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풍운아2: 나는 안희정의 외숙모입니다
2017.01.05
희정아 !
생각해 보니 너를 본 지도 몇 년이 된 것 같다. 집안에 일이 있어도 바쁜 너는 잠깐 들렸다 갔으니 나를 만날 기회가 어긋나서였지. 2010년 도지사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 때 참 막막했다.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신 뒤,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빈손으로 일어나려는 네가 안쓰러워 "풍운아"를 썼어. 그 글은 너를 지킨 어머니와 아내를 위한 글이었을 거야.
그러나 오늘은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서울서 나고 자랐어도 충청도 네 외삼촌을 만나 충청도에 오래 살아 나는 이미 말투도 생각도 입맛도 충청도 사람이란다. 느리고 옛날 거 좋아하고 새것에 낯선 사람들 말이야. 무관심하고 순한 것 같아도 고집을 피우면 꿈쩍도 안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런 충청도에서 생각이 앞선 젊은 네가 진보도지사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니 결국 보수로 응집된 곳에서도 품성으로 평가받는구나, 게다가 도지사 중에 가장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 참 기뻤어. 특별한 일도 없이 네가 있는 공관에 가 볼 수도 없고 바쁜 너에게 걸리적거리기만 한다고 여겨 집안 누구도, 어머님인 형님조차도 네게 발걸음 안 하시는 걸로 안다.
(그래, 그렇게 각자가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조금씩이라도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간다면, 뜻을 세우는 너를 조용히 응원할 뿐, 구태여 이런 편지 따위를 보낼 필요도 없었겠지)
요새 우리는 잔뜩 화가 나있단다. 이미 지옥으로 변한 대학입시며,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하고, 현실은 답답하고 미래는 암울하며 젊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도 중동난민에 위기를 느낀 유럽이나 이제 미국도 문을 닫으려 하지. 문명의 위대함이나 인간의 존엄성, 종교도 교육도 다 허위와 기만으로 힘을 잃은 것 같아. 어떤 시대도 인간끼리 공평한 적은 없다만 지금처럼 불공평하다는 자포자기로 만성 우울증에 걸려 헬조선이라 불리는 때가 있었을까? 한 생애를 거의 다 산 늙은 우리 탓도 있을 거야.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건 세월호 때부터였어. 그때 나는 몇 달 전 갑상선 수술을 받았는데 후유증이 심했단다. 호르몬 장애로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게 되자 결국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들어간 십 여 년의 제주도 생활을 접고 육지로 나오기를 결정했어. 그날 아침 일찍 정 나누고 살던 모슬포 해녀 친구에게 전화가 온거야. 물 때여서 바다에 들어갔는데 물살이 거세 포기하고 나왔다며 목욕탕으로 오라고 했어.
내가 떠나기 전 한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지. 바닷물은 일 년 중 사월이 가장 차가워서 읍내의 작은 목욕탕은 물질하려고 나갔다 돌아온 해녀들로 복잡했다. 옷장 옆의 낡은 텔레비전으로 누군가 세월호의 침몰을 보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어. 나는 물론 늙은 해녀들은 모두 벌거벗은 채로 나와 눈앞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재난을 생중계로 보며 넋을 잃었지. 제 이름 석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든의 해녀도 그 상황이 얼마나 이상한지 금시 알 수 있었어.
대대로 섬에 살며 고기 잡는 어부들은 매년 몇 사람씩 바다에서 수장되고 집안에 제삿날이 같은 날은 읍내가 괴괴하단다. 늙은 해녀들은 그것을 하늘이 내린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체념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도 세월호의 재난은 엄청난 충격과 의문을 갖게 했어. 여덟시 오십분부터 열두시가 넘도록 늙은 여자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벌거벗고 앉아 숨을 죽이며 가슴을 조였단다.
