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린 정은임씨 회상 글에 아주 의미심장한 댓글이 달린 것을 뒤늦게 봤습니다.
정은임아니운서 전 첨듣는 사람인데 검색해보니 멋진분이네요. 이분 죽음도 단순사고는 아닌가요?
http://m.podbbang.com/ch/1813
과거라디오 팟캐스트 들어볼려구요
젊은세대들이 어떻게하면 언론과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줏대 지키고 살수잇을까요
예술적소양이 있으시다 하셧으니 영화나 책이나 음악도 추천해주세요.
일단 정은임 누님과의 마지막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정은임씨는 제게 2개의 별명을 붙여줬었습니다.
1. 굳윌헌팅 - 저와 첨 알게 된 94년 이후 편지를 주고받다 제 이력을 관찰한 후 붙여 준 별명입니다. 그래서 정영음 들을 때 굳윌헌팅 이야기 하며 멘트 날려주면 맘속으로 황홀해 하곤 했습니다. 아마 동생분은 이 별명으로 저를 인지하고 잇을 것입니다. 제 추측에...
2. 우디앨런 - 저보고 우디앨런처럼 현실 저 너머의 무언가 잡히지 않고 그려지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기가막히게 잡아낸다며 소개해 준 감독이 바로 홍상수 였고 그래서 홍상수와는 그가 영상원 교수시절 그리고 베를린 영화제에서 몇 번 만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주연 조은숙과 김의성 (영화 부산행에서 악역 ) 보다 중간 부분에 김의성한테 담배 빌리며 빈정붙는 단역으로 나온 송강호 ( 그 당시엔 이름도 몰랐음 ) 를 가리키며 그가 대배우가 될 소질이 있다고 말햇을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그가 진짜로 스타가 되자 엄청 놀라서 감격하며 자기 동생하고 다시 연결 시켜주려 엄청 채근하더군요. 당시에 저는 여자는 유지비가 ( 데이트 비용, 품위 유지비 등 ) 많이 드는 불필요한 자동차 정도로 인식했기에 그냥 이냥저냥 이유대며 빼기 바빴는데 정은임 누님 사망 후 엄청 후회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동생 분 누님처럼 엄청 미인입니다. 송선미 플러스 성유리 중간 값 정돕니다.
정은임씨를 사랑하는 분들은 항상 "정은임씨가 살아있다면 손석희와 짝을 이뤄 최고의 언론계 투톱이 됬을 것이다 "고 말하는데 죄송하지만 제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정은임씨가 북유럽,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그랬을 것이라 당연히 생각되지만 문제는 누님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비자금 대고 은인인 대우 김우중과 대우를 잔인하게 죽이고도 추앙받는 김대중과 삼성에 나라를 팔아넘긴 노무현 그리고 전과 14범 이명박과 몇 번 대화하는 것을 보면 답 나오는 소름끼치는 정신병자 박그네를 20년간 줄창 뽑아대는 국민 수준에선 전혀 안 어울리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햇기에 그녀의 불행이 이미 예약되어졌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은임씨를 3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기적 외모와 이기적 두뇌 그리고 정반대인 이타적 심장을 가진 비 대칭적인 존재.
한국에선 이기적 외모와 이기적 두뇌를 가졌다면 반드시 이기적 심장을 장착햇어야 했는데 그녀는 올드보이의 이우진처럼 차가운 심장을 가지고 잇지 못했고 그 것이 불행을 자초햇다고 생각합니다. 정은임씨, LIG 그룹의 6명의 상속녀 ( 일명 재계의 뮤즈 ), 대우 김우중 장녀인 김선정 (김선정은 외모는 조금 딸리지만 그래도 미인 축에는 듭니다. ) 처럼 이기적 외모, 이기적 두뇌, 이타적 심장을 가진 이들은 모두 불행해 졌습니다. 한 사람은 생명을 잃었고 LIG 와 대우 김선정씨는 (김선정은 대우 패망 후 김대중과 그 패거리들이 동생의 무덤을 파헤치고 김우중 도피 후 자신들의 재산을 조풍언, 김홍걸이 도적질하고 시간하는 모습을 목도 한 후 이우진 처럼 심장을 바꿔답니다. ) 그 엄청난 가업을 잃었습니다.
이제 누님과의 마지막 만남을 공개하는데 그녀를 아끼셨던 분들은 꼭 일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누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02년 즈음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여러 일을 하며 사업을 준비 중이엇고 틈틈히 전낙원씨 일을 봐주고 있었고 당시 두둑한 봉투와 함께 여러 일을 하며 돈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정말 오랜만에 ( 아마 3년여만 ) 정은임씨한테 연락했고 언제나처럼 여의도 근방에서 만났습니다. (누님은 유명인이고 외모 또한 이기적이었기에 주목을 자주 받았기에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언제나 낯 익은 곳을 고집했습니다. ) 그리고 알게 된지 근 10년 가까이만에 처음으로 제가 한 턱 쏘기로 하고 만났습니다.
