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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의 임금은 하루 먹고 하루 살기도 힘든 수준일까?
게시물ID : economy_228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ibertarian
추천 : 1/7
조회수 : 80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2/05 18: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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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의 임금은 노동의 한계생산물가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임금은 노동 한 단위가 생산하는 생산물의 가치와 같다. 한계생산물가치를 늘도록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투자효과를 통해 늘어나는 기계 등과 같은 자본재와 생산설비들이다.

 

이것들이 늘어나면 생산물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늘어나며,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이 생산하는 한계치가 늘어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명목임금도 오르게 된다. 무릇 자본주의의 시작인 산업혁명부터 현재까지 이런 방식으로 자본주의는 사회의 총체적인 부는 물론이고 노동자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을 꾸준히 향상시켜 왔다.

 

그러나 일부는 이렇게 되묻는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자본주의에서는 하루 먹고 하루 살기도 힘든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은가? 그들은 이렇게 물으며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나 혹은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한계주의 임금이론을 부정하고 나서며, 마르크스주의의 최저생계비설과 같은 임금철칙설을 들고 나오곤 한다.

 

우선 마르크스주의의 최저생계비설은 그 자체 내에서도 심각한 모순을 범하고 있지만(뵘바베르크를 통해서 본 마르크스 비판, p, 6.) 논의를 위해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을 것이며, 우선 이 글에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한계주의 임금이론이 왜 여전히 유효하며, 자본주의에서의 임금이 과연 생존하기에 부족할만한 수준인지 대한 설명에 주력할 것이다.

 

본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먼저 질문이 명확하지 않아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임금' 이라는 단어가 극도로 자의적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하루먹고 하루살기도 힘든 임금' 이라는 말마저 어떠한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닌 극도로 자의적이다.

 

한국에서 하루먹고 하루살기도 힘든 임금이라고 불리는 그 임금은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들에게는 꿈의 임금이지만, 동시에 이 북반구의 반대편에서는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그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그들의 임금으로는 하루 먹고 하루 살기도 힘들다며 임금을 올려달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최저임금이 생존에 부족하다면 인도나 에티오피아는 물론 체코나 브라질에서조차 대부분의 인구는 생존 불가능한 처지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만일 흔히 '하루먹고 하루살기도 힘든 임금' 이라고 언급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임금을 말하는 것이라면, 답변은 길게 갈 것조차 없다.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그리고 저임금 노동을 하며, 최저임금으로는 하루먹고 하루살기도 힘들다' 는 것이 '자본주의를 하는 모든 나라들 공통 현상' 이라는 주장은 그냥 잘못된 명제라서, 원인 설명이 필요하기는커녕 지지될 수조차 없는 주장이다.

 

미국만 해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5천원 정도 되며, 이는 한국보다 미국이 두 배 이상 한계생산물가치가 높으며, 그만큼 잘 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구매력이고 뭐고 다양한 각도에서 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사용하는 기준에 무관하게 한국의 두배 이상이다. 물론 미국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이걸 두고도 '이걸 갖고는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들다' 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만일 흔히 '하루먹고 하루살기도 힘든 임금' 이라고 언급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임금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사회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기준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으로만 산업혁명 시대의 인류보다 잘 사는게 아니다. 우리는 훨씬 더 좋은 문화생활도 가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은 뉴스랑 웹툰 같은 것들이 넘쳐나고 각종 커뮤니티에는 창작물을 만들고 교류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텔레비전에는 스포츠, 드라마, 만화 등 즐길거리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 정도이다. 중고가 아닌 이상 비싸봐야 수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책 같은 것들은 이제 경제적으로 부담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산업혁명 초기에 책이 얼마나 희소한 것이었는지 아는가? 오늘날 한국의 가장 빈곤한 노동자들조차 그때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들의 흔한 주장 처럼 우리가 점점 생존하는데 힘들어지고 있다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빈곤율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1975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2차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이 꾸준히 따라 올라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최근 20여년간 자유무역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전 세계의 중산층이 폭증하고 20억 명 이상이 가난과 기아로 인한 죽음에서 탈출했다는 세계은행과 IMF, OECD의 자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산업혁명 당시 1700~1800년대부터 세계 평균 1인당 소득 추이가 급증했으며 영국인들의 수명이 대폭 늘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람들의 기준이 높아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비하면 자신들은 먹고살기 급급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속에서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차이에 엄청난 재산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계층이동이 불가능하다거나 매우 어렵다거나 하는 소리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상속자가 아니라 창업자였다.

 

정부가 특정그룹을 밀어주는 한국이나 스웨덴같은 나라에서조차 가장 부유한 사람들 리스트를 한 30위까지 뽑으면 절반이상이 창업자이다. 소위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경우만 해도 그럴진대 노동자 계층 내에서의 이동은 당연히 더욱 유동적이다. 물론 10년간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계층이동이 힘들어지는 경향은 있었지만, 그것도 역시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으로 인해 기형적인 경제구조가 유지되다 보니 생긴 일일 뿐, 애초에 원인이 자유시장이나 자본주의에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만 아니었다면 자기가 무슨 두배는 넘는 실질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느니 하는 흔한 반자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전혀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 그들이 일종의 '소외' 라는 것을 느끼고 자신들이 '인간답지 못하게'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글: 최민석 (Students For Liberty Korea 회원)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과 같이, 자본주의에서 생산성과 임금은 둘 다 꾸준히 올랐다. 그들이 생존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임금은 생존이 안되는 임금이었던 적이 결코 없다. 설령 모든 한국인의 최저임금과 함께 실질임금이 지금의 15배쯤 되는 시대가 온다면, 그들은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하나씩 비행기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 15배 임금을 생존임금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암묵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에선 자본주의 체제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누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쯤 되면 정작 그들의 체제에선 현재 한국 최저임금의 1/10도 달성할지도 의문스럽지 않은가? 자본재 시장을 자유롭게 하여 현재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여 더 높은 임금을 누리기는 커녕 오히려 생산성은 폭락할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물론 그런 곳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베네수엘라랑 북한 보면 쓰레기통 뒤지면서도 사람은 살아가지 않는가.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투자효과로 한계생산성이 늘어남에 따라 끊임없이 대중의 생활수준이 올라간 기록이며 따라서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하는 계층의 존재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이라는 이야기는 적어도 그 저임금이 정량적인 기준을 통해 정의되는 한 그냥 틀렸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산업혁명 초기 노동자들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잘 산다.

 

산업혁명 초기는 커녕 1950년대 노동자들도 부러워할 만한 생활을 누리는 오늘날의 최저임금 생활자들을 두고 저임금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저임금' 의 개념을 상대적으로 정의하지 않는 이상 터무니 없을 것이다.

 

빈은 언제나 상대적인 개념이자 상대적으로 존재하며, 이 상대적인 빈은 재화의 희소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존재할 것이므로, 자본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시장 시스템이며, 시장 말고 그 어떠한 경제 시스템도 시장보다 더 좋은 결과를 창출할 수는 없다.



오스트리아 학파가 보는 자본주의하에 임금시스템이 왜 빈곤을 줄이고 왜 우리의 삶이 풍족해지는 설명하는 좋은 글인거 같습니다 

출처 http://lpkorea.org/column/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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