배가 가라앉으며 선미만 조금 남았을 때 누군가 소리쳤어. "높은 놈은 와 나왕 안 건지낭? 와 귀경만 하고 있느강? 죄를 누가 받을랑가? 저 꽃같은 거이 다 죽음시 그 한이 어디로 뻗칠랑가?" 재난을 무서워한 게 아니라 생명을 구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치솟은 거지.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살아온 섬사람들은 인간의 한계에 대해 아직도 샤머니즘에 의존하고 있어. 삶 자체가 생과 사를 넘나들어야 하는 데다 그들이 받은 무차별 학살이나 육지로부터 받은 저급한 학대를 그들끼리 위로하고 다독이며 살고 있으니까. 선과 악에 대한 논리적 구분은 없지만 죄업이 무섭다는 것을 완강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야.
"이제 나라가 망할 것이야. 꽃보다 예쁜 저 어린것들이 그냥 죽게 내버려 두었으니 그 원한이 어디로 가겠나? 뭐가 뒤집어져도 뒤집어지고 죄짓고 모른 체 하는 것들, 귀신이 머리 끄뎅이를 잡고 천길만길 숨통을 끊어 놓는다"
그 뒤로 세월호에 대한 온갖 낭설, 이상한 괴담이며 진실을 뒤엎는 또 다른 진실, 지금은 정말 원한 맺힌 귀신이 죄업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 같아 오싹 하단다. 사고로 수많은 목숨이 사라지는 재난이야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일이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세월호보다 많은데 웬 유난이 그리 심하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어.
죽은 아이들의 목숨 값 때문에 우리가 의구심을 가졌을까? 모두 각자 가슴 한구석에 죄스러움과 한스러움을 감춘 채 살고 있는 동안 세상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더구나.
우리는 늙어 옛날 노래밖에 몰라. 요새 나오는 음악은 아예 듣지도 않을 때가 많아.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요새 젊고 미남인 가수의 노래를 듣게 되었어. 이제 스물이 넘었을까 말까한 어린 가수의 애잔한 노래가 어찌나 심금을 울리는지 순간 눈시울이 울컥하더라.
좋아하는 여자애가 다른 남자에게 가버려 괴롭다는 노랫말이었어. 동서고금을 통해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가장 최고의 테마이지만 그 노래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배신의 응징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회한이었던 거야. 상실로 괴로울 때 그것을 인정하고 슬퍼하고 순서대로 내게서 보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상처가 치유된다고 생각해.
많은 시인이나, 음악 예술가들이 모두 우리에게 상실을 딛고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 나름대로 가르쳐 주고 있지. 그런데 이 땅 어디에도 슬픔을 치료할 아무런 대책이 없더구나. 집단군무의 극치인 걸그룹은 방송마다 똑같은 외모로 애교부리고, 고작 늙은 어미의 연애 후일담 따위가 마치 세기의 명작인 것처럼 광고해서 출판사는 연신 몇 십억씩 버는 거야.
가난한 시인의 비명 같은 싯구나 고통 받는 사람의 상처를 발품 팔아 찍은 사진들은 아무도 읽을 수도 볼 수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도록 누군가 만들고 있었어. 모두 잊는 척 했고 보상금이 몇 십억씩 나온다고 빈집에 소 들어가 심청애비 팔자를 바꿨다는 악담도 떠돌아 다녔지.
우선 내 새끼가 아니니까. 내 손자가 아니니까. 그런 불행이 비켜간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만 했으니까.
그러다 이번에 순실이가 유명해 지지 않았어? 손석희가 방송에서 순실이 쓰던 물건을 주워 무서운 판도라 상자를 열던 날, 나는 친구들과 감자탕을 먹는 식당에 있었는데 삼삼오오 들어오는 손님들이 마치 화병난 사람들처럼 소주를 마시며 울분을 토하더구나. 열심히 살아 제 자식 공부시키고 저만 똑똑하면 출세도 하고, 부지런하고 절약하면 구멍가게도 번듯한 백화점이 안 되라는 법이 어디 있냐고 믿는 백성들이었어.
