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민이라기 보다는 그냥 넋두리입니다. 이제 다시 일 구하려고 이력서랑 자기소개서 정리하는데 일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근데 제가 이걸 어디에 제대로 말한적은 한번도 없더라구요. 긴 글 지루하신 분들은 그냥 뒤로가기 누르시길 바랍니다. 나이 한 살 더 먹은 애의 넋두리입니다.(긴 글이 될 것 같아 그냥 앞으로는 말을 편하게 쓸게요.)
치위생과 들어가서 삼년동안 죽어라 학교를 다녔다. 마지막 국시 준비할때는 차라리 수능을 다시 볼까 싶은 마음으로 실기, 필기 준비하고 죽어라 공부해서 치과위생사 먼허를 획득했다.
국시 끝나고 바로 돈 벌고 싶어서 치과를 알아보고 동기들보다는 그래도 빠른 편으로 취직하고 나서 2014년 초부터 일을 시작했다. 학교성적도 괜찮은 편이었고 3년 동안 치과 실습, 치과 알바를 하면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적이 없어서 나름 자신감도 있었던때였다.
그 해 초에 내가 들어가니 원장님 한 분에 나를 포함 직원 네명. 기존에 있던 직원 세 분은 치과위생사 두 명, 간호조무사 한분. 네 명이라기에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을 줄 알았다. 근데 하루 환자 수가 평균 50명을 웃돌았다. 치과에서 일하지 않으면 감이 잘 안오겠지만 원장님 한 명에 환자 수가 50명이면 정말 많은 것이다. 내가 알바를 했던 치과는 원장님 한분에 직원이 총 다섯 명 거기에 알바생인 나까지 있었다. 그런데 하루에 평균적으로 오는 34명의 환자를 데스크 선생님을 제외한 다섯 명이서 앉을 틈도 없이 뛰어다니며 진료를 했다. 내가 실습했던 치과는 하루에 많아야 삼십 명이었으니 이 치과의 육십 명이란 숫자가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네 명이서 그 50명의 진료를 다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일을 시작하고 3일째 되던날, 나보다 한 살 많은 치과위생사 선생님이 그만두겠다고 원장님께 얘기했다. 놀란건 나뿐인듯. 다른 치과위생사 선생님과 조무사 선생님은 이미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그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사실 그 3일 있었던 때에도 그만 두겠다는 선생님과 나머지 두 분의 사이가 안 좋은게 확실히 느껴져 그냥 세 사람의 트러블로 관두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분이 그만두기 직전에 그러시더라. ‘원장님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끌어낼 줄 아신다.’ 그렇게 그 분은 그만 두고 치과를 떠나셨다. 솔직히 나는 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이었기에 그 분이 그만둔다 얘기했을때 바로 경력직을 구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분이 그만두기 일주일 전, 아니 사람이 그만두고 2주가 지나서도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 한 줄을 안 올리셨다. 원장님이 사람도 안 구하고 나는 바쁘게 치과에 적응하는 사이, 그만 둔 선생님의 일은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정말 구렁이 담 넘어가 듯,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일 시작한지 한 달도 안되어 나에게 두 사람 몫의 일이 떨어졌다.
처음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데스크 직원이 따로 없어서 50명 이상의 환자의 접수, 진료, 수납까지 전부 네 명이서 하던 것을 세 명이서 하게 되고 더군다나 진료일도 따라가지 벅찬 나에게 진료 외적인 일까지 붙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원장님은 사람이 그만둔다고만 말했을 뿐 인수인계를 어떻게 하라는 조치 한마디 없었고 원장님이 관심이 없으니 아무도 인수인계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인수인계에 대해 말 한마디 듣지도 못 한 채 그 선생님의 일을 다 떠안은 것이다. 그 선생님의 일? 이 치과가 특이해서 그 일이 내게 온 것이지 다른 치과는 최소 4, 5년을 일을 해온 실장님들이 맡는 일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하니 일을 하게 되더라. 그 때는 힘들어도 그 일, 정말 다 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진료시간 내내 환자 다 보고 바쁘다고 기구 씻을 시간도 안줘서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반도 안 먹고 기구 씻고 소독하고 쉬지도 못하고 차트 정리, 환자 예약표 정리, 보철물 정리 등 다하면 오후 진료 시작하고. 너무 바빠서 치과 들어가서 끝날 때까지 화장실 한번 못 간 적도 수두룩했다.
그 선생님이 그만두고 나서 한 달 반 만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실습생이. 치위생과 실습생이면 그러려니라도 하겠는데 간호학원을 다니는 간호조무사 실습생이 왔다. 그 앨 보는 순간 갑갑하더라. 치과위생사가 면접을 보러 오지 않은 것도 아닌데 원장님이 왜 그 실습생을 뽑은 것인지 정말 묻고 싶었다. 그래도 일단 치과에서 일을 하기로 한 이상 누군가는 그 아이에게 치과 지식을 가르쳐야만 했다. 근데 그것도 내 일이 되더라. 다른 두 선생님은 이 치과에 왔던 직원만 몇 명인데 라며 질린다는 표정으로 아무것도 가르쳐주질 않더라.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그 실습생을 붙잡고 정말 기초부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내 일 하나 제대로 맡길 수 없더라. 그 실습생에게 시킬 수 있는 거라곤 오직 기구 씻는 것 뿐. 환자를 보아도 그 실습생이 뭘 알겠나. 결국 옆에서 하루 종일 붙어서 모든 뒤처리를 내가 했다.
