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고 무엇" 단순한 질문, 깊숙한 본질...브랜드에 깃든 아이덴티티의 힘
(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며칠 전 고별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의 젊음, 우리의 투지, 다양성과 개방성, 위험을 떠안고 재창조를 하려는 우리의 무한한 능력은 미래가 우리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잠재력은 민주주의가 작동할 경우에만 실현될 것입니다.”
고별연설에서 미국과 미국의 과제를 정의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정체성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 연설을 보고 생각난 게 있어 몇자 적어봅니다.
1. 들어가며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합니까?”
단순한 질문이다. 그러나 위력은 막강하다. 이 질문은 1980년 미국의 한 유력 정치인을 대통령 직전에 낙마시켰다. 희생자는 J.F.케네디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였다.
26년 후. 케네디와 피부색이 다른 한 정치인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질문한 사람은 그의 대통령 출마를 반대하는 부인이었다. 부인은 그의 답을 듣고 감동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부인은 임기 내내 가장 든든한 원군이 됐다. 버락 오바마 얘기다.
이 질문을 기업으로 가져가 보자.
“당신의 기업, 또는 당신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또는 “조직원들이 함께 꾸고 있는 꿈은 무엇입니까?” 정도가 아닐까.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또는 핵심가치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왜’
‘무엇을’
기업인에게도, 구성원들에게도 이 질문은 강력하다. 답을 갖고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위대한 시절의 소니 골드만삭스 애플은 다른 기업과 달랐다.
2. 미셸을 감동시킨 버락 오바마
2006년 오바마는 대통령 출마를 결심했다. 그러나 미셸 오바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흑인 대통령’.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녀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12월 어느날 오바마는 결심을 굳히고 미셸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 대통령에 출마해야겠어.”
미셸의 안색이 변했다. 미셸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 대통령의 자식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봐”라고 했다. 하지만 미셸은 이것만으로는 오바마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차분히 물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거지?” 오바마는 잠깐 생각하다,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대통령 선서를 하는 순간 수많은 다른 피부색을 가진 미국인들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할 거야.”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만으로도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말을 이어갔다.
“세상이 바뀌는 날이 될 거야. 내가 선서를 하는 순간 전세계가 미국을 다시 보게 될 거야.” 흑인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격이 있는 나라,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아메리칸드림’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란 얘기였다. 미셸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라는 질문에 오바마는 답했다. 그리고 8년간 미국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며칠 전 고별연설을 했다. 미국의 자랑스런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3. 케네디를 낙마시킨 ‘머드의 질문’
1980년 J.F.케네디 전 대통령의 막내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는 민주당 대통령 예비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상대는 현직인 지미 카터 대통령. 카터의 지지율은 바닥이었다. 악명높은 ‘패배주의 가득한 연설’도 한몫했다.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다들 에드워드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형 J.F.케네디의 사회복지정책과 인종차별철폐 정책 등을 계승해 인기가 높았다. J.F.케네디의 후광도 작용했다.
경선참여를 선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CBS가 그를 인터뷰 자리에 초대했다. 앵커는 로저 머드였다. 에드워드는 1962년 서른살때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대중 앞에서 20년 가까이 유창한 연설을 해 온 그였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방송 카메라를 정치에 활용, 이미지 정치의 시대를 연 J.F.케네디의 동생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멋진 인터뷰가 이어졌다.
머드가 치명적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던졌다.
“그런데 왜 상원의원께서는 대통령에 출마하려 하십니까?”
아무도 이 질문이 에드워드를 사지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잠시 침묵했다.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머뭇거리던 그는 장황한 답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 대한 위대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높은 교육을 받은 인재를 가지고 있으며, 최고의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참 이런 얘기를 했다.
길었지만 시청자들은 에드워드의 말과 모습에서 대통령이 되어야 할 어떤 이유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인터뷰를 기점으로 높았던 인기는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달후 에드워드는 카터와의 경선에서 패배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왜 대통령에 출마하려 하느냐”는 질문 하나가 ‘에드워드를 백악관 문앞에서 돌려세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때부터 이 질문은 “머드의 질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Why do you want to be president?" 왜 출마하냐는 곧 정체성, 아이덴티티에 대한 질문이다. 왜 내가 상대후보가 아닌 당신에게 투표해야 하는지를 말해달라는 유권자의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다.
4. 어느 정치인과 소년의 눈물
얼마 전 한 정치인과 만났다.
일행 중 누군가 불쑥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정치를 합니까?"
왜 정치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가를 묻고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듯 했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 소년은 안절부절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공부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때로는 화가 난 표정, 때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분해 합니다. 왜 우리민족은 이렇게 밖에 못 살았을까. 우리민족은 왜 단결하지 못해 외세의 침략을 당했을까. 저는 지금도 그 소년의 안타까움 표정과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소년을 위해 정치를 합니다."
그 소년은 본인이었다. 어릴적 역사책을 보면서 안절부절 하고, 안타까워했던 소년.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 소년들은 역사를 공부하며 그가 느낀 비애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이었다. 돌아가며 살아온 삶과 희망을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아빠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하냐고 물어볼 때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자신 있게 아빠 직업을 정치인이라고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소망입니다."
2002년 12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측근이었다. 그러나 취임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속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노무현의 모든 것을 지고 그가 감옥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1년쯤 감옥살이를 한 후 출소했다. 몇몇 사람이 그를 만났다. 그의 첫마디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고 저 한명 감옥살이 한 거면 선방한 것 아닙니까”였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중 한명. 만약 내가 그 상황에 감옥을 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아마도 화병으로 어떻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노무현 정부내내 청와대에서 변변한 자리도 맡지 못했다. 누구를 탓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가 얼마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후보들이 새해를 맞아 4자성어를 내놨다. 그는 진짜 멋없는 4자성어를 내놨다.
“민주주의”였다.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