순실이가 갖고 놀던 막대한 돈, 평범한 사람들은 헤아리기 어려워 감도 안 잡히는 그 많은 돈에 화가 나는 게 아니었어. 두 눈 멀쩡히 뜨고 사대육신이 멀쩡한 우리가 날강도를 당한 것 같은 분함 때문이었지. 어린것들이 바다에 산채로 수장 당할 때도, 메르스가 창궐하여 한 집 식구도 무서울 때, 낙타고기를 먹으면 전염된다는 코메디를 할 때도 박정희덕분에 이북 놈이 쳐들어오지 못 한 거라고, 역사를 고친다고 했을 때도 몰랐었지. 그게 능력 없고 젯밥에만 눈 어두운 도둑이어서였구나. 이제야 감이 잡힌 거야.
그날 그 큰 감자탕 집은 서로 핏대를 세워가며 목청을 돋우는 사람이 많아 마치 전쟁터 같았지. 누군가 나를 보고 "어이구 이 할머니 순실이 닮았네요"하니까 모두 나를 보며 웃더라. 얼굴이 넙죽하고 몸매가 두리둥실 목이 짧은 게 내가 생각해도 비슷했지만 얼마나 화가 나는지. "이봐요! 사람 좀 잘 보슈. 강남에서 얼굴 관리하고 수입품 옷 입고. 백만 원짜리 신발 신으면 순실이는 내 발 뒤꿈치도 못 따라 온다구, 뭘 알고 말을 해야지."
TV에선 청문회가 생중계 되지만 보는 사람도 질릴 만큼 모른다는 이야기 밖에 없구나. 나야 늙어 스마트폰 조차 전화 걸고 받기 외에 작동능력이 없지만 그 작은 기계에 마법을 부리듯 온갖 장치가 다 들어있다니 그런 기술력에 놀랄 뿐이야. 그런 세상에 어째서 동짓달 밤길 걷기로 깜깜한 거야? 안 한 살인도 한 것처럼 꾸며대기로 재주가 비상한 사람들이 어째서 그걸 못 알아내는 건지. 청문회에 나온 어떤 증인은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도 어떻게 그 큰 돈을 주물렀는지. 삼십년 산 제 마누라도 아침에 일어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게 생겼더라.
너는 어려서부터 참 씩씩했어. 운동도 잘하고 친구들도 많고 어른들께 큰소리로 시원하게 인사를 잘해 더 많은 귀여움을 받았어. 그때는 모두 군인 세상이니까 희정이는 육사를 가서 장군이 될 거라고 중학생밖에 안 되는 너를 눈 여겨 보고 있었단다. 어느 해 추석이던가. 송편을 만들며 내가 형님께 물었지
“형님 희정이 갖고 무슨 태몽을 꾸셨어요?”
나는 아들이 없어 내심 부러운 마음이 있어서였을 거야. 공부만 잘하기로야 누이나 형이 한 수 위였지만 장난꾸러기에 잘생긴 네가 더 눈에 띄였거든.
“놋그릇을 닦았다네. 방짜 놋대야였지. 꿈에서 짚에 재를 묻혀 닦으니 얼마나 광채가 나는지. 큰 대야를 닦아 가마니 위에 놓으니까 글쎄 그 옆의 작은 주발이며 대접이며 숟가락까지 번쩍번쩍 빛을 내더라구. 꿈에서 웃었어. 아이구 우리 어머님이 잘 닦았다고 칭찬하시겠구나.”
명절이나 기제사 때면 아궁이속 재를 퍼다 마당에 펴놓은 가마니 위에서 모든 놋그릇을 닦는 게 그 당시 며느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어. 형님은 부지런하고 정갈해서 꼬투리 하나 남기지 않는 분이셨지만 시집살이는 나름 매서웠었나봐. 번쩍 거리는 놋대야 태몽은 빛나는 방패를 연상시켜 우리는 네가 멋진 장군이 될 거라고 믿었지.
