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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의 용기와 심동보의 용기
게시물ID : freeboard_14796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케
추천 : 0
조회수 : 3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26 15:48:14
(시사게시판에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방문횟수가 모자라서 안된다고 하네요.)
 
표창원 의원님.
국회의원 당선 확정 순간에 사모님과 진한 입맞춤을 하시던 장면은 이전의 어떤 정치인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앞으로도 그런 정치인을 또다시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행동에 용기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지요.
두려움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수치심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이니까요. 수치심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수치심은 다시 용기에 연결되기 때문이죠. 사회의 관습과 자신의 생각이 충돌할 때 범법행위가 아닌 이상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 아무도 건너보지 않은 다리 위에 발을 올릴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에 사모님 또한 부창부수로 화답하신 것 같습니다.
사모님은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시겠죠.
가장 큰 기쁨의 시간에 온 나라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을 사랑하는 남자. 온 나라에서 가장 큰 용기를 가진 남자.
그래서일까요. 올랭피아에 합성된 두 분의 얼굴은 참으로 건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용기는 다시 온 나라로 퍼져나갔고, 용기 있는 반려자, 조언자들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던 측은한 대통령을 역사의 뒤안길로 돌려세웠습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코드가 맞다고 하죠.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한 의원님의 말씀들은 저의 생각과 거의 일치합니다.
포르노 합법화, 선거가능 연령 낮추기, 선출직 공직자 연령제한 등이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레이디가가 공연에 대해서도 지지하셨더군요.
내용은 다를지언정 모두 용기라는 단단한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발언들이라 봅니다.
 
 
대한민국의 부조리들에 대해 거침없이 내밀어지던 의원님의 체포영장은 처음으로 기각되었습니다.
의원님은 탄핵 위기까지 몰렸고, 저는 황급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 구성원들이 이념, 정파를 초월하여 한목소리로 공유하고 있는 블랙리스트가 두렵습니다.
거리낌 없이 쾌락을 향유하는 마광수의 사라를 구속시키던 광기의 시대에서 단 한 걸음도, 어쩌면 유신시대까지
회귀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이 시대, 방송에서 걸 그룹들이 보지의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꽉 끼는 바지를 입고서
엉덩이를 내밀고 가랑이를 벌려대며 경쟁하는 모습에 넘어가 우리 사회가 쿨해졌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엄정한 군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아들들은 무대 아래서 환호성을 질러댑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회 구성원들의 공분은 그림의 내용이 아닌 그림이 걸린 공간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요. 마광수가 대학교수가 아닌 싸구려 만화가였다면 그렇게 큰 곤욕을 치렀을까요.
오늘도 방송에서는 9시뉴스가 방송됩니다. 나이 지긋한 남자와 어리고 예쁜 여자가 나란히 앉아 룸싸롱 뉴스를 합니다. 중요한 뉴스는 남자가, 이어서 작은 뉴스는 여자가 합니다. 자켓은 몸에 밀착시키기 위해 집었습니다.
 
 
여성단체들께는 피아구분을 좀 더 주의 깊게 하시고 같은 편에게 총을 겨누지 마실 것을 호소 드립니다.
여성단체분들은 표창원 의원에게 주로 화살을 겨누십니다.
결국,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이 전시된 국회라는 공간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비드상에 표창원 의원의 머리를 갖다 붙여 전시하면 남성비하입니까.
제 상상에 그것은 잘 어울리는 2차 예술작품일 뿐입니다.
남성의 나체와 여성의 나체는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긴 남자들은 당당하게 화장실문을 열어놓고 소변을 보는 천박한 매너의 나라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밀로의 비너스는 어떻습니까. 두 팔이 잘린 고어물에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를 얹어놓았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국민의 공분을 잘 형상화했다고 칭찬하시겠습니까.
드러난 유방을 황급히 덮으시겠습니까.
같은 원작이지만
표창원 의원과 사모님의 모습을 넣어 합성한 그림은 전혀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건강하고
유쾌한 느낌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더러운 잠’과의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그림의 작가가 무엇을 드러내려 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국회라는 공간이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기춘의 머리를 발로 차며 노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 눈에 풍자를 넘은 우려를 자아내었습니다. 선출직 공직자 연령제한이 ‘어르신’에 대한 무례함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보여 줄만 한 모습인가 생각해봤습니다.
 
