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에서는 진화된 로켓 엔진의 개발을 진행 중이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렸다. 현재 한국형 75톤급 로켓 엔진(명칭 미정)을 개발 중인 항우연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엔진을 놓고도 이미 그 다음 단계의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는 공표나 다름이 없다. 필자는 이러한 소식이 매우 놀랍고도 흥미로웠으나, 아쉽게도 정보의 중요성에 비해 세간에는 그다지 크게 논해지지 않는듯했다. "한국형 다단연소 사이클 로켓 엔진"의 개발 착수라는 소식을 한번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보기로 한다.
[ 개방형 사이클 vs. 다단연소 사이클 ]
로켓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로켓 엔진에 관한 기술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이 있어도 그것을 우주로 보내줄 발사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외국의 로켓을 통해서 인공위성을 보낸다고 해도, 스스로 발사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천지 차이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것으로 믿는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시작된 독자 발사체 개발계획에 따라 나로호를 발사했고, 이제는 KSLV-2의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형 75톤 급 로켓 엔진 개발이 진행되어, 현재는 개발 완료 단계에 접어들면서 마지막 단계인 여러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즉, 로켓 엔진의 설계와 구현은 마무리되었고, 실전 테스트를 거치면서 원하는 성능을 얻기 위한 안정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엔진이 테스트를 통과하고 실제 완제품인 발사체에 1단 x4개, 2단 x1개를 장착하여 발사에 성공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로켓 엔진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발사체 기술의 50%, 또는 그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기술이다."
(좌측) 한국형 75톤급 로켓 엔진 CG, 개방형 사이클 방식이며 노즐 옆에 큰 배기구가 보인다.
(우측) 역사적인 러시아 RD-180로켓엔진 CG, 다단연소 사이클 방식이며 노즐 이외에 별도의 배기구가 안보인다.
< 개방형 사이클 방식은 별도의 배기노즐로 터보펌프를 돌린 배기가스가 분출된다. >
로켓 엔진의 분류는 흔히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지로 나뉜다. 하이드라진, 케로신, 액체수소, 액화메탄 방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케로신을 사용하는 것이며, 현재 인류의 주력 발사체 대다수가 케로신과 액체수소 방식이다.
그런데 연료에 따른 분류가 아닌, 로켓 엔진의 연소방식으로 나누면 대표적으로 '개방형 사이클' 방식과 '다단연소 사이클'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두 방식의 차이점은 매우 간단하다. 로켓 엔진은 연소기에 엄청난 고압으로 연료를 밀어 넣기 위해서 사용하는 터보펌프를 구동시키기 위한 또 다른 작은 소형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하나의 엔진 속에, 그것을 구동시키는 모터를 위한 작은 엔진이 있는 셈이다. 개방형 사이클 방식은 터보펌프를 구동시킨 작은 엔진의 배기가스가 별도의 배기장치를 통해서 따로 분출된다.
반면에 다단연소 사이클 방식은 터보펌프를 구동시키는 작은 엔진에서 연소된 배기가스가 그대로 분출되지 않고, 다시금 주엔진 연소기로 보내져서 "두 번 타는 거꾸로 보일러"처럼 재사용된다. 대체적으로 다단연소 사이클 로켓 엔진은 개방형 사이클 방식에 비해 연소 효율이 높기 때문에 추진력을 조금 더 높이는데 유리하고, 로켓 엔진의 성능을 가늠하는 최대 척도인 연소효율(비추력) 조차도 약 10%가량 더 높일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구현하는데 있어서 다단연소 사이클 쪽이 훨씬 고난이도라고 볼 수 있다. 로켓 엔진 내부는 엄청난 압력의 배기가스를 감당해야 하는데, 개방형 사이클 구조에서 연소실 내부 압력이 100기압이라고 칠 때, 다단연소 사이클에서는 터보펌프를 가동한 배기가스를 주연소실로 다시 보내야 하므로 압력을 200기압까지 높여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덕분에 각종 부품과 배관들의 내구성은 더 높아야만 한다. 굳이 이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얻는 추력 향상과 연소효율 증가는 고작 10%에 불과하다.