철물점을 해서 돈을 잘 벌었다지만 사실 연무읍내에서 시오리 떨어지고 버스도 없어 걸어 다녀야 되는 촌에서 그저 밥술이나 먹고 있었다는 게 맞는 말일거야. 소풍 때 도시락을 쌀 수 없는 빈궁한 집안이 많은 시절, 김밥을 넉넉히 싸서 보내는 형님의 후덕함 때문에 부자인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참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형님처럼 분명하고 지혜로우신 분은 참 드물단다. 네가 친구 패거리를 몰고 한밤중에 와도 부랴부랴 불 때 따슨 밥 해주고, 없는 집 애는 여퉈두었던 곶감이나 고구마 몇 개라도 챙겨주고 싫은 내색 한번 없으신 분이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지. 참고서나 학용품을 산다고 돈을 받아 이 친구 저 친구 공책도 사주고 연필도 나누었지. 철물점을 하니까 여느 농촌 집보다야 현금을 쉽게 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선생님이 어머니를 학교로 부르셨단다.
"희정이가 친구들에게 뭘 많이 사주는데 혹시 나쁜 짓을 했나 걱정이 되어서요."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딱 잘라 말씀드렸다네.
"제가 돈을 너무 많이 준 것 같습니다. 학교 끝나면 점심 굶은 친구에게 풀빵도 사주고 공책도 같이 사서 쓰라고 돈을 주었어요."
어미를 속여 이것저것 돈을 가져다 친구들에게 쓰고 다녔으면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하셨을까만 그렇게 대처하셨다니 참 대단한 분이 아니신가.
그 후로도 절대 아는 척 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주셨다는구나.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형님은 제 자식도 함부로 나무라거나 욕하지 않으셨으며 어린 아들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셨으니 지혜는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뒷날 여섯 살 막내딸이 동전 몇 개를 훔쳐 군것질 한 게 들통 났는데, 나는 아이를 흠씬 두들기고 내 쫒았어. 형님의 지혜를 따라 배우지 못한 걸 오래 부끄러워 했단다. 요새는 허리가 아파 더 작아지셨지만 한상 반듯한 가치와 혜안을 갖고 계셨어.
네가 데모꾼(?)이 되어 몇 년을 숨고 쫓기고 붙잡히고 그 모든 바라지를 했던 친구와 결혼을 먼저 하게 되었어. 질부는 도시에서 제법 사는 집 딸이었지. 어쩌다 대학에서 어린나이에 함께 공부하다 결국 평생 네 뒷바라지로 늙어간다만, 찢어지게 가난하고 전과자인 데다 돈벌이 직업도 없는 네게 시집 온 건 순전히 동지애라고 생각된다.
시집올 때, 예단 해오는 건 그때도 필수사항이어서 조촐한 한복을 입으셨지. 그 뒤 네 형이 결혼하게 되었어. 네 형이 어떤 사람이냐. 너도 알다시피 효자에 조용한 성품, 타고난 학자가 아니더냐. 서울대라는 말만 들어도 우리는 기가 죽었는데 서울대 나온 형님이 데려온 색시도 서울대를 나왔다는구나.
그런데 시어머니의 권리로 상징되는 예단을 완강히 거절하셨다. 희정이 각시가 해준 옷이 아직 새것이니 그걸 입으시겠다는 거였어. 집안 여자들은 서울대 나온 맏며느리의 예단이 어떤지 궁금했었기에 지나친 결벽이라며 삐죽거리기도 했어. 그러나 나는 속으로 존경스러웠다.
큰딸을 시집보낼 때 대전 중앙시장에서 친정엄마가 입을 만한 옷 한 벌을 해 입었어. 삼년 뒤 막내가 시집갈 때 그 한복을 입겠다니 친구들이 아우성을 치며 나를 말리는 거야. 지방시장 점포에서 해 입은 걸 삼년도 넘어 다시 입으면 친정어미 위신문제라고. 그때는 한복이 예술대우를 받고 있어 몇 백 만 원을 넘는 것도 있었어. 조금 산다하는 집 결혼식에 가면 양쪽 안사돈이 청홍촛대에 불 밝히러 나가며 조선시대 기생이나 춤꾼이 입는 화려한 열 두 폭 치마로 기 싸움을 하는 듯 했어.