 
원작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아니지만, 몸을 팔아 먹고사는 여자이지만 관람자를 향해 당당한 시선을 던지는 올랭피아의 여인이 여성성에 대한 모독일까요?
올랭피아가 처음 출품되었을 때 관람객들이 분노했던 것은 여성에 대한 비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신적인 미의 상징이라는 위선적인 면죄부조차도 적용될 수 없는 현실의 여자, 그것도 일개 창녀가 자신들에게 시선을 - 당당함을 넘어 무심하기까지 한 - 정면으로 던지고 있었고, 그것이 자신들의 성적 이중성을 - 낮에는 귀부인들과 사교를 하고 밤에는 매음굴에 출입하는 - 아프게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여성성에 대한 모독이라기보다
오히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남성성, 살아 숨 쉬는 여성의 생명력과 인격을 성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적, 폭력적
프레임 안에 가둬 박제하려 했던 당대 남성들의 시도에 대한 무심한 시선이었던 것입니다.
경멸보다도 더욱 품격 있고 담대했던 시선.
 
 
그래서 새누리당 김성은 비대위원의
“여성 비하를 넘어서 국격을 추락시키는 일”이라는 발언은 어쩌면 적절해 보입니다.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을 처음 접한 느낌은 말 그대로 더러웠습니다.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색한 솜씨로 합성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무튀튀하고 칙칙한 톤의 얼굴이 아름다운 신체 곡선과 커다란 위화감을 자아내었습니다. 원작의 위대한 여성성에 대한 심각한 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얼굴은 그저 눈을 감고 있거나 잠이 들어있는 얼굴이었을 뿐,
심동보 제독님의 말씀처럼 마약에 취한 얼굴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위화감이 너무 심해 깊게 관찰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제독님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소유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원작에 대한 모독이 너무 심해서 옆에 프랑스 친구라도 있었다면 크게 사죄하고 고급 와인이라도 한 병 선물해야 분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친구에게 미사일은 자지를 (심동보 제독님의 표현에 의하자면 ‘남성 성기’)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프랑스에는 조리퐁을 보고서 여성성기를 지목하는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들이 대한민국만큼 많지는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심동보 전 제독님께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셨더군요.
"의를 보고 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견의불위무용야: 見義不爲無勇也)"
저는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제독님은 아마도 동양사상, 성인들의 말씀에 관하여 저보다 박식하시리라 추측해
봅니다.
 
 
심동보 전 제독님의 블로그를 보았습니다.
http://blog.naver.com/solyeun
 
 
심동보 전 제독님께 묻고 싶습니다.
제독님께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 앞에 古자를 안 붙이신다더군요.
그 분은 제독님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면서요.
세월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어떤 용기를 내셨는지요.
앞으로는 어떤 용기를 내실 건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세월호 의혹은 조작된 것이라고 용기 있게 주장하실 건지요.
지난해 9월 23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고, 보국훈장을 주기로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는 황기철 제30대
해군참모총장에 대해 앞으로도 용기 있게 반역세력이라고 주장하실 건지요.
 
 
세월호 의혹이 조작되었다는 제독님의 생각과는 다르지만 자식을 잃고 눈물 흘리는 유가족들에게 다가가 손 한번 잡아드리는 仁을 실천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그럼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블랙리스트 같은 계획적인 선동이 아닌 냉철한 이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명하는 지혜는 어떠신지요.
 
 
의원회관에서 어떤 동성애자가 제독님의 신체를 느끼한 눈빛으로 훑어보더라도 제독님은 바로 주먹을 날리거나 땅에 메어치는 행동 대신 정중한 어조로 불쾌감을 표명하는 법치국가의 禮를 갖춘 신사일 것입니다. 전시된 작품이 성희롱으로 느껴졌을지라도 작품을 훼손하기 이전에 작가를 찾아가 유감을 표하고 서로 간의 의견차를
좁혀보려는 시도를 해보셨으면 어땠을까요.
작품에 대한 국회 직원들의 견해가 당연히 자신과 같다고 가정하고 남은 문제는 용기를 내어 작품을 철거해내는 것뿐이라 단정 짓기 이전에요.
 
 
전시회에 걸려있던 신랄한 표현의 그림들 중 ‘더러운 잠’이 유독 제독님이 심기를 건드렸다면 그것이 어떤 미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인지 헤아려보는 지적인 태도, 또한 그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배경지식, 예를 들면 좋아하는
작가 3명과 싫어하는 작가 3명의 이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지성을 쌓으려는 노력은 어떻습니까.
 
 
배우고 또 익히면 또 즐겁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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