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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영웅 혹은 폭군, 스탈린(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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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4
조회수 : 76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1/05/11 21:28:12
오래간만에 스탈린 글이나 다시 올려보려구요. 이 글을 기다리시는 분들은 없겠지만...

겨울전쟁 당시의 핀란드 지도입니다. 소련군의 공세는 핀란드 만과 라도가 호수 사이의 카렐리아 회랑 지역

에 집중되었습니다. 여기에 바로 만네르하임 라인이 있었죠. 소련군 병사들에겐 무척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26. 겨울 전쟁

일단 39년 폴란드를 분할하고 나자 내친 김에 스탈린은 1차 대전의 혼란한 틈을 타서 독립

한 주변국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레닌이 '각 민족은 스스로 독립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라고 한 점은 이미 잊은지 오래였죠. (물론 레닌도 살아 생전에 이를 무시하고 

폴란드 - 소비에트 전쟁을 일으켰지만 - 10장 참조)

발트 3국까지 쉽게 장악하자 이제 스탈린은 핀란드를 점령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소련은 일

단 핀란드를 떠보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그건 쓸모없는 북방 영토를 내줄테니, 레

닌그라드 주변의 핀란드 영토를 넘겨달라는 것이었죠. 당연히 핀란드가 받아들이기 힘든 요

구였습니다.

핀란드가 예상대로 이를 거부하자 스탈린은 자신의 충성스런 장군인 보로실로프에게 지시해

서 핀란드를 침공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른바 겨울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스탈린의 계획 대로였습니다. 스탈린의 예상이 빗나간 것은 핀란드를 침공하면서부터였습니

다. 

침공 당시 소련군은 46만명의 대군이었고, 항공기와 전차, 장갑차등의 화력에서 월등히 뛰

어났습니다. 사실 이는 5개년 계획의 성과로 일단 붉은 군대의 무장만은 그럴 듯한 수준이

었죠. 그러나 스탈린이 몰랐던 것은 대숙청의 결과로 지휘관이 없어져 붉은 군대가 오합지

졸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핀란드는 당시 인구 350만에 불과한 국가로 무장도 변변치 못했고, 병력도 16만 정도가 전

부였습니다. 다만 이들은 오랜 러시아에 지배에서 벗어나 힘들게 얻은 핀란드의 독립을 위

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죠.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핀란드의 영웅 만네르하임 (Carl 

Gustaf Emil Mannerheim) 은 위대한 장군으로 자신의 능력을 이 전쟁에서 유감없이 발휘

했습니다.

일단 만네르하임은 소련의 의도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의 공격이 집중될 남부의 카렐

리아 회랑을 중심으로 만네르하임 라인이라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소련군이 오기만을 기다렸

습니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군은 핀란드를 침공, 별 저항없이 만네르하임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소련군을 기다리는 건 지옥이었죠. 당시 잘 준비된 핀란드 군은 용의 주

도 하게 소련군을 괴롭혔습니다. 지형에 익숙한 핀란드 군의 게릴라 전법앞에 지휘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소련군은 자기들 끼리 발포하는 등 웃지 못할 혼란상을 보여주게 됩니

다. 

당시 핀란드 군은 하얀색 위장복으로 매복하면서 평소 사냥으로 단련된 사격 솜씨로 소련군

을 하나하나씩 저격했습니다. 당시 핀란드 군 저격수는 소련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죠. 

핀란드 군은 지형에 익숙할 뿐 아니라 스키를 이용 기동성까지 발휘 신출귀몰하게 소련군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저격수만이 소련군의 적은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 더 큰 적은 바로 추위였죠. 당시 

기온은 50년 만의 한파라고 불릴만큼 추워서 영하 40도 이하의 강추위가 지속되었습니다.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소련군은 소련에서도 온난한 지역인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많았습니다. 제대로 된 월동 준비도 없이 전투에 나선 소련군 병사들은 사실 얼어죽는 경우

가 가장 흔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핀란드를 점령하기는 커녕 소련군 사상자만 눈덩이 처럼 커지고 있었습

니다. 이는 핀란드군이 잘싸우고 기후까지 도와준 탓이기도 하지만 소련군이 너무 오합지졸

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했습니다. 결국 스탈린마저 자신의 충복 보로실로프를 해임하고 티모

센코를 그 자리에 앉혔죠. 여담이지만 당시 스탈린이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보로실

로프를 책망하자 충복이던 그도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스탈린 동무, 당신이 우리 장교와 

지휘관을 다 없앴는데 어쩌란 말이요" 아무튼 티모센코는 그나마 평균은 하는 장군이었습니다. 

적어도 전임자 처럼 압도적 병력으로 처참하게 패배하진 않았습니다. 90만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을 

증편한 그는 40년 1월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고 2월에 이르러 추위가 다소 풀리자 다시 공격을 감행했

습니다. 

이번만큼은 핀란드군도 더는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만네르하임은 독립을 잃느니 차라리 영

토를 떼어주기로 결심했고, 스탈린도 핀란드 군이 만만치 않고 소련군이 생각보다 더 오합

지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정전에 합의하게 되어 결국 전쟁은 끝나게 되었죠. 당시 

양군의 상황을 보면

             핀란드                 소련

탱크:       30 여대                  6541대

병력:       25만 명                  100만 명

항공기:     130여 대                 3800여 대
                    
                        피해상황
126,875명 사망 및 실종                26662명 사망
264,908명 부상                        264908명 부상
5,600여명 붙잡힘                      5600여명 붙잡힘


으로 소련군이 병력은 물론 항공기, 전차 수 면에서 압도적 우세였으나 전쟁결과는 이와는 달랐습니다. 소련

군의 희생의 더 엄청났고, 특히 전차 500대, 항공기 800대, 야포 500문 이상을 손실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

다. 

이 겨울 전쟁을 지켜본 히틀러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소련군은 덩치만 크지 완전 오합지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것을 더 확신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거

둔 완벽한 승리는 히틀러와 독일군 사령부에 독일군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결과를 낳았죠. 따라서 히틀러는 

소련을 정복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더 미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1. 핀란드의 전쟁영웅 만네르하임 원수입니다.

2. 핀란드군의 스키부대입니다.

3. 소련군 병사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시모 하이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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