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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타살
게시물ID : humorbest_13064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17
조회수 : 2172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9/10 18:50:49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9/10 00: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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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몽롱하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듯 시야가 천천히 흔들린다.


피어오르는 연기는 아침의 강가처럼 뿌옇게, 가득 차 있다.

그 연기 속에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내가 보인다.



그제서야 주마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에겐 ‘가족’이 없다는 것을.

그저 가정만이 있을 뿐.


겉보기에 잘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미 속은 썩어 문들어진 우리들을.


그래도 저땐 행복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교복을 입은 나는 빨간 딱지로 가득한 방에서 울고 있었다.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적어도 저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


누군가가 있었다면.



다시 모습은 바뀌어 공장이 보였다.



첫 출근 때였다.

이때만 해도 조금은 두근거렸을 것이다.


앞으로 돈을 번다는 것.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는 것.


다음은 안 봐도 뻔하지만

역시

손가락이 잘려있었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보상금? 그런 것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포차에서 한잔 걸치고 흔들리는 뒷모습이 보였다.


애써 눈을 돌리려고 했지만

과거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 처절한 뒷모습을 볼 수 밖엔 없었다.


아무도 없는 나의 쓸쓸한 모습을 볼 수 밖엔 없었다.


다시 또 바뀐다.



이번엔 그녀가 보였다.



이런 나에게 사랑한다고 해 줬던 그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나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웃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은 단지 가면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돈이었다.

없는 돈 있는 돈 전부 가져갔다.

없는 마음 있는 마음 전부 가져갔다.


나마저도 가져간 것일까.


확실한 것은 ‘너’는 가져갔다.



그리고 나의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테이프와 망치를 사는 모습.

번개탄을 사는 모습.



돌연 연기가 흔들리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젠 숨도 잘 쉴 수 없다.

그저 남은 것은 죽음 뿐인가.

죽음.


나의 죽음을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자살, 이겠지.


하지만 나는 결코 자살한 것이 아니다.

나는 타살이다.


명백히 타살이다.


부모가

상사가

친구가

그녀가

날 죽인 것이다.


아니, 아니다.

그들도 결국은 피해자이다.


나와 같은 피해자.


부모님은 나를, 가정을, 행복을 잃었다.

상사와 친구는 일자리를, 급여를, 가정을 잃었다.

그녀는 자신을 잃었다.

그들도 나도 모두 그저 피해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날 죽인 것일까.

바지 주머니 속의 동전이 짤랑거렸다.


아까 사고 남은 돈인 것일까.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모든 것은 그것 때문이다.

돈.


보잘것 없는 종이 쪼가리가

나를 죽인 것이다.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죽게 될 것이다.

나처럼.


세상이 흐릿해졌다.

이제 곧 있으면 난 죽는 것이다.

돈에게 죽는 것이다.



띠링.



핸드폰이 갑자기 켜졌다.



마지막으로 온 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약 때문인가 서서히 굳는 느낌이었다.


가족일까, 상사일까, 친구일까.

아니면 그녀일까.


메시지 함을 누르기 무서웠다.


눈을 감고 탁 눌렀다.




“1000만원 대출 가능.

즉시 신청.”




하.

하하.

웃음만 나온다.


핸드폰을 조수석에 세차게 던진다.

산산히 부서졌다.


그 모습은 누구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물질로 이뤄진 그것은.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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