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자세히 읽어봐도 도대체 지금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군요. 헌재의 빠른 기각결정을 촉구해야 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습니다. 누가 그거 모릅니까?
문제는, 나아가 이런 어이없는 일을 저지른 정치권에게 민주주의의 주인인 우리가 혹독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합법적인 탄핵이다. 헌재가 알아서 한다. 다른 건 나서봐야 소용도 없다. 우리는 헌재가 잘 하도록 촉구나 하자."
또 언제나처럼 국가기관에 모든 걸 맡기고 우리는 백성처럼 따르자구요?
정치는 국회에 맡기고 잘못되면 선거에서나 심판하지 뭐.. 하다가 맨날 흐지부지되는 잘못.. 이런 사태를 초래한 잘못을 또한번 반복할 겁니까?
지금의 시위는 헌재의 빠른 결정을 촉구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이런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 정치권에, 이래서는 결코 안 된다는 시민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글 쓰신 분은 민주주의를 너무 좁게, 절차적인 면으로만 파악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니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분노와 비난을 무마시키고 여론을 헌재의 결정 촉구에만 한정시키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저는 솔직히 후자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죄송한 말이지만 글 시작하는 방식도 전형적인 사기꾼 스타일이군요.
"시위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요구사항이 거세면 거셀수록... 노무현에게 불리합니다."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위의 내용은 단 하나이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의 빠른 판결을 요구' 하는 것입니다."
위의 문장에서 그 의도가 드러납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이후 이들을 정치권에서 몰아내는 일로 연결되지 않도록.. 지금의 이 거대한 분노의 힘을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 한단계 발전에까지 미치지 않도록 헌재 결정에만 여론을 제한시키려는 의도라는 점...
아무래도 의심을 지울 수가 없네요.
글 쓰신 분 말대로, 그냥 촛불들고 조용히 모여 앉아서 헌재결정만 기다리고 있다가 다행히 탄핵 기각되어서 노대통령 복귀하고 나면 뭐가 달라질 꺼라고 생각됩니까?
정치판을 바꾸고 썩은 저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노대통령은 복귀하나마나 허수아비입니다. 지금껏 그랬지 않습니까. 한대 호되게 얻어맞았는데 다행히 자리 찾아도 눈치 더 보게 마련이지요. 뭐 옛날처럼 노대통령이 군을 자기 손에 두고 있어서 계엄령을 마음대로 선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나라 개판되겠지요.)
여기서 별 변화가 없으면
이 나라 그대로 갑니다.
이번 총선이 연기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적당히 여론 무마하고 지역감정 조장에, 또 언제나처럼 때맞춰 북에서 총소리 몇 방 나면 더욱 좋겠지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국회진출 비율이 약간 낮아진다 해도.. 완전 판이 바뀌지 않으면 똑같습니다. 80년 가까이의 기득권이 그리 쉽게 점진적으로 정화되리라 생각하십니까?
다행이 권한 복귀된 노대통령이 돌아온다 해도 허수아비, 지네들 마음대로 돌아가는 건 똑같습니다.
문제는 헌재결정 촉구, 노대통령의 복귀만으로 끝날 게 아닙니다.
멀리 보세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그 누구도 뿌리뽑지 못했던 썩은 상처를 도려내느냐 마느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환골탈태가 달려있는 사안입니다.
시민의 시야를 좁히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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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는 어제 제가 쓴 글을 덧붙입니다. 중복 죄송.)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할 말이 있어서 씁니다.
우선,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으니 짚고 넘어갑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결정을 내리는 날 대통령의 권한은 바로 복구됩니다.
무조건 6개월 동안 정지되는 거 아닙니다. 6개월은, 헌재가 아무리 늦어도 6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6개월입니다.
헌재가 기각결정을 빨리 내리면 내릴수록 좋겠죠.
하지만 이 근거를 들어서 지금 나가서 시위하지 말고, 헌재 결정이나 기다리자고 하는 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시위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지금은 괜히 시끄럽게 나서지 말고 한달 뒤 총선에서나 심판하자는 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글 쓰시는 분들은 "시위"란 난폭한 군중들의 불법적인 실력행사라는 아주 전근대적인 관점을 지니고 계시는 것 같군요.
여러분
우리나라가 지금 왜 이 모양까지 되었나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민들 무시하고 지금의 저 작태를 보일 수 있는 뻔뻔함은 어디서 왔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 국민들이 나서야 할 때 안 나섰기 때문이 아닙니까.
먹고 살기 급하다고 정치는 높으신 나리들이 하는 걸로 맡겨두고
그 안에서 어떻게 썩어들어가는지 신경도 안 썼기 때문에 이 나라 정치가 이 모양이 된 게 아닙니까..
헌재 결정만 기다리다가.. 총선만 기다리다가..
지금껏 그랬듯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술수에 흐지부지되어서, 이번 총선에서도 혁명적인 물갈이에 실패하고 나면,
언제나처럼 애꿎은 냄비근성만 또 탓하고 있을 겁니까?
민주주의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겁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역사의 큰 변환점에서는 항상 시발점이 있게 마련이고
그 처음의 불꽃이 다른 다수의 지지를 받아 들불처럼 번져나갈 때 비로소 판이 바뀌고 변혁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처음의 불꽃에 찬 물을 끼얹지 마십시오.
어설픈 시위가 오히려 노대통령의 하야에 압박이 된다시는 분..
걱정도 팔자십니다.
만에 하나라도 격렬한 시위 때문에 한나라당이 노대통령에게 더욱 압박을 가해서 하야하게 만든다면, 격렬하게 시위하고 있을, 그 시위하는 시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바라겠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썩은 정치 기득권을, 더욱더 단결되고 폭발적인 거대한 국민의 힘으로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의 의견을 똑똑히 보일 때입니다.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만에 하나라도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단결된 시민의 힘으로 또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어리석은 정치모리배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각인시켜 줄 때입니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선거가 아니라도 언제든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점을 뼛 속 깊이 새겨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