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는 참 먹는거에 까다로웠어. 부모님이 그러시는데 내 식습관은 평범한 애들이 "나 브로콜리 먹기 싫어!"라고 생떼 부리는 것 이상이었대. 아무것도 먹고 싶어 하지 않았다더라. 어린 나는 다른 아이들이 대개 좋아하는 치킨너겟, 스파게티나 핫도그까지도 싫어했어. 소아과 의사가 내 건강이 염려된다고 말할 정도였어.
당연히 내 성장에 문제가 있었어. 내 나이대의 평균 어린이 신장과 체중보다 훨씬 미달이었어. 다른 발달도 결과적으로 느렸어. "성장 장애"나 "튜브 삽입 식사"같은 단어들이 들리곤 했어. 결국 부모님은 내 살을 찌우기 위해서 매일 밤 영양분이 가득찬 고칼로리의 밀크셰이크를 강제로 먹도록 하셨어. 솔직히 말해서 그분들이 어떻게 이걸 참고 지내셨는지 몰라. 난 진짜 뭣 같은 애였는데.
밀크셰이크 식단은 내 유아기를 지나서 소아기까지 따라왔어. 다섯 살이 되었는데도 난 아직까지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어. 부모님은 저녁 먹기 싫다는 나를 벌주시려고 배고픈 채로 날 재우셨지만 아무 소용없었어. 나는 내 나이치고는 아직도 훨씬 작았고, 기아 상태 때문에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어. 나중에 들은 얘기로 부모님은 내가 너무 말라서 정부에서 날 데려갈 거라고 생각하셨대. 다행히도 의사들과 계속 내 상황을 주시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분들이 날 소홀히 대하거나 학대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어.
여섯 살이 되고 학교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정말 작았어. 억지 식단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성장하기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은 적이 없었거든. 결과적으로 나는 여섯 살인데도 세 살배기처럼 더디게 말하고 움직였어. 다시 말하지만, 부모님이 도대체 어떻게 버티셨는지 모르겠어.
1997년 9월 22일.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게 된 음식을 발견한 날이야. 엄마와 식료품점에 있었어. 내 연약한 다리로는 오래 걸을 수가 없어서 카트에 타고 있었어. 엄마는 굉장히 피곤하고 지쳐 보이셨고 엄마 얼굴에 가득했던 주름이 기억나. 조용히 카트를 끄시면서 어떤 것이든 간에 나에게 먹일 수 있는 걸 찾으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아.
그때 그걸 봤어. 잼 한 병. 이전에 잼을 먹어본 적 있는데 정말 싫었어. 그 질감, 끈끈함, 너무 강한 단 맛. 역겨웠어. 하지만 이 병은 여섯 살짜리의 눈에 뭔가 달라 보였어.
평범한 흰색 라벨에 "윌리슨 아주머니의 수제 잼"이라고 쓰인 유리병을 내 깡마른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뭐니, 아가? 뭐가 보이니?" 내 뻗은 손을 보는 엄마의 목소리는 얼굴 표정만큼이나 지친것 같았어. 내가 가리킨 병을 보시자마자 놀란 채로 날 쳐다보셨어.
"마크 아가, 이거 말이니?" 엄마 목소리는 간신히 흥분을 참고 있었어. "저거 먹어보고 싶은 거니?"
고개를 끄덕였어.
처음으로 엄마가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걸 봤어. 선반에서 잼 한 병을 집으시더라. 미소까지 지으셨어. 엄마가 그러는 걸 본 기억이 안 나는데.
다른 걸 살 필요도 없이 잼 한 병을 계산하고 가게를 나섰어. 날 재빨리 차로 데리고 가서 내 자리에 앉혀 주시고는 내 손에 경건하게 잼 병을 쥐어주셨어. 내가 처음으로 음식에 관심을 보인 거였기 때문에 굉장히 신나셨어.
내가 자란 마을은 350명 정도밖에 살지 않는 작은 곳이었어. 식료품점에서 집까지는 5분도 안 걸렸어. 사실 내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걸을 수도 있었을 거야.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잼 병을 손에 꼭 쥐시고 나를 서둘러 안으로 데리고 가셨어. 내가 곧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 듯 나를 상에 앉히시더라. 하지만 내 정신과 시선은 온통 그 병에 팔려 있었어. 내가 먹어본 다른 잼과는 전혀 같지 않아 보였거든. 덩어리가 많지도, 끈적하지도, 안에 씨가 보이지도 않았어. 지금도 그게 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내 마음을 잡아끌었던 것 같아.