<개방형 사이클 방식의 로켓들, (좌측부터) 소유즈 – 아리안5 – 델타IV – 팔컨9>
<다단연소 사이클 방식의 로켓들, (좌측부터) 우주왕복선 – 아틀라스V – H2A – Long March5>
[ 10%의 성능 향상이 의미하는 것 ]
다단연소 사이클 로켓 엔진이 개방형 사이클에 비해 겨우 10% 정도의 성능 향상 효과를 얻지만, 그것을 위해서 다른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한다. 난이도와 복잡성의 증가는 엔진의 신뢰성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사용되는 많은 발사체들의 엔진은 개방형 사이클임에도 충분히 쓸모가 있다. 세계 최대의 베스트셀러 로켓인 소유즈, 유럽 연합의 아리안-5, 미국의 델타-IV는 모두 개방형 사이클 방식의 엔진을 사용한다. 심지어 최근 돌풍의 중심인 스페이스X의 팔콘9 로켓도 개방형 사이클 로켓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학연료식 로켓을 사용해야 하는 현실에서, 엔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만약 같은 무게의 로켓이라도 10%의 연소효율 차이가 있으면, 어떤 로켓은 달까지만 보낼 수 있고, 어떤 로켓은 화성까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들이 단 1분에 집착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기술자들은 로켓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똑같은 연료로 더 많은 화물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10%의 효율 증가는 매우 유용하다. 만약 지구 저궤도까지 1톤의 인공위성을 운반할 능력이 있는 개방형 사이클 로켓의 효율이 10% 증가한다고 치자. 그러면 인공위성의 무게는 2톤 이상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 똑같은 이륙 중량의 로켓이 두 배의 운반 능력을 지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왜냐면 1톤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사용되는 로켓의 전체 무게는 100~200톤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10%의 효율 증가는 로켓 발사 중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료 탑재량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고, 대신에 페이로드를 늘리거나 더 먼 곳으로 보내는데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정확히 계산하자면 200톤 발사 중량의 KSLV-2의 1, 2, 3단 로켓엔진 효율이 모두 10%씩 증가시에 현재 1.5톤 인공위성을 극궤도로 보낼 수 있는 능력에서, 3~4톤 인공위성을 운반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단지 엔진만 교체해도 이렇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엔진 방식에 따라 구조적 특성이 달라져서 실제로는 저 정도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체감효과는 매우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거의 모든 로켓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페이로드를 탑재하고 우주로 날아간다. 지구 중력을 벗어나서 위성속도까지 가속하는데 에너지의 90% 이상을 소모하며, 우주에 도달해서는 허덕거리다가 위성을 내려놓고 사망하신다. 그런데 어떤 로켓은 똑같은 상황에서 우주에 도달하고도 아직 10%의 에너지가 남아있다면? 수많은 공돌이들은 로켓의 개발 이후에 이런 극한의 문제를 놓고 머리를 싸매다가 결국 궁극의 연소방식이라는 다단연소 사이클까지 개발했던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1950년대 후반에 고안되어, 1960년대 후반에야 실용화 되었다. (개방형 사이클은 1930년대에 고안되어 1950년대 후반에 실용화 된 것을 감안하자)
[ 항우연의 다단연소 사이클 로켓 엔진? ]
아직 항우연은 75톤 급 개방형 사이클 로켓 엔진조차도 실용화를 완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음 단계인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 개발에 착수 중이라는 것은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불러올 수 있다. 통상 해외의 경우, 어떤 로켓의 개발과 함께 사용할 엔진을 개발하는 과정이 병행되며 미디어를 통해서 대중에게도 중요하게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로켓 기술에 대한 대중적 이해력이 높아서 "왜 로켓엔진이 발사체에서 중요한가?"를 충분히 인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KSLV-2의 첫 시험발사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아직 로켓 엔진의 정식 명칭 조차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처럼 '우레'라던지, 무슨 한국 신화에 나오는 그런 이상한 이름이 아니길 정말 바란다.)
KSLV-2에 사용될 75톤급 케로신 로켓 엔진은 아직 테스트 중이지만 실제 사용 시에 여러 차례 오류를 거치면서 차츰 안정화되어 갈 것이다. 그런데 75톤급 엔진으로 멈춰 서면 기술적 진보에 있어서 경험이 단절되는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누누히 말하지만 한국형 발사체의 개발에 있어서 핵심 가치는 바로 '경험 있는 인력의 확보와 유지'라는 문제이다.
KSLV-2 개발 과정은 지금껏 로켓 엔진의 개발 과정과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다른 부문을 맡은 공돌이들은 다소 억울하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엔진의 개발이 거의 완료되어 가고 실용화에 돌입한 지금은, 다른 부문 공돌이들이 바턴을 이어받아 나머지를 완성하는 단계이다. 일각의 썰처럼 원천기술을 어디서 입수했건 간에, 엔진 기술을 고스란히 스스로의 것으로 만든 성과는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목표가 완수되었다고 그저 소소한 오류나 시정하면서 시간만 보내면 기술은 퇴보한다. 다음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적절한 시기에 더 어려운 시험 과제인 '다단연소 사이클 로켓 엔진'이라는 문제가 주어졌다고 보여진다. 엔진 만들던 공돌이들은 놀지 말고 더 골머리 쌓고 공밀레 하라는 친절한 배려인가?