신부엄마가 신부보다 화려하면 신부때깔을 죽이는 법이건만 이상한 예절이 생겨나 유행이었거든. 나는 고집을 부려 기어이 큰딸 때 입던 옷을 입었지. 나보다 더 훌륭히 아이들을 키우신 형님도, 더군다나 마땅히 받아 입어도 되는 시어머니 몫의 옷도 단호하게 거절하셨는데 잘나지도 못한 내가 체면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부인께서 그 뒤로 지금까지 내가 그날 허름한 구식을 입었다고 내 딸을 얕잡아 보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 새로 안 해 입기를 백번도 잘했다고 생각해. 지금도 그 한복은 우리 장롱 좋은 자리에서 얌전히 서 있지.
권력끼리의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고 언론의 거짓보도가 계속되자 고등학교 일 학년짜리가 대자보를 붙였어. 그 일로 학교당국이 노발대발. 늙으신 부모님이 교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이 오히려 너를 덧나게 했어. 결국 기무사가 너를 잡아다 뒤를 캤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웃고 말았다지? 사실 어린 너는 분명한 의식이나 학습도 안 된 객기였을지도 몰라.
혁신적인 선생님이 계셔서 너를 가만가만 달랬다면 그 제도 안에서 이탈하지 않고 영특하고 건강했으니까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했을 거야. 학교가 내 쫓았기에 오히려 너는 다른 재목으로 자랐던 거지. 그렇게 수재였던 너는 결국 고등학교도 대학도 졸업 못하고 장군이 되기는커녕 군대도 못 갔어. 군대보다 더 무서운 감옥에 갔으니 참 파란만장한 청춘의 시작이었다. 그건 모든 사람이 ‘예’라고 할 때 너는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야. 참 나중에 대학에서 졸업장을 주었다지? 아마.
너에 대한 기대는 데모꾼이라는 딱지와 빨갱이라는 멸시로 바뀌었다. 부모님과 형제는 모진 수모와 감시, 불이익을 받았으니까. 결국 대대로 살던 고향을 등지고 서울의 빈민가로 스며들어 참 어려운 세월을 보내셨단다. 아들이 큰 역적질을 한 것으로 알고 숨다시피 사신 분들이 너의 옥바라지를 하며 요새말로 전향을 하셨지.
형님은 아무리 어렵고 무서워도 내 아들은 도둑이 아니고 빨갱이도 아니라며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으로 꼿꼿하게 버티셨단다. 팔 십 년대에 대학을 다닌 많은 젊은이들이 불의에 항거하다 조금씩 세상의 밥벌이로 패배하듯 돌아섰지만 넌 그렇지 않았어. 네 아내는 가장이 되어 아이들을 키웠어. 언제나 감시와 협박이 끊이질 않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숙모님 저는요. 라면 세 개만 있으면, 아 오늘저녁 일단 식구 목숨은 건질 수 있겠구나. 아주 편안해 져요"
어렸을 때 신화에 나오는 영웅담을 읽고 의문을 가졌었다. 악으로 상징되는 괴물은 늘 사람을 괴롭히고 처치하려면 힘과 지혜를 연마하여 괴물과 싸워야 돼. 신들은 영웅에게 보통의 인간과 다르게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게 하거나 그에게 괴물을 이길 수 있는 어려가지 마법의 돌이나 칼, 동전 몇 개를 주며 그를 후원 하는 거야. 그렇게 이길 방법을 마련해 주려면 처음부터 다 해주지 꼭 마지막까지 고생하게 만들까, 그게 의문이었던 거지.
더 많이 산 다음 깨달았단다. 누구나 자식만큼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을 피해 이미 가치 있는 세계, 그러니까 안전지대에서 살기를 바라잖아. 그러나 삶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 탐구가 귀중하고 필요하다는 것. 육 년에서 많게는 삼십 년을 기다려야 땅속에서 나와 매미가 되고 나비 한 마리도 배추벌레가 허물을 벗어야 되는 과정이 있듯이 구도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누구도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다는 거야.
