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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해바라기 이야기
게시물ID : readers_131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가그놈
추천 : 0
조회수 : 24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5/21 08:53:06
0.
 
평상시와는 다른 길로 하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갔던 강둑길에 들어섰을 때, 잡초들 사이로 단 하나의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고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가 기묘해서 일까? 난 오랫동안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 후 방과 후에는 꼭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곳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
 
1.
 
선배님은 낮을 그리지 않으시네요?”
 
다 써버려서 나오지 않은 튜브물감을 짜고 있는 나에게 후배가 말을 걸어왔다. 처음보는 후배였다. 하지만 이상할 것은 없었다. 워낙에 과 생활을 안 하니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평상시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서 일까 깜작 놀라서 튜브물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허둥 거리면서 튜브물감을 줍고 있는데 후배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여왔다.
 
낮도 잘 그리실 것 같은데 밤이 그렇게 좋으세요?”
 
후배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나는 시선을 캔버스로 옮겼다.
 
아냐, 태양이 싫을 뿐이야.”
 
내가 생각하도 너무 딱딱하게 말했다. 워낙에 다른 사람과 소통이 적어서 이렇게 가끔 소통할 기회가 오면 나도 모르게 온 몸이 굳어 버리고 만다. 튜브를 짜는 손에 땀이 흥건하게 적셔 와서 잘 짜지지 않는다.
 
그래도 왠지 조금 아쉽네요. 전 태양을 좋아해요.”
 
후배도 한 말이 없는지 마지막 말을 웃으면서 하고는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갔다. 나는 다시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리기 시작했다. 밤은 계속해서 캔버스 위에 솟아났다.
 
 
2.
 
9월이 끝나갈 무렵 강둑에 있는 해바라기는 결국 져버리고 말았다. 해바라기는 강둑 아래로 떨어졌고 나는 다행히도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바라기는 떨어져서도 태양을 보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까지 봐야 한 다는듯한 모습에 나는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나도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쳐다봤고 눈부심에 고개를 내리고 말았다.
 
 
3.
 
여름의 대학교 교정에는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풀과 나무들은 가득 피어서 겨울의 교정의 모습은 마치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만큼 교정에 사람들이 가득 차게 된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지나가는데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선배! xx선배님!”
 
몇 번이나 말을 걸어 준 후배의 익숙한 목소리다. 딱딱하게 굴 수 밖에 없지만 후배는 나에게 언제나 고마운 존재였다. 나는 곧 돌아 봤고 후배는 해바라기를 들고 있었다. 해바라기는 죽어 버린 채 후배의 품안에 있었다.
 
선배님! 해바라기 좋아하시죠? 오다가 보이길래 선배님 드릴려고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분노는 곧 수많은 음절로 어절로 단어와 문장으로 변해서 내 목구멍을 곧 뚫고 나올 것 같았다. 격해진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 때 내 표정은 어땠을까? 날 바라보던 후배의 표정이 웃음에서 울음기 있는 표정으로 변하는 것 까지 몇 초 걸리지 않았으니 아마 끔직 했을 것이다. 나는 후배를 버려두고 교정을 빠르게 뛰어 갔다.
 
4.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성욕을 풀었다. 분노가 성욕으로 바뀌고 나는 주체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후배를 몇 번이나 괴롭혔다. 꺾인 해바라기의 줄기 같이 나는 너덜 해 졌다.
 
사실 나는 후배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성욕으로 가득 찼을 뿐이었다. 성욕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해바라기 때문인지 혹은 후배 때문인지.
 
역겨운 내 모습에 변기에 토를 하고 나서야 진정 할 수 있었다. 강둑에서 해바라기를 본 이후 처음으로 나는 자위를 했다. 화장실 타일 벽면 내가 그린 해바라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후배를 그리기 시작했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후배를 그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5.
 
그 후 후배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또한 후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후배는 어색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나에게 다가오려고 했지만 결국 나에게 발을 돌리고 말았다. 그 발걸음 그림자 위로 꽃들이 시드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 9월이 끝나고 후배의 그림자는 완전히 시들어 버려서 겨울을 맞이한 꽃처럼 완전히 내 주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니 완전히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6.
 
없다고요?”
 
겨울이 완연히 다가오고 모든 싱그러움이 사라져 버린 12. 나는 후배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걱정으로 과사무실에 물어 보러 갔을 때 아무소식을 접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애는 학과에 있었던 적이 없다는 일방적인 이야기만을 들을 수 있었다. 학과 사진첩에서도 후배와 닮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에게 까지 물어 봤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음침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헛것을 보는 정신이상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내가 헛것을 봤던 것인지 모르겠다. 난 확실하게 봤고 후배를 느꼈다.
 
나는 집에 들어와서 후배를 그렸던 캔버스를 봤다. 그 곳에는 어두운 길거리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가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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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수줍게 단편 하나...헤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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