도 기존 복지마저 후퇴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다른 주자들의 경우, 일단 기존 사회복지 체제 안에서 단계적으로 부분기본소득제를 실시해나간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완전기본소득제로 전환할지는 추후에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반 국민들은 기본소득제 도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겨레21>과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리서치뷰)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절반인 49.3%가 기본소득제 도입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42.2%였다.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 후보를 지지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9.3%가 ‘있다’고 대답해, ‘없다’ 50.7%와 오차범위 안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이는 지난해 7월 조사 결과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6년 7월2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기본소득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75.3%에 달했다. ‘찬성한다’는 20.6%에 그쳤다. 이 조사가 이뤄진 뒤 몇 개월 동안 대선 주자들은 앞다퉈 기본소득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이번 조사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일반인의 지지가 크게 오른 것은 대선 주자들의 정책 방향이 국민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민들도 기본소득에 한발씩 다가가는 중인 것이다.
(*설문에 응답하지 않은 문재인·안철수를 따로 취재한 결과 이들은 ‘기본소득’이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기본소득의 취지에 맞는 복지수당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힘. 이를 큰 틀에서의 기본소득으로 분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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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 기본소득 설문조사
조사대상 만 19살 이상 1042명
조사방식 ARS RDD(임의걸기 방식) 휴대전화 조사
조사기간 2016년 12월22~23일
조사기관 한겨레21·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리서치뷰)
신뢰도 95% 신뢰수준에서 ±3.0%포인트
단위 %
*대선 후보 6위부터는 표본 수가 적어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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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보다 일반인 기본소득 지지도 높아져
대선 주자 8명 가운데 7명이 기본소득제 부분 도입 의사를 밝혔지만 이들 7명은 각자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부분기본소득제 도입안을 준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변형된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혹은 기본소득 개념을 기존 사회복지 제도에 여기저기 끼워 맞추다보면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선에서의 이런 논의 자체가 한국 복지 체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는 “기본소득은 잘하면 상당히 긍정적일 수 있고 정교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기본소득제 방안은 (부작용을 우려할 만큼) 그렇게 파격적이지 않다. 대선에서 이 정도로 논의되는 것이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은 도입되지 못하더라도 그 디딤돌은 충분히 만들어지는 일종의 ‘학습효과’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 주자별 기본소득 정책을 보면, 기본소득 개념을 어느 선까지 가져오느냐에 따라 각각의 정책이 달랐다. 그러나 큰 틀에서 아동·노인·청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이 우선 도입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문재인 전 대표 쪽은 현재 마련 중인 복지정책에 대해 “기본소득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주어진 재정 여건 속에 기본소득의 취지를 최대한 살린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큰 틀에서 0~6살 대상 아동수당과 미취업 청년 대상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는 방안을 만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 전 대표의 복지정책을 담당하는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만 5~6살까지 모든 아동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형식이 될 것 같다. 다만 첫째와 둘째, 세째 자녀의 경우 수당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는 쪽으로 아동수당의 목적을 정하고 그에 맞는 안을 짜는 것에 대략 합의를 이뤄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의 경우, 취업능력 개발 쪽으로 목적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김 교수는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등 보편성을 최대한 살리되 취업능력 개발 쪽에 포커스를 두고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30만원 정도의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노인수당은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20만원을 지급하는 현행 노령기초연금을 확대해 소득 하위 80%에 30만원을 지급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김 교수는 “기본소득의 핵심 취지 가운데 하나인 보편성을 재원 조달 가능성을 고려해 최대한 확장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공약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표 쪽은 이 정책에 ‘기본소득’이란 용어를 쓸지 말지 내부적으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정책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기본소득이란 이름을 쓸지 지금 단계에선 말할 수 없다. 기본소득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부터 천차만별이다. 세부 내용을 정확히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본소득이다, 아니다’라고 얘기했을 때 불러올 오해가 상당하다.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이 고민에는 여러 내용이 담겨 있다. 먼저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후발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기본소득’ 용어를 통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이를 뒤따라가는 모양새로 비치는 것에 대한 전략적인 고민이다. 또 기본소득이 포퓰리즘이라는 공격에 대한 부담감,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기존 복지 체제와의 관계 설정, 현실적 재원 마련 방안 등 고민도 엿보인다.
