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디포의 장편소설 ‘로빈슨 크루소’(1719),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상집 ‘월든’(1854), 리들리 스콧의 영화 ‘마션’(2015)은 작품이 나온 시대와 표현 형식이 모두 다른데도 공통점이 많다. 우선 세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각기 섬과 숲과 지구와 연락이 두절된 혹성에 홀로 고립되어 있다. 인간을 가장 순수한 형식으로 자연과 맞서게 한 세 작품에는 사회도 가족도 없다. 이들의 유일한 생존 수단은 자조(自助ㆍself-help)뿐으로, 이들의 고귀한 특징은 스스로를 구할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프랑스 비평가의 말에 따르면, 고립무원의 상황을 은총으로까지 여기는 이들은 “매일매일의 노동을 통해 에덴동산을 재건한 아담과 흡사하다”.
섬과 숲과 혹성(화성)에서 벌어진 별개의 사태를 하나의 시각으로 묶어준 것은, 뒤늦게 읽게 된 이원석의 ‘거대한 사기극’(북바이북, 2013) 덕분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오늘날 그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신흥 종교로 등극한 자기계발과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세계관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파고들면서, 자기계발이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성황을 이루게 된 이유를 분석한다. 지은이는 자기계발 논리가 개신교 윤리의 세속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면서, 그 시원으로 칼뱅의 예정론을 꼽는다. 신이 누구를 구원하고 말지는 미리 예정되어 있으나 내가 그 속에 들어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는 칼뱅주의 특유의 모호한 예정론이 “근면과 금욕을 통한 현세에서의 성공은 내세에서의 구원의 증거(보장)”라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낳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 종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디포가 강경파 칼뱅주의자들의 분파인 영국 청교도였으며, 소로 또한 청교도와 깊은 교류 끝에 생겨난 미국 초절주의 철학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디포와 소로의 삶과 사상이 근면과 금욕을 통해 신을 향한 자신의 신실한 믿음을 흔들림 없이 다지고, 지상에서 이룩한 부의 성취가 곧바로 구원의 확증이 되는 칼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근면과 금욕을 내세우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기계발을 강박적으로 강요하는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를 낳은 사상적 온상이라면, 청교도가 영국 정부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신세계의 미개척 상황이야말로 자기계발을 세속화시킨 비옥한 토양이다. 초창기의 미국 개척민들에게는 자신을 지켜줄 국가도, 변변한 사회도 없었다. 외부 조력자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개척민들은 ‘스스로 도운다’라는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를 신성시하게 되었다. 소로가 13년 동안 서신을 주고받았던 어느 친구에게 “누구나 이 세상에서 홀로이며, 따라서 누구의 소개 편지도 없이 홀로 신과 마주할 것”을 충고했을 때, 거기서 울려 퍼지는 것도 미국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자기계발 메시지다.
미국에서 세계로 퍼져나간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는 사회적으로 인프라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미국이라는 특정한 환경”에서 탄생했으며,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는 “구조에서 개인으로 초점을 돌리게 만들고, 개인에게 무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에서 명백한 사회적 세뇌요, 책임 회피다. 지은이는 한국에서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를 현재의 신자유주의 상황이 미국의 미개척 상황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안전망과 연대가 강화되지 않는 한, 불안 대신에 확신을 찾으려는 개별적인 노력이 ‘닥치고, 자기계발!’에 몰두하게 한다.
자기계발은 일개 사원에게 사장의 마인드를 갖게 하고, 무한경쟁을 내면화시키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에 알맞은 주체를 주조한다. 자기계발에 빠져들면 들수록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게 되는데, 이 역시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책이 선호하는 사고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효과는 “새로운 유형의 지배계급이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신흥 엘리트(금수저)들은 날 때부터 3루에 가 있는데도, 자기 노력으로 거기에 갔다고 대중을 우롱한다. ‘자기계발’의 가장 흔한 미국식 표현이 ‘self-help’라는 것을 사족으로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