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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의 가족은 슬로바키아 출신이에요. 식구들은 할머니를 바브카라고 부르더군요. 아마 슬로바키아어로 할머니라는 뜻이겠죠. 처음 가족 모임에서 그분을 봤을 때, 그분은 흔들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까딱거리고 계셨던 기억이 나요. 어느날 시누이가 공포에 질려 전화를 했을 때 저는 첫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바브카가 치매 같은 걸 겪고 있다는 건 알았어요. 조용하게 미소 지으시는 거 빼곤 다른 가족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으셨어요. 언젠가는 연락이 올 줄 알았지만, 이런 종류의 연락은 아니었어요.
시누이는 바브카가 밖에 나갔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분을 본다면, 다시 전화해 달라고 했어요. 가까이 가지도 말고, 어디에 데려가지도 말고요.
이상하지만 우리는 알겠다고 했어요.
그날 오후에 임산부 비타민을 사러 나가려고 했어요. 남편이 차 키를 가져와서 문을 열었는데, 그분이 차 뒷좌석에 앉아계시더라고요.
바브카는 150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분이셨어요. 가장자리가 밝고 화려하게 꾸며진 검은 옷을 입곤 하셨죠. 얼굴은 깎고 버려둔 사과 껍질처럼 자글자글 주름이 지셨어요. 마치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하나도 없는 이빨을 내보이며 미소 짓고 계시더라고요. 하지만 이 상황 자체가 문제였어요. 일단, 저희는 타지 않을 때는 이 차를 잠가두거든요.
사랑스러운 손자인 제 남편은 차 문을 열고 그분께 여기서 뭐하고 계신지 묻더라고요. 바브카는 의사와 약속이 있는데, 데려다줄 수 있냐고 했어요. 남편은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하지만 결국 넘어가더니 딱 한 번만 도와드리겠다고 했어요. 그러곤 바로 집에 오겠다고요.
차에 탈 때도 뭔가 거리낌이 느껴졌어요.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내 아이들의 아빠 될 사람이 지금까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이상한 노파를 데리고 차를 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안전벨트를 맸어요.
바브카에겐 제 존재가 방해되는 것 같았어요. 남편이 운전하는 동안 계속해서 남편의 어릴 적 기억에 대해 물으시더라고요. "여름에 놀러 왔을 때 기억나니?" "삼촌이 나무로 말 조각을 만들어 준 거 기억나니?" 남편은 그녀와 함께 기억을 훑으며 꿈꾸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그때 우리는 병원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바브카는 어떤 위치도 말한 적이 없고요. 어이가 없어서 지금 어디 가고 있는 건지 물었죠.
바브카가 조용해졌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슬로바키아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남편은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 사람이에요.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볼 수 없을 정도로 슬로바키아어를 못 해요.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더듬지도, 멈추지도 않고 바브카와 대화를 하더라고요.
창고 같은 곳 앞에 차가 멈췄어요. 이게 뭐냐고 물었지만 또 무시당했어요.
남편은 길고 구불구불한 저장고를 따라 차를 몰았어요. 바브카는 뭔가 격려하듯 중얼거리고 있었고요. 그동안 저는 제 부른 배를 구명정처럼 잡고 있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간 문이 있는 맨 앞 창고에 멈춰 섰어요. 저는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하지 못했지만, 바브카의 목소리 톤으로 봐서는 곧 나올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남편은 그냥 웃더니 끄덕이더라고요.
창고 문은 30 센티미터 가량 열려 있었어요. 바브카는 몸을 숙이더니 도마뱀처럼 틈새를 기어갔어요.
저는 남편에게 강압적으로 묻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우리는 어디 있는 건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건지를요.
남편이 저를 조용히 시켰어요. 바브카가 곧 돌아올 거라면서요. 저는 사투 끝에 그의 핸드폰을 뺏어서 시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시누이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묻더군요.
남편은 쾌활한 목소리로 가게에서 임산부 비타민을 사고 있다고 했어요.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남편이 바브카를 이상한 창고로 데려왔고, 누가 됐든 제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설명 좀 해달라고도요.
남편은 화를 냈어요. 우리는 가게에 있는데 왜 거짓말을 하냐고요.
수화기 너머로 시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돌아가야만 했어요. 지금 당장.
제가 내려서 걷겠다고 남편을 윽박지르기 전까지 그는 차에 시동 거는 것도 거부했어요. 제가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필요한 것보다 더 천천히 돌아서 나가더군요. 정문이 보이자마자 제가 핸들을 확 꺾어버렸습니다. 본가로 가는 내내 남편은 시무룩한 상태였어요. 저는 혹시 백미러에 노파가 나타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계속 뒤를 돌아봤습니다.
시누이가 드라이브웨이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전벨트를 풀기도 전에 그녀가 안도하는게 보였어요. 남편은 덩치 큰 사촌과 삼촌들에 의해 끌려갔습니다. 시누이는 제 손을 잡더니 할 얘기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차를 한잔 끓여주며, 시누이는 그들의 조부모님이 항상... 음, 좋은 분들은 아니라고 했어요. 손주들에게는 좋은 분들이었지만요. 아무튼, 나이가 들자 상태가 안 좋아지셨고, 뭔가 그분들께 씌었대요. 할아버지가 먼저였다고 했어요. 그분을 상대하느라 삼촌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때 남편은 너무 어려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고, 그래서 경고도 허투루 들은 거라고 했어요.
시누이는 뱃속의 아기는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그들이 저를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래요. 시누이에게 고맙다고 했어요.
그리고 혹시 누가 창고에 가서 바브카를 데려올 거냐고 물어봤는데, 시누이의 표정이 이미 대답을 하고 있었어요.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섯 시간 후에 남편을 보게 해줬는데, 무슨 의식을 치른 것 같았어요. 그를 묶어놓고 귀에서 뭔가 빼냈다고 하더라고요.
이빨을요.
그 이후로 남편은 사흘 내내 잤어요. 일어나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 하더군요. 그이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제가 감기 걸린 자기에게 비타민을 사 오라고 했다가 가게에서 기절한 얘기를 농담처럼 해요. 그냥 그렇게 내버려 뒀어요. 아이들에겐 밝은 색 가장자리가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노파를 보면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들에겐 바브카가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