"아가, 이거 먹어보고 싶은 거니?" 엄마는 잼 한 숟가락을 퍼서 내게 내미셨어. 진한 빨간색이었고 부엌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것 같았어.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받아 얼굴까지 올려 가까이 본 기억이 나. 엄마는 초조하게 기다리셨어.
천천히 혀를 내밀어 맛을 봤어. 첫 맛이 어땠는지는 묘사조차 할 수 없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걸 먹었을 때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분을 느꼈을 때를 합하면 내가 그 잼을 먹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대충 설명이 될 거야.
순식간에 한 스푼을 다 먹었고 조용히 더 달라고 했어.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엄마는 한 숟갈 더 내미셨어. 내가 다섯 번째 수저를 비우자 엄마는 대놓고 엉엉 우시면서 아빠한테 이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하려고 전화하러 가시더라.
그러는 동안 나는 잼에 매료되어 있었어. 아이였기 때문에 맛이 어땠는지는 설명해줄 수 없네. 하지만 다 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깊고 진한 맛이었어. 단맛과 감칠맛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맛이라고나 할까. 딸기나 라즈베리 맛은 아닌데, 그 둘을 섞은 거에 뭔가 짠맛이 조금 들어가서 감칠맛이 더 난다고 해야 하나? 요즘 사람들이 캐러멜에 소금 뿌려서 먹곤 하잖아. 단짠. 진짜 대단했어.
아빠는 퇴근길에 식료품점에 들려서 잼 한 병을 더 사오셨어. 그 후 2주 동안 나는 잼만 먹었어. 아침, 점심, 저녁으로도 먹고 밤엔 밀크셰이크 식단을 계속했어. 부모님은 정말 신나셨어. 이 음식을 좋아하게 된 게 다른 음식들도 좋아하게 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식료품점에 잼을 사러 갔는데 선반이 텅텅 비어있었어. 엄마는 패닉 상태에 빠지셔서 점원한테 윌리슨 아주머니의 수제 잼이 더 남아있는지 물어보러 가셨어.
"죄송해요, 재고가 다 떨어졌네요." 엄마는 내 쪽을 바라보시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어. "언제 더 들어오죠?" 점원이 고민고민하며 턱수염을 긁었어. "글쎄요. 음, 사실 동네 아주머니가 만드시는 거예요. 윌리슨 아주머니라고. 만들어서 우리 가게의 헥터한테 파시는 거죠. 이제 몇 병 별로 안 남았다고 하셨어요. 아드님 말고는 아무도 그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카트에 앉아서 점심때 먹을 잼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점점 짜증이 났어. 내가 툴툴거리자 엄마는 걱정스럽게 날 쳐다보셨어.
"윌리슨 아주머니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어떻게든 얻을 방법이 없을까요? 이 잼이 마크가 유일하게 먹는 거라서요."
다른 작은 마을 사람들이 그렇듯이, 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너무 잘 알고 있었어. 이 점원도 나한테 뭘 먹게 하려는 부모님의 노력을 잘 알고 있었지. 엄마를 되게 불쌍하게 생각했나 봐. 뒤편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아주머니의 주소가 적힌 송장을 가지고 나왔거든.
그날 오후 엄마와 나는 그분을 뵈러 갔어. 마을 끝자락의 전원주택에 살고 계시더라. 엄마가 문을 두드리자 젊은 여자가 나왔어. 약간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금발 똥머리를 한 체구가 작은 분이었어.
"무슨 일이시죠?" 그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어. 나중에 엄마가 해주신 말로는 뭔가 쓸쓸해 보이고 맥없어 보였다고 하셨어. 하지만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엄마는 절박하게 내가 뭔가를 더 먹기 바라셨기 때문에 얼굴에 미소를 지은채로 문간에 서있는 젊은 여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셨어.
"와, 정말 대단하네요!" 윌리슨 아주머니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소리치셨어. "아드님이 좋아한다니 참 기쁘네요. 집안의 오랜 제조법을 따른 건데 헥터가 잘 팔리지 않는다길래 저번 제품들을 망친 건가 했거든요."
엄마는 혹시 잼이 더 있냐고 물어보셨고, 그분은 집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한 박스나 되는 양의 잼을 갖고 나오셨어.