‘기본소득’ 명명의 정치학
2016년 3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기본소득 총선 의제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소득과 관련해 여러 후보 쪽에 자문을 해주는 한 학자는 “(문 전 대표 쪽에서) 재정 문제를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적극적으로 증세를 하자고 주장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한겨레21·공공의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 문재인 지지층에서 기본소득 공감률이 높다. ‘차기 대통령으로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밝힌 이들 가운데 54%가 기본소득제 공약을 내건 대선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대선 주자 지지율 3위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본소득제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을 통해 기본소득제를 실행에 옮기는 등 기본소득을 적극 ‘브랜드화’하고 있다.
그는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 대표 다니엘 라벤토스가 쓴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를 공동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밝힌 이들 가운데 58.5%가 기본소득제 공약을 내건 대선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은 그의 기본소득 ‘브랜드화’가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시장은 기본소득 개념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한겨레21>의 요청에 “재산, 소득, 취업 등과 관계없이 일정 세대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조건 없는 소득을 의미하며 조세 환급이란 측면에서 국민이 가져야 할 권리”라고 답했다. 다른 대선 주자들이 대안적 제도로서 기본소득을 언급한 것과 달리 ‘당연한 권리’로서 기본소득을 강조한 것이다.
이 시장은 1월3일 열린 ‘민생타운홀 미팅’에서 기본소득제 도입 방안을 좀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기본소득 정책으로 대전환이 이뤄져야 할 시기다. 청년배당, 기초연금 강화, 아동수당 지급, 자영업자 복지 확대 등 전 계층을 대상으로 생애 전 과정에서 복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계층에 대해서는 현재 성남시에서 시행하는 청년배당제도를 확대해 전국 청년을 대상으로 전면화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노인층의 경우 현행 기초노령연금 금액을 30만원으로 늘리고, 현행 가정양육수당, 보육비 지원, 누리과정을 아동 기본소득으로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장애인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구상도 밝혔다.
특히 이 시장은 재원 마련에 자신감을 보였다. “단계별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데 20조원도 안 든다. 성남시정을 해본 경험치로 정부 예산을 조정해 30조원 정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적극적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후발 대선 주자로서 ‘포퓰리즘’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금지급성 복지정책을 통해 지지율 상승을 꾀하는 정치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제 도입을 포퓰리즘으로 모는 것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을 만드는 데 관여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현금지급성 복지가 매우 적다. 이 정도 현금지급은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포퓰리즘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을 말하지 않나? 기본소득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이재명·박원순 “기본소득, 지킬 수 있는 공약”
가장 구체적인 기본소득제 도입 방안을 내놓은 대선 주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2016년 12월21일 국회 토론회에서 ‘한국형 기본소득제’라는 이름의 기본소득제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아동, 청년, 노인 외에 중·장년층을 위한 기본소득 방안이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박 시장의 기본소득 정책을 담당하는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교수가 작성한 ‘한국형 기본소득’ 구상 자료를 보면, 중·장년층을 위해 실업부조와 상병수당, 국민소득보험을 신설하도록 돼 있다.
실업부조는 18살 이상 국민 가운데 24개월 이상 장기 실직자를 대상으로 월 3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주는 것이다. 상병수당은 각종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질병으로 인해 3개월 이상 일하지 못할 경우 월 30만원의 수당을 주는 것을 말한다. 국민소득보험은 실직이나 폐업으로 소득이 급감한 이들을 대상으로 월 1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제도다.
