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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르다. ‘성큼성큼’ ‘느릿느릿’ ‘저벅저벅’ 혹은 ‘또각또각’ 사람들의 걸음 걸이는 각기 가진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 야심한 시각의 골목길, 번화가에서 멀지 않은 까닭에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혹은 저마다의 사정에 의해 걷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발소리는 마치 어떤 리듬처럼 깊어진 밤을 위로 하고 있었다.
헌데 그 중 단 하나, 소리는 다르지만 같은 리듬을 연주하는 밤의 타악기가 있었다.
‘또각... 또각...’ ‘뚜벅... 뚜벅...’ ‘또각또각또각’ ‘뚜벅뚜벅뚜벅’
마치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듯 같은 템포와 리듬으로 걷는 두 사람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예의 깊게 주시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두 사람의 빠르고 또한 느리게 변주되는 리듬을 훑어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마치 도망자와 추격자를 연상시키는 두 사람의 기묘한 협연(協演)탓이기도 했지만, 후방을 흘깃거리며 점차로 빨라지는 걸음 뒤 보인 쫓는 이의 주머니 속 사정때문이기도 했다.
“주머니 속 저거... 칼? 어휴...”
그는 찡그린 표정으로 까페를 나서더니 이내 곧 그들의 연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또각, 또각, 또각” “뚜벅, 뚜벅, 뚜벅” “저벅, 저벅, 저벅”
세 사람의 발이 마치 합을 맞춘 듯 동일하게 그러나 다소 헐떡이며 변주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대로가 끝나고 비좁고 어두운 골목길에 접어든다. 확신 할 순 없지만 그 순간 리듬은 더욱 더 급박한 형태로 변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헉’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여자가 탄성을 내질렀다. 뒤늦게 한 밤의 음악회에 참여한 사내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CTRL_C, CTRL_V 해 놓은 듯한 음표의 구속에서 벗어나 돌연 달렸다. 그리곤 냅다 이 생면부지의 여자를 붙잡더니 말했다.
“수진아!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불러도 대답도 없고!”
친숙한 표정으로 묻는 사내와 달리 여자는 뒤쪽, 내내 자신을 뒤쫓던 사내와 지금 자신의 팔을 붙잡은 사내를 곁눈질하며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자 팔을 붙잡은 사내가 한번 씨익 웃더니 이내 속삭이듯 말했다.
“경찰입니다. 쫓기고 계시는 거 같길래... 맞으면 고개만...”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도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슬쩍 돌아보니 어느새 뒤를 쫓던 협연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제야 안심이 됐던지 쫓기던 여자도 숨을 고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기 사거리부터 계속 쫓아오더라구요. 무서워서 혼났어요. 그나저나 어떻게 아셨어요?”
“큰 일 날 뻔 하셨네요. 뒤에 오던 그 남자... 확실하진 않지만 주머니 속에 칼처럼 보이는 것이 번쩍이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따라왔습니다.”
“아 역시... 경찰이시라 틀리시네요. 고맙습니다. 그럼 전 이만...”
여자는 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고개숙여 인사하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사내가 말했다.
“그냥 가시게요?”
“네? 왜...?”
“아까 그 인간... 혹시나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해서요. 혹시 집에 가족 분들 중에 나와주실 수 있는 분은 없나요?”
그의 말에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았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생겨버린 두려움은 모든 것에 불안한 감정을 부여했고 그녀의 안색은 점차로 어두워졌다.
그리곤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없어요. 호... 혼자 살거든요.”
“집은 어디?”
“신림동이요.”
“신림동 대략 어디쯤이시죠? 가까우시면 빨리 가시는 것도 한 방법이니까요.”
“아... 아니요 그렇게 가깝진 않아요. 신림동 원룸촌 있는데 ㅇㅇ원룸이라고... ㅇㅇ마트 뒷 편 동네인데... 십분도 넘게...”
“아 그러시구나. 그럼 요 앞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 그게 좋을 것 같네요. 물론 바쁘시지 않다면요. 늦은 밤 여자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은 대게 참을성이 없는 편이거든요. 어때요?”
“아... 감사합니다.”
“고맙긴요. 대신 제 커피까지 그 쪽이 계산해 주셔야 되요. 무리한 부탁 아니죠?”
