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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사들고 집에 오는 길
게시물ID : freeboard_13123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쫓는개
추천 : 0
조회수 : 1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07 15:52:22
내가 쓰는 낱말들이, 왠지 이름표가 붙은 잔처럼 보일 때가 있다. 
좌절은 좌절이라는 잔이고, 절망은 절망이라는 이름의 잔이다. 
내가 너에게 절망, 회의, 빠져나올 방법이 보이지 않는 심연에 대해 얘기하면 
낱말들이 담고 있던 알딸딸한 것을 너에게 부어주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의 절망이 너의 절망이 아니듯, 
내 잔에 담긴 알딸딸한 것이 너의 잔을 가득 채우지는 못한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나의 절망을 가득 담고도 너의 잔이 모자라서 
그 알딸딸한 것들이 밖으로 쏟아지는 일이다. 
나는 나의 절망을 모두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탁상 위에 넘쳐버린 저 알딸딸한 것을 보면서 나는 많이 아쉬워한다. 
그리고 너는 지금 너의 잔 속에 담긴 그 알딸딸한 것을 보며 
그것이 나의 모든 절망이라고 슬퍼하며, 우리는 건배한다. 
나는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너의 눈을 보면서 잔을 부딪힌다. 
고개를 까딱 뒤로 젖히고서 탁 내려놓은 너의 잔을 가만히 보게된다. 
그 텅 빈 잔에다가 나는 다시 나의 슬픔을 채워넣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빈 잔으로 두기로 했다. 
  
그렇게 몇 번의 건배를 하고, 그 날이 끝날 무렵이 되서야 
다시 집에 와서 침대에 눕는다. 
깍지를 끼고 뒷통수에 대고서 한참을 누워있다보면, 
다시 몸을 일으켜서 
다른 누군가와 한 잔 더 할 수는 없을까  
하고 바라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여 
집 앞의 아무 편의점이나 들러 
맥주를 사들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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