슈퍼 히어로도 결국 제힘으로 걸어 저만의 특별한 인내와 용기를 내야만 완성된다는 진리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대의명분을 갖으며 고통을 견디는 용기를 제 스스로 창조해 이타적 행위를 한 사람이 영웅이더구나. 결국 희생만이 구원하게 되는 방법이었던 거야.
출사표는 던져졌다.
신문을 뒤적거리다 알게 되었어. 순간, 가슴이 찌르르 아팠다. 이제 또 얼마나 많은 시련이 닥칠 것인가.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또 얼마나 가슴조이며 숨통을 이어가실까. 좁아터진 땅 덩어리에 온갖 위험과 재난이 도처에 산재 하고, 아무리 일하고 또 해도 부잣집 종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계급. 여기 저기 이웃나라는 우리를 얕잡아 깔보며 제 잇속 차리기가 바쁘며, 우리와 형제인 성질 사나운 아우는 북쪽에서 화약을 짊어지고 너 죽고 나죽자 으르렁대고, 어쩌까나.
일 좀 하라고 높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끼리끼리 훔치고 빼앗아 지들 몇 대가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려고 여기저기 감춰두고, 불쌍한 백성만 빚더미에 앉아 그 돈을 대대로 갚아야 되니 내게도 움켜쥘 게 있다면 어디 다른 곳으로 도망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양떼를 몰던가, 몰디브 가서 모히또 한 잔 마시며 살고 싶구나.
나는 배운 것도 없을 뿐더러 넉넉지 않은 살림에 평생 밥하고 빨래나 청소하고 살았다. 지금은 제 밥벌이에 뛰어다니는 자식들 손주 뒷배나 봐주고 세월을 죽이고 있어. 한의원으로 침 맞으러 다니는 게 중요한 일과야. 거기 가면 늙은이들이 옹기종기 누워 침 맞고 물리치료하며 자식새끼 손자새끼 이야기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단다.
요새는 모두 싸잡아 욕 하느라 바빠.
"누가 찍었어? 엉? 어떤 인간이 찍어서 나라가 요 모양이야? 아이구 내 손목이 똑 부러지겄어, 나도 찍었으니까"
서로 낄낄 웃기도 하지.
"서방 없구 자식 없으니 제 한 몸 나라 위해 바친다더니 식모 년까지 도라꾸(트럭)로 돈을 실어내게 해? 눈 뜬 장님을 몰라봤으니 내 눈이 벼엉신이다."
이런 한탄들을 많이 한단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있어.
"뭔 소리여? 어머니 아부지를 원통하게 잃고 얼마나 불쌍한 사람야? 누구 덕에 요만큼이라도 잘 먹는데. 옛날 못살던 때를 다 잊었어? 식모를 잘 못 둬서 그렇지. 왜 어때서? 요새는 사내들도 성형수술을 한다는데 그게 뭐가 어때서? 세월혼가 네월혼가 거기 탄 죽은 애덜 부모는 공장 다니며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다 몇 십억씩 받아 팔자를 다 고쳤다구, 그 돈은 다 우리 세금 아니야? 나는 다시 찍으래도 꼭 그 공주님 찍는다."
이런 불쌍한 백성을 위해 뭘 하려구?
어느 교회 목사님 말씀이다. 어느 교수님 주장이다. 라면서 핸드폰으로 문자들이 쏟아진단다. 세월호에는 브로커들이 숨어들어 부모를 부추긴다느니 이번 최순실 사건은 북한 간첩이 대통령 하야를 시키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느니, 교회 다니는 늙은이는 목사님 말씀이라고 믿고. 유식하다는 늙은이는 교수님 말씀이라고 믿으며 우긴단다.
성탄을 앞두고는 이런 문자가 단체로 왔어.
"구세군 냄비에 자선기금 넣지 마셔요."
