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야구의 도시다. 김성한, 선동열, 이종범, 윤석민 등 무수한 스타를 배출한 프로야구단 타이거즈는 광주의 상징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프로축구 1부 리그도 아닌 2부 리그 K리그 챌린지의 작은 시민구단인 광주FC가 작지만 인상적인 기적을 만들어냈다. 스타 선수 하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파죽지세로 강팀을 물리치며 1부 리그 승격의 기적을 일궜다. 그 중심에는 '기적의 남자' 남기일(41) 감독이 있다.
지난 8일 광주시 광주월드컵경기장에 광주FC 팬인 김재형(29·대학원생)씨, 김미리(23·대학생)씨, 한순옥(21·대학생)씨, 홍찬욱(16·중학생)군이 남 감독을 만나기 위해 모였다. 축구 이야기로 한껏 들떠 있던 이들은 남 감독이 등장하자 모두 얼어붙은 듯 입을 떼지 못했다. 남 감독은 "이름이 뭐예요? 적어놔야겠다. 나중에 이름 잊어먹으면 서운해하더라고"라며 구단에서 만든 다이어리를 펼쳤다.
올해 1부 리그 잔류를 1차 목표로 11개팀 상대로 1승 이상 올리고파 선수들도 예쁘게 하고 다녔으면 너무 싼 미용실서 촌스럽지 않게 니폼니시·하재훈에 지도자 공부 야구도시 광주에 축구팬 늘릴 터
김미리
지난 한해 감독 대행 하시면서 뭐가 가장 힘드셨나요?
남기일 감독
'대행'이란 말 자체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중계를 봐도 "남기일 감독 대행이 이끄는 광주FC" 이렇게 소개하잖아요. 상대 감독은 정식 감독인데 나는 대행이라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면도 있고, 대행이란 게 불안한 자리여서 선수들도 동요할 수 있고. 그런데 되돌아보면 오히려 그게 선수들을 하나로 모으는 요인이 된 것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선수들이 '우리가 잘해서 정식 감독님 만들어주자' 이런 말을 했대요. 그런 게 있어서 선수단이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김재형
1부 리그에서 다음 시즌 목표는 세웠나요?
남 감독
일단은 잔류를 해야 되는 게 목표죠.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나머지 11개 팀 상대로 전부 1승 이상 거두고 6위 안에 드는 게 목표예요. 남들이 보면 '미쳤네' 하겠지만, 미친놈처럼 한번 후회 없이 해보고 싶어요.
우리도 전력 보강을 좀 해야 하는데 구단이 돈이 없으니까 답답한 면이 있어요. 1부에서는 어느 정도 백업 요원도 갖추고 그래야 하는데 그 부분이 고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격을) 했으니까, 올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류를) 해야 하는 상황이죠. 올해는 팬들이 경기장에 많이 오실 것 같아요. 올해는 그 힘으로 가야겠어요. 그렇죠?
한순옥
네. 그렇죠.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고 날마다 응원 가야겠네요.(웃음) K리그 감독님들 중 가장 젊고, 선수로 뛰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남 감독
제가 선수 시절 생각해보면 뚱뚱하고 둔한 지도자는 별로 안 좋아 보이더라구요. 운동장에서 시범을 하나 보여줘도 잘 보여줬으면 좋겠고, 세대 차이도 안 났으면 좋겠고. 그래서 되도록 몸 관리를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지도자가 되니까 마찬가지더라구요. 이왕이면 우리 선수들이 멋도 좀 냈으면 좋겠고,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고, 예쁘게 하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너무 싼 미용실에서 촌스럽게 하지만 않으면요.(웃음)
홍찬욱
경기하다가 선수들에게 화도 내고 그러나요?
남 감독
화를 안 낸다고 하면 그렇고, 안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화를 낼 때는 선수 중에 고참 한명만 골라서 혼을 내요. 그러면 다른 선수들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듣죠. 주로 이종민(32)에게 화를 내요. 제일 잘 이해를 해주거든요. 그리고 끝나고 종민이한테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알지?" 하면 "다 알죠" 그러면서 웃죠. 호흡이 잘 맞아요.
김미리
감독님은 지도자로서 어느 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나요?
남 감독
부천 에스케이(SK) 시절에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님에게는 큰 그림을 배웠다면 부천이랑 천안시청에서 함께했던 하재훈 감독님께는 실제로 선수들을 바꿀 수 있는 법들을 배웠어요. 선수들은 하나하나 다 다르잖아요. 이 선수에게는 직설적으로 해야 하고, 이 선수에게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하고, 이런 걸 정말 잘하셨어요. 제가 지도자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영향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홍찬욱
부천 시절 니폼니시 감독과 같이했던 선수들과 이제 감독이 돼서 맞대결을 펼치게 됐잖아요?
남 감독
지금도 기분이 묘한데, 만나면 진짜로 묘할 것 같아요. 만나면 반갑겠지만 정말 살벌한 곳에서 만나는 거잖아요. 윤정환 선배(울산 현대 감독)는 사간 도스 시절에 일본에 가서 직접 경기를 본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어요. 조성환 선배(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스타일은 아직 모르지만 현역 시절 같이 방을 쓸 정도로 친했거든요. 감독이 돼서 만나면 서로 웃겠지만 또 자기 팀을 위해 열심히 싸우겠죠. 아직 그 선배들에 비해 모자라겠지만 저는 아직 젊으니까 계속 배우고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김재형
야구 같이 보러 가자고 하면 좋아하는데 축구 보러 가자고 하면 다들 시큰둥해요.
한순옥
대학교에서 야구 단체관람 간다고 언제 어디서 모이자, 아니면 아예 기아(KIA) 타이거즈에 협조를 구해서 조선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자리를 따로 배정받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대학교에서 같이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없어요.
남 감독
예전에 '광주FC의 라이벌은 타이거즈'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광주시민들은 야구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광주에 뿌리내려져 있죠. 그래서 '기아 타이거즈를 목표로 삼자'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 플레이오프처럼만 하면 광주FC 팬들도 조금씩 늘어날 것 같아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나아 갈테니 그때까지 조금만 참고 광주FC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