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있습니다.
도깨비에 대해선 학계에서 소수 연구자말고는 연구하지 않아서 정설이라 할 게 없기에 고증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접고 봅니다만
11화를 보다가 지은탁 졸업식에 온 삼신할미를 보면서 우오왕하고 눈물도 찔금, 늙어서 드디어 남성호르몬 쇠퇴의 징조인가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세속적인 선생을 혼내는 장면을 보면서 신화 전공자로서 선생이 흘리는 눈물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전공자로서 삼신할미의 신화적 맥락을 아는 저로서는 혼난 선생은 아마 세상 전체에게 혼나는 느낌이었을 거라 생각들었습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요.
삼신할미는 널리 알려진 비와 같이, 생명의 탄생을 주관하는 존재입니다.
제주도 삼승할망본풀이나 다른 삼신할미 설화를 보면 생명을 주관할 뿐 그 위상의 저변이 분명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신화맥락에서 할머니로 묘사되는 대여신, 즉 대모신은 사실 창세신으로 해석되며 삼신할미는 모든 존재의 창조자, 신들의 어머니인 대모신의 일부 성격이 특화된 모습일 뿐입니다.
드라마에서 삼신할미가 저렇게 이승을 돌아다닌다는 건 사실 반칙에 가까운거죠.
따로 신이란 존재가 나비 형상으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삼신할미, 나아가 신들의 어머니, 더 나아가 모든 질료의 근원인 존재가 지상을 걷는 데 누구도, 어떤 존재도 터치하기,어렵습니다.
바빌론의 티아매트도, 캄차카의 잠자는 암컷 까마귀도, 북미 호피족의 거미여신도, 제주도의 청태산 할미도 모두 대모신의 산란이며 존재의 어머니기 때문이죠.
이런 신화적 맥락에서 그 묘사가 할머니로 나타나는 까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근원의 근원, 그러면서 가장 포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암호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암호는 우리의 삶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삼신할미가 세속적인 선생을 혼내는 것은 작게는 우리 할머니한테 혼나는 것이기도 하면서 크게는 내 뿌리, 세상 전체로부터 질책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생의 눈물은 거창한 세상 전체보다는 우리 할머니한테 혼나서 흘린 것이겠죠?
이렇게 신화는 멀리 돌아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가 봅니다.
제가 신화를 연구하는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