냄비 밑바닥이 이중이라나? 만 원짜리만 이중바닥으로 내려앉게 만들었다며 냄비 속 그림까지 그려 놨더라니까. 나야 성탄에 선행하는 착한 늙은이도 아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어. 굳이 그렇게까지 염장질을 하는 인간은 도대체 누굴까? 그것도 우리백성일거 아니겠어?
무너지려고 기우뚱하는 집을 붙들기가 새로 짓는 것보다 더 많이 힘든 법이야. 이제 너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모함과 음해가 난무할까? 어디 숨기거나 내 놓거나 원래 돈은 없으니까 뒤져도 먼지밖에 안 나올 거, 그건 걱정 안 해. 알고 보니 네가 어려서부터 북에서 보내 입양된 아들이라거나, 이 편지를 쓴 내가 돈을 얼마 받기로 했다던가.
나중에 최순실이처럼 청와대 식모살이 자리를 약속받았다던가, 아마 기상천외한 말들이 쏟아질 거야. 하필이면 생긴 게 비슷해 신경 쓰인다. 하하.
눈물이 나와야 되는데 웃음이 다 나오네. 형님도 나도 한세상 다 살았다. 더도 덜도 말고 죽을 때 아파서 자식 괴롭히지 않고 가는 게 소원이란다. 애들 크는 재미로 그냥 저냥 살다 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우뚱거리니 자칫하다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겁부터 난다.
안다, 나도 알아. 누군가는 이걸 바로 잡아야 한다는 거. 나는 죽으면 되지만 우리 열 살짜리 손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나? 미리 감춰둔 돈은커녕 이 십 여 평 아파트도 대출 빼면 남는 게 없어 물려 줄 것이 전혀 없는데. 공부 잘 해 서울대만 가면 높은 자리에 앉아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건만 이제는 취직도 안 된다며?
더군다나 해외 나가 영어배우고 비싼 학원 안 다니면 이미 중학교 때부터 서울대 가기는 애저녁에 틀렸다는 구나. 먼 훗날 내 손자가 뼈 빠지게 일해도 겨우 풀칠할 임금이나 받고 그것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따지면 방망이로 두들겨 맞거나 발길로 차인다면 저세상에서 얼마나 원통 할 것인가?
살아서 도둑놈 뿌리를 뽑는데 터럭 하나라도 보탰어야지. 그놈이 그놈, 몇 십 년 울궈먹은 뼈다귀조차 또 울궈먹으려 속이고 죽이고 가두는 세상을 못 본 척 살다 왔다고 저승이 찌렁찌렁 울어댈 것이다. 여기저기 터지고 무너지고 그걸 통제하고 수리할 사람이 그 돈 빼돌려 달아나고 붙잡으면 또 모른다고 하겠지.
땅은 죽고 숨 쉴 공기는 탁하고 마실 물조차 더럽고 딸들은 유린, 폭행당하고 아들들은 노예가 되는 세상. 지금 자꾸 그길로 가고 있는 거 아니겠어? 조선말, 공자 왈 맹자 왈 당파싸움이나 하고 백성들 주리를 틀어 권세가들이 주지육림에 빠진 사이 쇠잔한 나라의 그나마 숨통을 딱 끊게 만든 간신무리들이 이 백성을 얼마나 짐승처럼 울부짖게 했는가, 우리 다 알고 있지 않아?
희정아!
너는 이미 열 몇 살 때부터 제 몫보다 남의 몫을 챙기려 들었어. 네가 존경하고 너와 함께 올바른 나라를 만들려고 애쓰던 분이, 젊은 힘들이 밤사이 뒤집어 기적처럼 청와대에 입성 하셨을 때도 너는 그분을 물고 늘어지려는 무리들에 의해 감옥에서 있어야 했지. 사면도 거절하고 형기를 다 채운 건 법통을 세우자는 네 뚝심이었다.