이태수 교수는 “박 시장 아이디어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중·장년층의 급속한 소득 격감을 막는 대비책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얘기하는 대선 주자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이 내놓은 안은 중·장년층을 위한 기본소득 외에 아동수당, 청년수당, 기초연금 등 상당히 촘촘하게 짜여 있다. 아동수당은 18살 미만 아동·청소년을 둔 가구에 20만원 내외의 수당을 주는 것이다. 액수는 아동 수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청년수당은 18~30살을 대상으로 첫 직장 마련까지 2~3년 동안 연간 300만원을 지원해준다.
이태수 교수는 “대학생이나 아르바이트생도 원하면 청년수당을 받을 수 있다. 합치면 1천만원 정도 되는 돈을 인생의 출발 비용으로 쓸 수 있도록 선택의 여지를 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노인수당도 현행 20만원을 30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제안했다. 이를 위한 추가 재원은 최소 19조원에서 최대 35조원 정도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충분히 조달 가능한 규모”라고 말한다.
계층별 수당에 여러 조건이 붙은 박 시장의 기본소득제 방안을 두고 ‘보편성’을 특징으로 하는 기본소득 개념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태수 교수는 “물론 기본소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 국민에게 개인별로 최소 생활이 가능한 소득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완전기본소득제는 어느 나라도 도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지금 당장 시도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형 기본소득제는 한국의 복지 현실과 여러 사회적·경제적·재정적 환경을 고려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의당, 부유층에는 환수 모델도 검토 중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복지수당을 받는 실업자 2천 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향후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1만원)를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2017년 1월1일부터 실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EPA 연합뉴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복지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21> 취재 결과, 한국의 복지 상황에 맞춰 기본소득 취지를 살리는 방식의 복지정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내일포럼 복지정책 담당자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완전기본소득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복지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기본정신을 갖고 있다. 일종의 한국형 기본소득이다”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 쪽은 아동과 청소년,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청년의 경우 기본소득이라기보다 일자리 정책 내지는 고용 촉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일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아동이나 청소년, 노인 계층은 (기본소득 도입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위치가 애매한 안 전 대표는 복지정책 마련에 더욱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통령으로 안철수를 지지한다고 밝힌 이들 가운데 54.5%가 기본소득제 공약을 내건 대선 후보를 지지할 의향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안 전 대표 쪽은 ‘기본소득’ 대신 다른 용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016년 9월20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일찌감치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했다. 심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현행 사회복지제도의 강화와 함께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아동과 청년, 그리고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을 부분적으로 우선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아동은 0~5살부터, 청년은 19~24살부터, 그리고 65살 이상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을 1단계로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정의당은 아동·청년·노인에게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김용신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조건 없이 기본적으로 다 주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후 캐나다에서 시행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를 도입해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지급했던 부분을 환수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기본소득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 전 대표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노동에 기반한 전통적 사회복지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본소득제는 긍정적 효과를 가지고 있어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시급한 복지 수요를 생각하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아동, 노인 등 특정 계층에 먼저 도입해 효과와 문제점을 검토해보고 국민의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민·안희정 ‘도입 필요하지만 시기상조’
대선 주자 8명 가운데 유일한 보수인 유승민 의원은 앞서 설명했듯이 “기존 복지제도를 전면 개편한다는 전제 아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단계적으로 도입할 경우 미취학 아동과 노인층에 먼저 도입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본다.
유 의원은 “이미 있는 복지 체계를 어느 정도 정리한 뒤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많은 액수를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빈곤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대선 공약으로 준비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게 유 의원의 입장이다.
유 의원과 함께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 견해를 가진 김세연 개혁보수신당(가칭) 의원은 “최저 생계비가 누구에게나 보장되고 그 출발선이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괜찮은 일자리 수가 급격히 줄었는데 다수의 국민이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을 예측하고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라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치·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본소득제가 도움이 된다면서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냈다.
“기본소득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산업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거부할 수 없는 경제적 조건 속에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시기가 오지 않았다. ‘부분적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청년배당 등 현금급여성 복지정책은 노인·아동 빈곤, 장애인 등 산적한 복지 현안들과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입을 결정해야 한다.”
<한겨레21> 설문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기본소득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의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은 이미 우리 삶 속에 성큼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