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김기춘은 경상남도 거제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195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1960년 3학년 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이후 공직에 입문했다고 하니 당시로는 가히 독보적 존재였을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머리와 지위를 가지고 부와 권력을 쥐고자 출세를 위해 권력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자이다. 결국 스스로 파 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지고 마는 결과를 나았기에 결코 '왜?' 라는 질문을 할 만한 이유나 가치조차 없는 자라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윤선의 경우는 '왜?'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1966년 용산구에서 태어나 서초구에서 자랐다고 한다.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한 콜롬비아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집안의 경제력 역시 필요 이상이었을 것이다. 서울대 동문인 변호사와 결혼도 했고, 미국 Amster, Rothstein & Ebenstein 그리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도 일을 했다고 하니 돈도 벌 만큼 벌었을 텐데, 게다가 국회의원에 여성가족부 장관까지도 했고, 아이들도 다 키웠다고 하던데, 그런데 왜 저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조윤선에게 부족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원했던 것, 찾고자 했던 삶의 목표가 무엇이었길래 저런 꼴을 당하기까지 멈출 줄 몰랐을까?
스쿨버스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에서 강사가 질문을 한다.
"스쿨버스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가 무엇입니까?"
이런 저런 대답을 하는 운전자들을 향해 강사가 말한다.
"스쿨버스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브레이크입니다."
비단 스쿨버스 뿐이랴.
사람의 삶에서도 멈출 때 멈추지 못한 결과는 참담함을 넘어 추한 몰골을 만들어 내게 되고 만다.
조윤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냐 만은, 오직 한가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