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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배신자로 불리는 왕족
게시물ID : freeboard_13101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14
조회수 : 1180회
댓글수 : 53개
등록시간 : 2016/04/29 17: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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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생년월일 : 1915년 12월2일(현재 101세)
왕실 직위 : 친왕
직업 : 동양사학자
경력 : 2차세계대전 일본군 육군 소좌



일본 극우파들 입장에선 빨갱이로 불리며 혐오 당한다.

왕족 군인.
일본 왕족 중에서 몇 안 되는 개념인.
게다가 일본의 전쟁범죄와 관련해서도 자유로운 사람이다.
다이쇼 덴노의 막내 아들로, 히로히토 4형제 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전쟁 전 일본군의 만행을 잘 알고 열띤 비판을 했으며,
전후에는 일본군의 악행(특히 난징 대학살)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서 그런지 731 부대에 재직할 시절, 이들의 악행에 경악해 몰래 수용자들을 중립국으로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어느 청년 장교들이 그에게
"지금 일본은 썩었습니다. 저희가 도조 히데키와 히로히토를 제거하고 전하를 덴노 자리에 올려드릴 테니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하자,
"그래도 반란은 안 됩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바로 윗 형인 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가
"그래, 네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지금의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부르더라도 후회하지 말길 바란다. 나의 사랑하는 동생아." 라고 말했다.

노부히토의 말은 현실이 되었고, 다카히토는 자신이
쿠데타를 벌였더라면 수많은 인명을 살렸으리라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기시 노부스케가 이 사실을 알고 이들에게
교수형을 내리려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덴노를 했더라면 일본군이 일으켰던 전쟁이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1915년에 출생한 사람으로, 2015년 현재도 살아 있다.
일본 왕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일화]
1950년대 후반부터 기원절(紀元節)의 부활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학자적 입장에서 진무 덴노의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여 반대하며 <일본의 새벽(日本のあけぼの)>라는 책을 간행했다.

빨갱이 왕자님이라는 별명을 얻은 건 이때.
주로 극우파인 이들은 다카히토 친왕을 극렬 비난하면서
그를 황적에서 파낼 것을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으며,
우익 단체는 미카사노미야 저택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있었다.

매체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행위에 대해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 한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2차례 가량 하였다.
이 발언으로 극우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군복무 시절에 지나파견군에 재직하고 있었음에도
1972년 중일수교 직전에 중국 정부의 초청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731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곳이 포로를 통한 생체실험을 진행하는 부대임을 알고
구출을 계획하였다.

그는 731부대의 책임자인 이시이 시로에게 야외실험을
하기 위해 포로를 데려가겠다고 한 뒤, 공항으로 군인
포로와 민간인을 인도해 비자를 발급해주고 탈출시켰다.

이때 그가 구출된 이들에게 한 말은,
“오늘 실험은 귀관들이 중립국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비록 이미 실험체로 쓰인 피실험자는 구출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포로로 끌려온 군인과 민간인들은 그 덕분에
살아남아 중립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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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료 출처]이종격투기
http://cafe.daum.net/ssaumjil/LnOm/1608261
글쓴이:연아는건들지마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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