“무... 물론이죠! 정말 감사합니다. 도와주시고 신경 써 주시고...”
두 사람은 마침 불이 켜져있던 골목길 끝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크진 않지만 아담했고 그녀가 커피를 들고오자 대화는 계속 됐다.
“좋은 분 같아요.”
그녀가 호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자 사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요? 오해에요. 저는 이게 일이니까. 일...”
“그 사람은 갔을까요?”
“아마도요. 범죄수사학적으로 미니멈 3분, 맥시멈 10분. 물론 특별한 원한 관계가 있다거나 하는 예외는 있지만요. 그 쪽은 아니죠?”
“물론이죠. 원한이라뇨. 그... 그런거 없습니다.”
“그럼 걱정마세요. 그치만 좀 불안하죠?”
“네... 솔직히...”
그때였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테이블 위에 놓여진 두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괜찮아요. 확인하세요.”
“네... 커피 주문하면서 급하게 아빠한테 문자 보냈거든요. 혹시 와줄 수 있냐고.”
“다행이네요. 저도 원래 오늘 일이 있거든요 주문하시는 동안 친구한테 일이 생겨서 좀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이제 답이 왔네요.”
두 사람은 각자 문자를 확인했고, 먼저 일어선 것은 사내였다.
“가시죠?”
“네?”
“시간도 됐고.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약속이 있어서요. 10~15분 정도 거리라니까 빨리 모셔다 드리고 가는게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십여분 남짓 걷자 무성한 원룸촌 속, 그녀의 걱정대로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외진 건물 하나가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 켜진 거 보니까 아버지가 벌써 오셨나봐요.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어서 올라가세요.”
“네.”
여자는 재차 고개를 숙이며 인사 한 후 계단을 올랐다.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센서등이 켜지고 또 꺼졌다.
하지만 그 순간, 평온해야 할 심야의 원룸 오피스텔 안이 쿵쾅대며 북적인다. 무얼까? 미지의 소리에 그녀가 채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전, 아직 열쇠도 꽂지 않은 문이 벌컥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얼굴 하나가 튀어 나왔다.
“아빠!”
“으... 은주야!”
아버지는 쓰러졌고 그의 등엔 커다란 칼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놀란 그녀를 바라보며 웃는 사내, 문득 그녀의 뇌리 속에 조금 전 자신을 뒤쫓던 같은 발걸음의 사내가 떠올랐다.
“당신 설마 아까 그...”
애꿎은 조우의 시간은 길지 못 했다. 그가 손을 뻗었고 그녀는 놀라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우당탕’ 가녀린 몸뚱이가 계단을 내리 굴렀다.
누구하나 나와보지 않기에 들리는 것은 오직 아버지의 애절한 외침 뿐이었다.
“도망쳐 은주야. 헉!”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은주는 입을 틀어 막은 채 계단을 뛰어 내렸다.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고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어찌나 놀랐던지 그 흔한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꺽’ ‘꺽’ 거리는 소리만이 목구멍을 넘어 토해졌다.
그렇게 겨우 당도한 오피스텔 입구, 낯익은 얼굴 하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다.
조금 전 함께 커피를 마셨던 사내다. 스타킹이 찢어지고 계단을 구르며 다쳤던지 다리를 절룩이는 그를 보며 그도 소리쳤다.
“무슨 일이에요!”
“그... 그... 그.. 놈이...”
복잡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우당탕탕 시끄러운 발소리와 함께 사내 하나가 그녀를 쫓아 뛰어 내려온다.
그리곤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야 씨.발.놈아. 혼자 산다며? 뭐해 그 년 안 잡고!”
"따로 연락 안 했다고 노인네 하나 처리 못해? 괜찮아... 경찰이라고 그랬거든."
사내가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뚜벅뚜벅' '저벅저벅'
박수치는 청중 하나 없는, 완벽한 협연(協演)이었다.
찢어지는 비명마저 손아귀 속에 묻혀 버린, 완벽한 협연(協演)이었다.
협연(協演)
끝.
출처 | 웃대 어리연 님의 글 '빨간모자'를 리메이크 해봤습니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st=name&sk=%BE%EE%B8%AE%BF%AC&searchday=all&pg=1&number=64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