"이게 마지막이에요. 몇 병은 제가 갖고 있었는데 잘 팔리지를 않아서 다음 제품을 만들어야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정말 굉장해요." 박스 무게와 안도감 때문에 뭔가 축 늘어진 채로 엄마가 말씀하셨어. "도대체 뭐 때문에 아이가 이 잼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주머니가 웃으셨어. "제가 생각한 것만큼 망친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엄마가 돈을 드리겠다고 하지만 그분은 한사코 거절하셨어. 다른 누군가가 자기가 만든 걸로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하시면서 말이야. 열두 개의 병을 들고 우리는 집으로 갔어.
소중한 잼을 분량을 나눠서 먹는 게 싫었기는 했지만, 그때 받은 걸로 몇 달 동안 식사를 이어갈 수 있었어. 내가 일곱 살이 되고 몇 주 후에 시내에서 윌리슨 아주머니를 만났어. 그분은 엄마와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셨어. 둥글게 약간 튀어나온 배를 보이시며 우리 쪽으로 뒤뚱거리며 걸어오시더라고.
"축하드려요!" 그분이 가까워지자 엄마가 얘기하셨어. 아주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배를 쓰다듬으시더라. 나는 그냥 앉아서 혹시 잼을 더 주실 건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어.
"최근에는 못 만들었단다." 내 퉁명스러운 질문에 대답하셨어. "하지만 곧 만들 거야."
짜증 났지만 곧 체념했어. 엄마는 내가 보통 애들처럼 드디어 먹고 얘기해서 행복해하셨어. 내가 잼을 먹으면 어때. 뭐 어쨌든 뭐라도 먹긴 하니까!
몇 주가 더 지나자 잼이 다 떨어졌어. 식료품점에서는 잼을 더 이상 들여놓지 않아서 엄마와 나는 아주머니를 보러 갔어. 문간에 나오셨을 때 배가 더 이상 불러있지 않았는데, 다시 슬퍼 보이시더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잼을 받을 생각에 엄마가 대답하시기도 전에 나는 안으로 들어갔어. 나는 참을성있게 부엌 식탁에 앉아서 아주머니가 빵 한 조각에 잼을 펴 바르는 걸 봤어. 내가 빵을 집어 들고 야금야금 먹기 전에 의심스럽게 관찰하는 모습을 엄마는 진지하게 쳐다보고 계셨어. 다행히도 잼의 단맛과 감칠맛이 빵 맛을 덮어버렸고, 나는 신나게 그걸 먹어치웠어. 엄마는 이게 내 식습관을 이겨낸 새로운 승리라고 생각하시는 듯 안도감에 휩싸여 계시더라.
아주머니와 엄마가 얘기하시는 동안 나는 빵 몇 조각을 더 먹어치웠어. "사산"이라던가 "가슴이 아프다"는 단어들이 들리곤 했지만 잼을 먹느라 얘기는 잘 안 들렸어. 관심도 없었고. 우리가 떠나기 전에 엄마는 아주머니를 꼭 껴안으셨어.
그분은 그날 잼을 줄 수는 없지만 곧 주겠다고 약속하셨어. 나는 곧 잼을 더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른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갔어.
몇 년간 이런 방문은 계속됐어. 엄마와 아주머니는 뭔가 우정 같은 걸 쌓으신 듯했고 몇 달 간격으로 아주머니 댁을 방문해서 내가 잼을 먹는 동안 두 분이서 얘길 나누셨어. 마침내 엄마는 내가 다른 음식도 먹을 수 있는지 알아보시려고 다른 음식 위에 잼을 발라보셨어. 나는 잼 범벅이 된 닭고기, 소고기, 바나나, 사과를 다 먹어치웠어. 엄마와 아빠는 안도감에 엉엉 우셨어.
열두 살이 되었을 때쯤 나는 더 많은 음식을 먹었지만 아직도 잼에 의존하고 있었어. 만약 음식에 잼이 발려있지 않다면 나는 먹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잼 맛이 다른 맛을 다 가려버렸어. 다른 사람들이 케첩이나 그레이비소스를 먹는 것처럼 잼을 먹었어.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빨리 나이가 드신 것 같았고 잼 만드는 것도 느려졌어. 엄마와 나에게 잼 만드는 게 몸에 굉장히 힘들다고 하셨어. 과정도 길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언젠가 더 이상 나에게 잼을 만들어주지 못하시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더니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잼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어. 나는 미소 지었어.