앞서 예시로 들었지만, 개방형 사이클 로켓 엔진을 사용하는 발사체들은 지금도 우주를 주름잡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다르다. 스페이스X는 팔콘9 로켓을 조만간 접고, 전혀 새로운 발사체인 ITS를 개발하여 인류의 우주개척사를 완전히 뒤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아리안-5 로켓으로는 미래 우주경쟁에서 위협을 받기 때문에 곧 새로운 차기 로켓 개발에 착수할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미 새로운 차기 로켓들을 실용 발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가지 공통점은, 모든 국가와 기업들의 새로운 발사체들이 대부분 '다단연소 사이클 로켓 엔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유즈나 델타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한국형 발사체를 상용화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개방형 사이클 로켓 엔진'이 구시대의 기술로 치부될 수도 있다.
단 10%의 미학, 극한 기술이라는 실질적 문제점도 크게 대두될 것이다. 구시대에는 어떻게든 우주로 무엇을 보내는게 과제였다면, 미래에는 우주로 보내는 것이 당연하고 얼마나 값싸게 보내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필자 개인적으론 여태껏 한국형 75톤급 엔진의 제원을 보면서, "저것은 이미 1950년대에 구소련이 개발한 최초의 발사체 엔진과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초보적 수준이다."라고 생각해온 편이다. 물론 기초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개발해왔기에, 첫 번째 엔진이라는 성과는 있지만 이미 상용화된 여러 발사체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구식 기술 베이스의 그저 그런 로켓이란 자괴감이다.
반면에 KSLV-2의 업그레이드, 후속 기종에 가서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을 채용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주류 발사체에 근접할 수 있고, 우주강국들과 기술적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아무리 구식 로켓도 충분히 우주로 인공위성을 보낼 수 있음에도, 약간의 효율성 차이 때문에 경제성을 고려해서 퇴역시키고 경제성을 극대화한 로켓들을 새로 개발하는 것이 현재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의 로켓 기술력은 이미 1960년대에 멈춰 섰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멋지고 화려한 로켓보다는, 투박하지만 믿음직하고 값싼 로켓을 선호하고 있다.
[ 사족 ]
이번 포스팅은 다분히 의례적이고 최소한의 기술적 설명에 집착하게 되었다. 기술적 사항으로 자세히 들어가면 그것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글로서 다소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한국형 발사체를 많이 거론하려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놓고 갑론을박은 때이른 논란이기에 무사히 순산하는 순간까지 지켜보고 응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곧 태어나게 된다면, 그때는 아이가 잘 자라서 성인이 되어 당당히 우주에 한국의 기치를 내세울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우주개발은 매우 철학적이며, 인류 문명의 존재가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심오한 문제이다. 최근에 필자는 평생 안 해보던 인문학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 편이다. 시도 읽고, 정치 이야기도 해보고, SF 소설도 다시 꺼내들었다. 왜냐면 많은 이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해야 하나요?"
수없이 들어왔던 이런 질문에 조만간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과 인구, 국내외적 상황에 직면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발사체를 보유하면 어떤 점이 유리한지를...
섣부른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는 결코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 지구는 좁고, 인류는 새로운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 조짐이다. 2017년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는 희망이란 게 보이지 않고, 오로지 과거의 향수를 회상하는데 열중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한국형 발사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시기에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필자는 발사체란 "그저 무엇을 우주로 보내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보는 편이다. 반면에 "발사체에 탑재되는 그 무엇(?)이 만약 스토리(Story)라면?"이라는 몽상을 해본다. 왜 인류가 1969년의 달 착륙에 열광했고, 일본의 하야부사 탐사선, 유럽의 필레 탐사선, 미국의 화성 로보들과 외행성 탐사선들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그 자체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류의 스토리를 한국인들이 참여해서 함께 쓰기 위해선 반드시 독자적인 발사체가 필요하다. 발사체는 작가에게 펜이자, 종이가 된다. 펜과 종이가 없이는 스토리를 써나갈 수 없다.
<2010년, 7년간의 우주방황을 끝내고 대기권에 진입하며 산화한 하야부사 탐사선. 장기 불황에 빠져 희망을 잃어가던 일본인들은 작은 우주 탐사선의 기적같은 스토리에 열광하며 부흥의 꿈을 키워갔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일본 부활인가?>
오로지 경제성만 따지면 인류는 지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꿈과 희망을 갖는다면 인류는 영원히 존속할지도 모른다. 또한 좌절하고 있는 지금의 10~20대에게 작은 불빛이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