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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제국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 (1)
게시물ID : history_130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13/10
조회수 : 96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12/17 19:37:58
이슬람 세계 혹은 제국을 이야기 해보려면 우선 정통 칼리프 시대를 아니 그보다 앞선 선지자 마호메트의 시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디 이슬람 교의 바탕은 생존이었습니다, 어떠한 사회의 공동체가 아니라 어떠한 사회의 생존입니다, 선지자 마호메트의 시대 그가 살았던 메카는 인도양과 지중해를 잇는 단언컨데 아라비아 반도에서 위에서 세는게 빠른 매우 거대한 상업 도시로서 네스토리우스 교, 에비온 파, 마르얌 파를 비릇한 기독교 종파들과 유대교, 사비교, 알라 즉 신과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던 만신전인 카바 신전등 종교의 중심지 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종교들이 집결되었으니 당연히 종교 역시 메카를 지탱하는 주요한 자원이자 상품인 것은 자명한 상황 속에서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의 등장은 종교간의 충돌에 앞서 메카의 시장 아니 메카라고 하는 상업 도시 그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이슬람 교라는 신흥 세력은 메카의 기득권 세력인 다신교 측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메디나 그러니까 당시는 야스리브라 불리우던 착 히브리인, 아라비아 유목민 등이 서로 서로 혼재되어 세기말의 수라장을 꽃피우던 곳의 중재 요청을 받아들여 메카를 떠나 그 곳에서 힘을 키우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세력 다툼에서 밀려나 메디나로 떠난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굶주림을 탈피하기 위해 메카를 약탈하는데서 비릇됩니다, 결국은 승리하여 유대인들로 부터 공물을 걷어들이고 메카라고하는 거대한 상업도시를 손에 넣어 세를 불리게 되기는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이타 종교와 다르게 이념을 떠나 집단 대 집단으로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상 이후의 정통 칼리프 시대의 아니 이슬람 교의 시작은 말하자면 이러한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잡아먹히는 냉혹한 현실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그러하기에 물론 다른 여타의 환경도 다르기는 하나 아무튼 다른 종교와 다르게 나라의 건국으로 시작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통 칼리프의 시대

1. 아부 바크르

Abubakrsreign (2).jpg

정확하게는 아부 바크르 아스-시디크 라 불리는 인물로 정직한 처녀의 아버지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녀가 정직한게 아니라 처녀의 아버지가 정직하다는 것인데, 꽤나 의미 심장한 별명이 아닐수 없습니다, 9살배기 딸을 선지자 무하메드에게 시집보냈으니 말이지요 (....)

대충 따져보면 선지자 무하메드가 570년 생이고 620년에 첫째부인이 죽은뒤 결혼시켰으니까..어.....네 넘어가겠습니다, 건전한 모두의 오유니 말입니다.

아무튼 본명은 압둘라 빈 아비 쿠하파로 무하메드의 가장 절친한 벗이자 후원자였던 사람입니다, 가족 모두를 개종 시켰을뿐만 아니라 개종하지 않은 아내와 아들을 쳐낼정도의 단호함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막대한 재산을 아낌 없이 포교에 사용할 정도의 신앙도 가지고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선지자 무하메드를 수없는 생명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의기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중요성은 헤지라 그러니까 메디나로 떠날때 동반자로 그를 선택한것에서도 볼수가 있고 최초의 성지 순례를 떠난 이라는 것에서도 역시나 볼수가 있는데, 이러한 그가 마호메트 사후 그의 뒤를 잇게된 이야기는 참 자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물론 시아파에서는 달리 말하지만 이는 뒤에 적도록 하지요.

무하메드 사후 후계자가 낙점되지 않은 까닭에 이슬람교는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선지자 무하메드와 헤지라를 함께 겪은 메카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인 무하지룬과 메디나에서 선지자 무하메드와 이슬람교를 지지했던 이 들이 모인 메디나의 안사르가 특히나 그러했는데 양 측은 각기 다른 지도자를 선발하려 했습니다, 이에 무하지룬의 지도자였던 아부 바크르는 중재를 시도했고, 메디나의 안사르가 그를 할리파트 라술 알라 즉 신의 예언자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지며 최초의 칼리프가 탄생했습니다.

그러한 직후 그가 제일 먼저 벌여야 했던 것은 전쟁입니다.