열여덟 살이 되자 나는 음식을 더 잘 먹긴 했지만 아직도 그 맛이랑 질감이 싫었어. 아직도 아주머니가 주시는 잼만이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자의적으로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었어. 잼을 주시는 빈도는 일 년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지만, 붉고 진한 잼이 가득한 병을 볼 때마다 난 신이 났어.
고등학교 졸업 후 다른 주로 대학을 갔어. 하지만 집에 올 때마다 아주머니 댁에 들렸어. 나이가 들면서 굉장히 외로워지신 것 같았고, 남편은 어디에 계신 건지, 남편이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지기도 했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여쭤볼 때마다 아주머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고만 했어. 무슨 일인지는 잘 몰랐지만 아주머니가 만드시는 기막힌 잼이랑 상관이 있을 것 같았어.
내가 방문할 때면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항상 잼 몇 병을 손에 들려서 날 보내셨어. 대학에도 가져갔어. 이제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도 잼 말고 다른 건 먹기 싫었어.
몇 년이 더 지났어. 어릴 적 이상한 습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공적으로 멀쩡하게 자랐어. 데이터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물론 들리는 것처럼 지루한 일이야. 그리고 결혼도 하게 됐어. 처음에는 내 이상한 식습관에 짜증 내곤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그냥 음식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줬어. 뭐가 됐든 간에 그냥 음식이 싫다는 사실을. 잼을 뺀다면 나는 뭔가 행복을 위해서 음식을 먹지도 않았고 앞으로 먹지도 않을 거야. 아내는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 이제는 익숙해진 것 같아.
몇 주전에 부모님 뵈러 집에 갔었어. 당연히 몇 년 간 해온 것처럼 아주머니를 만나러 갔지. 훨씬 더 나이가 드셨고 세월이 참 가혹해 보이더라. 마치 몇 년간 짐을 진 것처럼 몸은 너무 약해 보였고,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시더라. 하지만 날 보곤 미소를 지으셨고 아내를 소개해 드리자 더 활짝 웃으셨어.
아내를 소개해 드리고 어떻게 지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 내가 떠나기 전 잼 한 박스를 주시더라.
"마크야, 미안하지만 이게 마지막일 것 같구나."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몸만큼이나 약해 보였고, 처음으로 아주머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50대 정도였지만 더 늙어 보이셨어. 내 삶에 너무나도 오래 계셨기 때문에 더 이상 아주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어.
"잼을 만들기엔 내가 너무 늙었단다."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어. "내 몸이 더 이상 따라주질 않는구나.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하지. 젊은이들에게 맡기는 게 더 나을 거야." 옅게 미소를 지으셨지만 딱 봐도 슬퍼 보이셨어. 잼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주머니의 깡마른 몸을 껴안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저를 위해 잼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아주머니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했어.
아내와 함께 내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아주머니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셨어.
그게 몇 주 전 일이었어. 오늘, 엄마께 전화 한 통이 왔더라. 주체할 수 없이 울고 계셨어. 엄마가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해했을 때는, 도대체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는 아직도 잠옷 차림으로 한 손에는 잼 토스트를 들고 부엌 식탁 앞에 서있었어.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대. 며칠 전에 돌아가셨지만 엄마가 방문하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대. 의자에 쓰러져 계셨다더라고.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대.
잼 토스트를 보자 멍한 기분이 들었어.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마크." 엄마가 흐느끼셨어. "뭐라고요?" 내가 물었어. "뭔데요, 엄마?" "세상에, 마크야... 경찰이 찾은 게.. 세상에, 정말 미안하다..."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흐느끼셨어.
결국 아빠가 전화를 받으셔서 경찰이 아주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 뭘 찾아냈는지 얘기해 주셨어. 아직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들아, 어디 앉아서 듣길 바란다." 아빠가 얘기하기 시작하셨어. "아무도 몰랐다고 하더라. 장담하는데 아무도 이 사람이 얼마나 정신 나갔는지 몰랐을 거야." 목을 가다듬으시고 애써 눈물을 참으시는 것 같았어. "그런 쓰레기를 지금껏 먹여와서 미안하다."
잼을 쳐다봤어. 내 소중한 잼을.
"경찰이 집을 수색했는데 지하 창고에 잼을 만들던 장소를 찾았다더라. 세상에, 아들아. 아이들이었단다. 젠장할. 애들이었대. 그 여자가 낳은 아이들."