저는 들떠서 만났고 누님 역시 반가워 하며 저를 맞이해 주셨는데 한 20여 분 대화를 하자 점점 저한테 뭔가 뼈 잇는 말을 던지더군요. 처음에는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30여 분이 지나자 그것이 그 유명한 " 여자의 육감 " 이라는 것을 알게 됬습니다. 그녀는 제게서 전낙원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풍겨지는 서늘한 북풍의 숨결을 느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지저분하고 꾀죄죄하며 촌티나는 옷 차림에 씨발, 저발을 입에 달며 침 튀기면서 영화 이야기하는 저를 대할때, 항상 웃어주고 "00야, 너는 말 좀 곱게 쓰면 정말 더 멋질텐데"라며 부드럽게 타일러주면서 다독여주었는데 그 날은 저도 몰랏던 그 북풍의 냉정함과 주다스 프리스트 보컬 랩 핼포드의 면도날 같은 제 맘속의 칼날을 봤고 그때문에 저를 그렇게 대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덕분에 카페에서의 대화는 마치 무슨 무협 영화에서 고수급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가는 언어에 살수를 담아 날리듯이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저의 변화를 알아 챈 누님과 그런 누님을 눈치 챈 저는 누님을 비 현실 속에서 사는 그리스 신화속의 인물로 설정하여 아름다움과 지적 완숙미를 칭찬하는 듯이 비꼬아 언어의 변화구를 날리고 누님은 그런 저를 담담히 바라보며 영화 속 주인공 이야기를 하며 저의 낙차 큰 커브와 너클 볼을 잡아내는 노련한 포수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햇던 그리고 이상한 대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무지 싫어하는 제가 "오늘 거하게 쏠테니 어디든지 말씀만 하면 대접해드리겟다"고 하니 잠시 생각을 하던 누님은 말 없이 카페를 나섰고 (그 상황에서 계산은 또 자기가 하더군요. ) 갑자기 택시를 잡아탄 후 명동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택시 앞좌석에서 백 미러를 통해 보이는 누님은 전혀 미동도 없었고 이윽고 택시가 멈춘 곳은 명동 성당 올라가는 골목길 근처였습니다. 그리고 누님은 저를 데리고 그 골목길을 휘젓더니 낡고 오래된 "섞어찌개" 집으로 들어가시더군요. (아마 젊은 분들은 섞어찌개"가 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근사하게 스테이크 썰려고 하던 제 플랜이 이런 낡은 찌개집으로 다운그레이드 되니 좀 화도 나서 식사가 나오기 전 볼 멘 목소리로 한 마디 해도 누님은 그냥 웃으시더군요. 그래서 뭔가 궁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말 없이 찌개 국물을 떠 먹던 저를 바라보다 갑자기 누님은 제게 "00야, 섞어찌개를 보면 외관상 좀 그렇지 않니?" 라고 물었고 삐져서 대답없이 국물만 떠 먹는 제게 "그런데 잡다하게 섞인 찌개 재료가 조화롭게 하나로 합쳐지면 엄청 맛있고 감칠 맛 그윽한 요리가 되더라" 고 말한 후 그 날 거의 유일하게 웃는 낯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는 끝났고 저는 또 계산하려는 누님을 밀쳐낸 후 계산을 하고 나왔고 택시를 태워 보내드렸습니다. 이 것이 마지막 만남입니다.
제가 이 "섞어찌개"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정은임 아나운서가 돌아가신 후가 아닌 영화 "올드보이"를 2003년 개봉 전에 보고나서 입니다. 이미 그 영화의 제작 배경에 엄청난 재벌들과 최순실 집안 그리고 유명 인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나리오가 어떻게 변경되고 음악이 어떻게 선택되었는지도 세세히 알고 잇던 저는 그 영화를 보며 제가 올드보이 분석 글에 올렸듯이 자주색 ( 최태민은 민족 종교와 카톨릭과의 조화를 꿈꿨습니다. 물론 믿기지 않겠지만, 그래서 그의 염원을 그의 딸들이 K 재단 로고에 파란색과 붉은색의 조합을 통한 자주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믿기지 않죠? ) 의 현란한 컬러와 이우진이 마지막에 자살할때 사용햇던 Derringer 권총 ( 이 총은 링컨 암살범이 사용한 총이며 올드보이 제작을 주도한 통일교 후계자 문효진의 워싱턴 타임즈 본사가 위치한 동네 이름은 바로 Fort Lincoln압니다. 그리고 링컨은 좌 와 우의 조화와 균형을 꿈꾸다 살해당했습니다. ) 탄환이 이우진의 머리를 꿰둟고 지나가는 장면에서 그 날 무미 건조햇던 식사 자리에서의 멘트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누님은 제게 "00야, 너는 예전에는 열정이 앞섰지만 지금은 냉정함밖에 안보여, 나는 너한테서 자주빛 색을 보고 싶은데 지금은 전혀 볼 수 없어 " 라는 말을 한 것이라고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난 후 현실을 잘 알고있던 저는 누님의 안녕이 걱정되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더군요 마치 파스빈더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만들기 전에 만든 프롤로그 "페널티 킥을 마주한 골키퍼의 불안'에서 결국 살인과 자살로 이어지는 불안의 공포 대해 이야기 했듯이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한국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야기하고 굼꾸는 분들은 한 마디로 "불행과 재난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오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저는 정은임 누님이 이 급행열차에 스스로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올라탔고 그 조그맣고 가녀린 두 손에 꼭 쥔 티켓을 보며 이 세상에는 없고 존재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이상의 저편을 향해 지금도 나아가고 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님의 미스테리한 죽음에 대해서는 자동차 제조사인 쌍용과 보험회사, 유가족과는 별도로 제가 당시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상황에 잇으면서도 쌈짓돈을 털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물이 있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정은임씨 가족들과 연락이 되는 분들이 있으면 제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세요.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