신의 대리자이기에 영원토록 죽지 않고 살아갈 것으로 믿어지던 선지자 무하메드가 사망하자 일부 아랍인들은 신앙에 대한 회의심을 갖게 되었고 일부 부족 간에는 예전과 다름없는 불화와 분쟁이 재연되었습니다. 그 결과 충성의 맹세를 파기해 버리는가 하면 이슬람세의 지불을 거절하고 이전의 신앙을 되찾고자 하는 것은 애교인 수준으로 자칭 무하메드의 뒤를 잇는 예언자들이 각지에서 심지어는 이슬람교인이 아닌 기독교인 들 사이에서도 출몰하였고 이 들과의 배교 전쟁은 지금의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으로 번져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밖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아부 바크르는 내부 정리가 끝난지 반년도 되지 않아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하였고 이어서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였습니다, 신앙심에 불타오르는 '미개한 야만인'들에게 이 우수한 문명을 자랑하는 국가들은 큰 패배를 겪어야만 했지요.

물론 전쟁만 벌인 것은 아닙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배교자들을 모조리 삭초제근 한 뒤 그는 꾸란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다르게 전해지고 또 바뀌는 꾸란의 현실을 볼때 정비를 할 필요성은 있었는데, 칼리프의 자리에 오른지 2년여만에 갑작스럽게 선지자 무하메드의 곁으로 떠나는 바람에 완성을 볼수는 없었습니다.


2. 우마르

644.PNG

본명은 아부 하프스 우마르 빈 알-하타브로 본디 이슬람 교에 대하여 가장 크게 반대했던 이 들중 한명입니다, 까놓고 말해 좋게 말하면 한량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차반이던 사람인데, 그러한 불같은 성정은 개종한 이후에도 심지어는 딸을 선지자 마호메드에게 시집 보낸 이후에도 남아있어 칼리프의 자리에 우마르가 오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인물입니다,

다른 후보였던 알리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인데 알리의 지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해보이는 듯 주변의 우려와는 다르게 칼리프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초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와 마찬가지로 겸허하며 현명한 지도자의 모습을 내보이며 주변의 우려를 종식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업적은 우선적으로 지금까지는 방어전으로 치중하던 군사력을 밖으로 돌렸다는 점입니다, 지하드가 더이상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닌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탈바꿈 한 것으로 동로마 제국의 성군 헤라클레이오스가 잃어버린 영토를 탈환하고 이슬람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내려보낸 군대를 격파하고 야르무크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아나톨리아 남부의 통제력을 완전히 빼앗아 왔으며 뒤를 이어 여전히 혼란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사산조 페르시아의 쇠락에 박차를 가한데 이어 멸망시키고 이집트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대업을 이룹니다.

또한 꾸란의 집대성을 이루어 지금 까지 심하게 말하자면 주먹 구구 식으로 진행되어 오던 정리를 체계화 시켰으며 예루살렘과 이슬람 제국간의 조약 이른바 우마르 조약을 통해 무슬림과 비 무슬림과의 관계등을 정립하는 등 사회 질서는 물론이거니와 샤리아를 정비하여 작은 도시국가나 다름없던 이슬람 제국의 정치와 법치 체제를 완비하는 등 내치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업적은 반대로 부작용을 키워나갔습니다, 넒어지는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파견하기 시작한 총독들이 가질수 밖에 없는 분리주의적인 성격을 통제하는데 실패하였고,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부를 통해 변질되어가는 이를테면 이슬람의 세속화를 막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정복 전쟁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수 많은 적들에 대하여 그는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칼리프의 자리에 오른지 불과 10여년만에 그는 기독교도이자 페르시아인이었던 노예에게 암살당하고 말았지요.

특히나 비참한 것은 그가 이슬람의 세속화를 막고 순수성을 지키고자 최후의 순간 만들었던 칼리프 선출의 관례 즉 자문단인 슈라의 선출 이후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의 동의를 얻는 다는 이 관례마저도 그의 노력과 뜻을 저버렸다는 점입니다, 그의 뜻을 따르자면 선지자 무하메드의 혈통을 잇는 이슬람 교의 순수성을 증명하는 알리가 뒤를 이어야 했으나 모두가 선발한 것은 대부호였던 우스만으로 이는 이슬람 제국의 쇠락을 의미했는데 이는 다음 글에서 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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