그 때쯤 부터였다. 그래도 내 일이니 힘든 티 내기 싫어 군소리 없이 다 했더니 그런 내가 예뻐보였나 보다. 다른 환자들이나 직원들 앞에서 내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 두 분이 내게 등을 돌렸다. 아침에 인사도 안 받아주고 전에는 혼자 일하면 그래도 도와주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일하든 말든. 내가 점심을 대충 먹든 쉬지도 못 하고 일하든 신경도 안 쓰더라. 차라리 거기까지면 다행이다 싶었다. 모든 실수를 나에게 뒤집어 씌우기 시작했다. 차트 잘못 적은거 나 아니냐 따지고 돈 잘못 받은 거 너 아니냐 따지고 실수 하나라도 하는 날엔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실수야 내 잘못이니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 앞에서 차트 던지며 눈 똑바로 뜨라며 소리를 지르면 그 때는 정신이 아득해져 오더라.
그래도 참았다. 아직 일 시작한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았고 여기서 포기하기엔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 같아서. 그렇게 두 사람의 무시와 왕따에 지쳐갈 무렵 실습생은 떠났고 다시 직원은 세 명이 되었다. 세 명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의 인격모독은 더욱 심해져 가고 그 때부터 였다. 잠이 많아서 밤에 머리만 대면 5분 안에 잠드는 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뒤척이며 잠을 설치는 게. 어렵게 잠이 들어도 중간에 꼭 한번 씩 깨더라. 무엇을 먹던 먹은지 10분 내로 속이 쓰리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나중엔 뭘 먹어도 토하게 되더라. 결정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게 생리가 멈췄다. 중학교 이후로 단 한번도 거르지 않았던 생리가 멈췄다. 생리는 멈추고 두통은 이틀에 한 번씩 찾아왔다. 어떤 날은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아픈 머리 붙잡고 일은 해야되니까. 티 안내고 그냥 일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아프면 환자-라는 말을 조금만 일찍 들었으면 좋았을걸. 멍청하게 그걸 다 참았다. 누구한테 힘들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 원장님은 그런 내가 맘에 들었는지 이제는 다른 두 명의 맘에 안드는 점까지 내게 얘기해가며 이 직원은 이런 행동을 해서 맘에 안 드는데 너는 그러지 않아서 좋다. 저 직원은 몇 번을 말해도 고쳐지질 않는데 너는 알아서 일하니 좋다. 나중에는 다른 선생님이 좋지 않으니 해고시켜야 되겠다는 얘기까지 내게 하더라. 그 모습에 원장님이 지금은 나를 잘한다 해도 뒤돌아서 저렇게 내 욕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 그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내가 힘들다는 것을 친구들한테도, 가족들한테도 보이기 싫더라. 술은 마시고 싶은데 그 모습 보이기 싫어서 집에서 조금 떨어진 편의점에 맥주 캔을 사서 인적 드문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자동으로 눈물이 나고 그러면 울면서 술을 마셨다. 대학교 다닐 때도 안 마시던 술을 매일매일 그렇게 몰래 마셨다.
결국 그렇게 참다 참다 힘겹게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개인사정으로 그만두겠다라고. 원장님은 갑자기 내가 그만두겠다니 말리지만 더 이상 그 치과에서 그 인격모독을 받아가며 그 많은 일을 하기엔 정말 내가 죽겠다 싶었다. 매일 일 끝나고 나 남겨두고 설득을 하는데 참아야지 하던 것을 안 참아야지 하는 순간 무슨 말을 해도 설득이 되질 않더라. 그렇게 그 치과를 그만 둘 줄 알았다.
어느 날 유독 내게 심하게 굴었던 선생님이 와서 하는 말이 ‘원장한테 내가 왕따 시킨다고 했냐?’-였다. 원장님이 어떻게든 나를 붙잡겠다고 한게 그 선생님 불러다가 잘 다독거리라는 거였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고 말도 안 나오더라. 근데 그렇게까지 되니 무서울것도 없어서 그 동안 쌓였던 감정 다 터트렸다. 처음으로 소리 질러서, 그 선생님이 나한테 했던 것처럼, 그 동안 누른 억하심정을 다 토했다. 다 토하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만 두겠다-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고 며칠 지났을 때 조무사 선생님이 얘기를 하자고 하더라. 무슨 얘기인고 하니 나한테 그렇게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했던 원장님이 다른 직원을 가끔 한 번씩 불러서 내 욕을 했다는 것이다. 환자한테 친절하고 싹싹하게 하라해서 늘 밝은 톤 유지했더니 목소리를 너무 깐다. 목소리가 너무 크다. 일 하나 맡기면 느려서 속이 터져 죽겠다. 그런 얘기들. 그 선생님의 이간질이라 생각 할 수도 없던게 다른 선생님들에 대해 욕을 했을때랑 똑같이 원장실에 불려 들어가서 애기를 했다는 것. 정말 그 치과를 나올때까지 사람에게 질리고 질려서 나왔다.
근데 이 얘기를 아무도 모른다. 그 때 멈췄던 생리가 일 그만 둔지 세 달이 넘어가는데 시작할 기미가 보이질 않고 가끔씩 그 치과에 있는 악몽을 꿔도 내가 말하지 않으니 아무도 내가 힘든 줄 모르더라. 사실 일이야 그만두고 바로 구할 수도 있었는데 아직 안 구한것. 다른 치과 갔는데 또 그런 치과일까봐. 그래서 이력서 한번을 제대로 못 내겠는데 가족들한테 나는 그저 좀 힘들다고 철없이 일 그만두고 노는 딸로 보이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더라.
사실 이렇게 큰 커뮤니티에 올리면 그 치과 관련된 분들이 볼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냥 첫 사회에 발을 내딛은 어린애가 하소연 할 곳이 필요했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 주세요. 사실 얘기하자면 끝도 없긴 한데 더 얘기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