아주머니의 수제 잼은 문자 그대로 직접 만드신 것 같았어. 내가 처음 잼을 맛보기 일 년 전에 임신을 하셨고 집에서 유산을 하셨대. 뭔가 신경쇠약이 심하게 왔고, 왜 그랬는지 누가 알겠느냐만은 아이, 태아, 그게 뭐든 간에 그걸 잼에 넣기로 했었나 봐. 열매랑 같이 요리했고 체에 걸러서 최종 제품에는 건더기가 없도록 한 거래. 그래서 잼이 항상 완벽하게 깨끗했고 씨도 없었던 거야.
한 회분을 만드는 데 오래 걸렸던 이유도 그거였어. 첫 번째 잼을 만들고 난 뒤에 임신을 했을 때 임신 중기에 유산을 해서 잼을 다시 만들어보기로 한 거야.
20년간 아주머니는 항상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며 사셨대. 근처 마을에서 매춘부로 일하면서 임신을 했고, 12주에서 20주쯤 돼서 "재료"가 충분히 커지면 낙태를 했던 거지.
1년에 한 회분만 만들 수 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어. 나이에 비해 너무 빠르고 심하게 늙으셨던 것도. 계속해서 임신을 하는 건 충분히 몸에 좋지 않을 테니까. 결국 아주머니의 몸은 잼 만드는 걸 계속할 수 없었어. 나에게 사실대로 말씀하셨던 거지. 50대 여성은 임신하기 힘들고, 아주머니도 예외는 아니었어.
부모님은 겁에 질리셨어. 수년간 나에게 이런걸 먹여온 거니까. 그동안 부모님은 이게 사람으로 만들어진 거란 걸 모른 채 행복하게 나에게 이걸 퍼먹이셨어. 내가 정상적인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하셔서 말이야. 엄마는 눈물을 펑펑 흘리시며 수화기 너머로 계속해서 사과하셨어.
전화를 끊고 내 앞에 있는 잼 토스트를 내려다봤어. 내가 지금까지 유일하게 즐겼던, 완벽하게 부드럽고, 단맛과 감칠맛이 완벽하게 조화된 진하고 빨간 잼을 말이야.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서서 잼 박스를 놓아둔 지하 창고로 갔어. 아주머니는 한 회분당 열 두병을 만드셨고, 난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배분해두고 있었어. 아직 열한 병이 남아있었어.
상자를 열어 조심스럽게 한 병 한 병 꺼내어 훑어봤어. 사산된 아기 조각이 보이기라도 할 듯 말이야. 상자 맨 아래에는 편지봉투가 있었어. 떨리는 손으로 그걸 집어 아주머니가 쓴 편지를 꺼냈어. 짧고 몇 마디 안 쓰여있었지만 나는 읽으며 미소를 지었어.
나에겐 항상 음식 문제가 있었어. 왠진 모르겠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크면서 그런 습관을 벗어나. 나도 어느 부분에서는 그랬어. 비록 먹는 게 즐겁지도 않았고 내가 견디기 힘든 맛이나 질감의 음식을 먹을 때면 역겹기도 했지만, 살기 위해서는 뭔가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
마지막 잼 병이 담긴 박스에서 찾은 편지봉투에는 아주머니의 선물이 담겨 있었어.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가졌으면 하셨던 것 말이야. 항상 그러셨듯이 나는 그분 삶의 밝은 부분이었고, 지금까지 날 위해서 이 일을 해주신 거니까.
위층에서 아내가 움직이는 소리가 지하실까지 들렸어. 요즘 아내는 자는데 문제가 있어서 늦게 일어나곤 하거든.
휘파람을 불면서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고 잼 병이 든 박스를 원래 있던 자리에 놨어.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서 부엌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요리하고 있는 아내를 봤어.
아내가 날 돌아보고 미소 지었어. 갓 깨서 그런지 머리는 부스스했지만 표정은 평화로웠어. 아직 입덧은 안 하나 봐. 그녀가 나에게 키스를 하자 맞닿은 배가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게 느껴졌어. 사실 저번 고향 방문은 부모님께 깜짝 임신 소식을 알려드리러 갔던 거거든. 이제 12주야. 그래서 주변에 얘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더라.
물론, 부모님은 정말 신나하셨어. 아주머니도 그러셨어. 그래서 나한테 제조법을 남겨주신 것 같아.
아내를 적당히 세게 밀면, 잼을 좀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