악법도 법이라고 여겨 원칙대로 하려는 네가 답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는 구나. 사실 넌 굉장히 시원시원하고 잘 웃고 다정다감한 성품인데 도지사 하며 딱딱한 면만 보여준 게 아닐까 싶어.
“무현 두 도시의 이야기” 영화를 보았어. 극장에서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환하게 켜지자 젖은 눈가를 닦느라 모두 당황하더구나. 극장을 나와 화장실에 갔는데 거기서도 눈물을 닦고 지우며 애써 화장을 고치는 젊은 여자들을 보았단다. 그러나 고졸도 아닌 여자가 어떻게 영부인이 될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
바가지를 하도 긁어 부부싸움 한 뒤 홧김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이 나라 백성이란다. 골라 낼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고 안 들을 수 없도록 사람을 열 불나게 만드는 사람도 나와 같은 백성이지. 너는 성격 원래 단단하면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선이 매우 굵은 편이지. 단호하지만 자라며 폭력을 당한 적이 없어 남을 억압하지 않아.
외삼촌 환갑이라고 제주 왔던 때 장날 갈중이를 한 벌 사서 입더니 공관에서 사사로이 있을 때 편하다고 한 벌 더 사 보내 달랬지? 무명에 감물들인 가난한 백성의 노동복을 스스럼없이 입어도 때깔이 나니 잘난 인물 덕인가? 하하. 평생 정식으로 월급 받고 일하는 게 아마 도지사가 처음일 텐데 그 많지도 않은 월급에서 적잖이 떼어 고문으로 몸이 아프고 정신이상이 되거나 어려운 동지를 돕는다고 네 아내가 지나가는 말처럼 투덜대는 눈치더라.
그래도 명색이 도지사라 기관장들과 도정을 살피러 갔다가 뜻밖에 좋은 서해안 회를 대접 받는 적도 있다지. 그런 날도 꼭 집에 와 라면을 끓여 멸치볶음과 신 김치를 넣고 밥 말아 먹는 청승을 떤다면서? 신 김치야 괜찮지만 웬 멸치볶음을 라면에 넣어 먹는다냐? 하도 오래 동안 감옥살이에 도망 다니고 쫓기며 간단한 음식들로 배를 채워 버릇해 그 음식을 제일 맛있어 한다곤 들었다만.
비싸고 좋은 음식보다 젊어서 맛나게 먹던 것을 즐기는 것이지만 음식 솜씨가 유별나게 좋은 형님은 참 마음아파 하시지. 네가 나서고 네가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도둑떼가 떼 강도짓을 덜하거나 마구잡이로 훔치지 못할지도 몰라. 네가 일어서서 너와 같은 생각을 갖은 사람들이 모여 지금처럼 촛불만 밝혀준다면 그들은 꼬리를 내릴 거야.
대권도전이란 네가 그 일을 해야 된다는 운명의 이끌림이다. 네 목숨 하나 바쳐 그것을 지킨다면, 그게 운명이라면, 놋대야는 병기가 아니라 따뜻한 물을 담아 손을 씻는 용도였구나. 이 나라 백성의 손을 잡아 씻어줄 수 있겠니?
고된 노동으로 굳은살 박힌 손, 열패감으로 술잔만 들던 손,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는 수화, 새싹 같은 작은 어린이 손, 헤어지기 전 울며 맞잡은 손, 세상에 처음 태어나 아빠가 쥐어보는 아기 손, 나랏돈 훔치던 도둑의 손, 훔친 돈을 나누던 더러운 손, 사람을 가두고 때리던 무서운 손, 다시 찍어도 꼭 불쌍한 공주를 찍겠다는 어리석은 손도.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던 꽃보다 예쁜 아이들의 손도 모두 놋대야에 쓸어 담아 씻어주어야 한다.
어떻게 살든 대한민국 백성이라면 모두 쓸어 담아야 되는 것이다. 반만년 유구한 민족의 얼이여. 춥고 배고픈 백성을 모질게도 지켜온 정의의 신이여 모두 너를 지켜 너와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를.
대한민국 만세.
- 슈리슈바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